'아웃도어만 웃는다'는 패션업계의 사정을 반영한 걸까. 소비자의 지갑마저 얼어붙은 불황 속에서 아웃도어만 선전하자 대기업 계열 패션업체들 역시 아웃도어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LG패션이 2005년 프랑스의 아웃도어업체 라푸마와 판권계약을 맺고 제품을 출시한 데 이어 제일모직의 빈폴은 지난해 2월부터 빈폴아웃도어를 새롭게 론칭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역시 살로몬아웃도어의 국내 판권 계약을 완료하고 올 하반기부터 사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패션 대기업들이 아웃도어 마케팅을 강화하더라도 노스페이스, K2 등 전문 아웃도어업체들의 아성을 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 패션브랜드 관계자는 "현재 아웃도어업계는 굉장한 레드오션에 처해 있는 상황"이라며 "3대 아웃도어브랜드가 쌓아놓은 장벽이 워낙 두터워서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시장진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아웃도어업체의 관계자는 "대기업은 정통 아웃도어를 표방한다기보다는 씨티형 아웃도어인 경우가 많다"며 선을 그었다.
제일모직 빈폴 아웃도어
◆ LG패션 라푸마, 재고와의 전쟁 중
노스페이스, 코오롱스포츠, K2 등을 포함한 매출액 기준 10대 아웃도어브랜드의 지난해 매출은 3조915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전년보다 26.5% 증가한 수치다. 노스페이스가 6450억원을 올려 전년보다 4.9% 증가했고, 코오롱스포츠는 전년 대비 15.09% 늘어난 61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K2, 블랙야크, 네파 등 주요 아웃도어업체들도 모두 고른 성장을 보였다. 아이더의 경우 2011년 매출이 1100억원이었던 반면 지난해 매출은 21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신장했다. 아웃도어업체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추세인 것이다.
하지만 모든 아웃도어업체가 선전하는 것은 아니다. LG패션의 라푸마는 지난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지난해 재고와의 전쟁을 치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년 전만 해도 노스페이스, 코오롱, K2의 뒤를 이어 4위권이었던 라푸마는 지난해 매출이 아웃도어업체 중 8위로 급락했다.
회사 측이 개별 브랜드의 매출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현재 LG패션에서 라푸마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10%인 점을 감안할 때 1400억원 안팎이 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박종렬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라푸마는 적자점포를 많이 폐점하고 재고자산 축소에 집중했다"며 "아웃도어가 고가보다는 중저가로 쏠림현상이 발생하면서 라푸마 역시 세일이 확대됐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올해 전망도 낙관하기 힘들다고 내다봤다. 그는 "올해 소비경기 회복이 관건"이라며 "하반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있지만 실현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LG패션 관계자는 "2011년 겨울에 평년보다 날씨가 따뜻했기 때문에 라푸마 판매가 저조했다"며 "지난해에는 전년에 생긴 재고를 소진시키는 한해였기 때문에 매출이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 아웃도어업체 관계자는 "아웃도어업체의 재고문제는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라며 "겨울철에는 다운(패딩재킷) 제품의 물량을 늘리기 때문에 재고가 늘고, 중견 브랜드일수록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기 때문에 재고 부담이 더욱 크다"고 설명했다.
사진_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 대기업, 시티형 아웃도어로 선회 진출
대형패션업체인 제일모직 역시 지난해 아웃도어시장에 진출했지만 큰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제일모직은 정통 아웃도어를 출시하는 대신 자사의 브랜드인 빈폴에 아웃도어라인을 추가하는 것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기능성이 강조된 산악용 의류가 아닌, 출퇴근 시에 입어도 어울릴 수 있게끔 한 것이다.
회사 측 역시 전문 아웃도어업체인 노스페이스나 코오롱이 경쟁상대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기능성이 많은 것보다는 가벼운 느낌의 아웃도어를 지향한다"며 "아웃도어에서는 후발주자다 보니 시티 아웃도어시장에 대한 수요를 확인한 정도"라고 설명했다.
빈폴아웃도어의 지난해 매출은 400억원 안팎일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제일모직 측은 "패션브랜드는 3년이 돼야 시장에 안착하는 것으로 본다"며 "작년 실적은 의미있는 수치"라고 평가했다.
제일모직은 당초 이태리의 등산화 전문브랜드인 라스포르티바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아웃도어 브랜드를 들여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능성 등산화와 등산장비가 특화된 라스포르티바보다 의류에 강점이 있는 빈폴로 아웃도어시장에 선회 진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SK네트웍스의 수입브랜드인 타미힐피거 역시 이러한 전략을 내놓았다. 지난해 말, 타미힐피거의 아웃도어 라인인 타미스포츠를 선보인 것이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국내시장은 아웃도어 수요가 특히 많기 때문에 시장 테스트 차원에서 일부 매장에만 선보였다"며 "본격적으로 아웃도어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번 시즌이 지나면 향후 재검토할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 브랜드만 100여종…"거품도 경계해야"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살로몬과 판권 계약을 맺고 오는 7월부터 판매를 시작한다. 살로몬은 1947년 설립한 프랑스 아웃도어브랜드로, 아웃도어 장비와 의류·신발로 유명하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향후 대리점과 직영점, 대형마트, 백화점 등으로 유통망을 확장해 2020년까지 살로몬을 국내 10대 아웃도어 브랜드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최홍성 신세계인터내셔날 대표는 "국내 아웃도어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고 보고 살로몬 브랜드로 시장 진입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웃도어 레드오션' 속에서 신세계인터내셔날의 경쟁 상대도 만만치 않다. 현재 국내 론칭된 아웃도어 브랜드가 10여개 업체 100여종에 이르는 데다, 올해에도 최소 15~20개 브랜드가 추가로 시장진입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에는 빈폴아웃도어 외에도 LS전선의 픽퍼포먼스, 패션그룹 형지의 노스케이프 등의 브랜드가 쏟아져 나왔다.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경쟁이 불가피해지고 후발주자는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한 아웃도어업체 관계자는 "아웃도어 브랜드의 경쟁이 캐주얼로도 옮겨오고 있다"며 "일반 캐주얼 제품과 달리 티셔츠 하나를 만들어도 땀 흡수가 잘 되는 기능을 넣거나 자외선 차단 기능 등이 추가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불필요한 경쟁으로 시장의 거품이 한꺼번에 꺼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