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하키 마니아인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최근 22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 선거에서 새 회장으로 선출됐다. 안양한라 아이스하키단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본선진출과 50억원 투자를 공약으로 내걸어 회장 자리를 꿰찼다. 그런데 아이스하키에 대한 그의 열정을 높이 사는 시선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현재 한라그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아서다.
지난해부터 한라그룹은 한라건설의 계열사인 만도 노동조합과의 마찰로 그룹 내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여기에 만도와 한라건설간 '일감몰아주기' 비난도 거세 정 회장으로선 마냥 아이스하키협회장 선임으로 축배를 나눌 처지가 못 된다. 일각에선 정 회장이 위기국면에 처한 50년 역사의 한라그룹을 추스르는 일보다는 아이스하키협회장 출마에만 더 신경썼다는 '불평'도 나온다.
◆만도 금속노조와 마찰, 리더십 큰 '타격'
현재 정 회장이 가장 먼저 급한 불을 꺼야 할 곳은 자동차부품업체인 만도다. 이 회사는 지난해 공격적인 직장폐쇄와 용역 투입, 복수노조 설립 등으로 '노조파괴 사업장'이라는 오명을 줄기차게 받아왔다. 금속노조 만도지부와 깊어진 갈등의 고리를 푸는 것이 정 회장의 선결과제로 떠오르는 이유다.
작년 7월 민주노총 소속 금속노조 만도지부가 임금협상 등 노조의 주장을 알리며 파업에 나서자 사측은 즉각 직장폐쇄로 맞섰다. 1500여명에 달하는 용역을 투입해 직장폐쇄를 강행한 것. 문제는 사측이 직장폐쇄한 지 3일 만에 기존 노조원의 대다수를 흡수한 친기업 성향의 복수노조인 '만도노동조합' 설립을 유도했고 해당조합과의 교섭을 강행, 기존 금속노조와의 갈등을 부추겼다는 데 있다.
금속노조 측은 그해 8월 고용노동부가 '현 교섭대표 노조는 금속노조 만도지부'라는 유권해석을 내렸음에도 사측이 만도노동조합과의 교섭을 강행해 조합원 간의 임금차별 등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했다며 발끈했다.
금속노조 만도지부 관계자는 "사측은 노조가 전면파업에 돌입한지 하루 만에 직장폐쇄를 단행했는데 이는 명백한 '공격적 직장폐쇄'로 봐야 한다"며 "방어적 목적이어야 한다는 법의 취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우리가 사측에 파업철회 의사를 밝혔음에도 직장폐쇄를 유지하는 것은 고의적인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금속노조와 사측의 갈등은 지난해 9월 사측이 만도노조와 2012년 임단협 교섭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만도노조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750만원가량의 특별격려금을 일괄 지급한 것에서도 불거졌다.
당시 사측은 언론 등을 통해 "6월 잔업·특근 거부와 7월 파업 시기에 기업노조와 사무직의 결품을 막기 위해 노력한 대가를 지급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금속노조는 "복수노조가 결성되기 이전의 상황이다. 2013년 2월 현재까지도 여전히 금속노조원 중 113명은 받지 못하고 있다"며 만도노조와 금속노조를 차별했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원들의 불만은 만도의 최대주주(19.99%)인 한라건설이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로 부터 24년간 무분규를 유지했다며 '노사 상생 대통령표창'을 받자 극에 달했다. 당시 금속노조는 "만도지부의 노사관계를 파탄 내고 부당노동행위까지 자행한 회사를, 고용노동부가 앞장서서 노사상생협력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며 크게 반발했다.
한라그룹 관계자는 "현재 금속노조 만도지부 노조원들과의 갈등은 원만히 해결됐다"며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금속노조 관계자는 "지난 1월30일 회사측과 합의는 했지만 (사측의) 일방적인 통보에 불과하다. 아직 기업노조원들과 전직원들이 수령한 750만원가량의 특별격려금도 우리 노조원들은 전혀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만도 노조원들에 따르면 2월 현재 기업노조인 만도노조에는 2300여명, 금속노조 만도지부에는 127명이 가입돼 있다.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비난 '솔솔'
노조와의 적체된 갈등 외에도 한라그룹이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답습하고 있다는 혹평을 받는 것 역시 정 회장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정 회장은 만도에 복수노조가 설립된 이후인 작년 10월, 만도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한라건설 회장직만 맡으며 한라건설 살리기에 주력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한라건설은 계열사인 만도와 648억3058만원 규모의 한라그룹 연수원 신축공사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해당 공사비는 지난해 한라건설 매출액 대비 3.85%에 달하는 규모다. 만도도 그해 11월 한라건설과의 연수원 신축공사 계약금액이 452억800만원이라고 공시했다. 현금거래 조건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만도가 경영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한라건설을 살리기 위해 현금을 '퍼나르며' 계열사를 부당지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금속노조 측은 만도가 그룹 연수원 설립에 나선 것은 주식담보 대출을 받아야 할 만큼 현금 유동성이 부족한 한라건설에 '현금 몰아주기'를 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관행적으로 공사 진척에 따라 공사비를 주는 것은 맞지만 기공식 이후 400억원이 넘는 공사비를 현금으로 지급한 것은 불공정거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라그룹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 특별한 언급을 원치 않았다.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는 '현저하게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해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로 규정돼 있다. 공정위는 최근 공정거래법 23조 등 '일감 몰아주기' 제재 근거를 강화해 친족회사 간 부당내부거래도 강력히 제재하기로 했다.
조선, 플랜트, 중장비, 자동차부품, 시멘트, 펄프제지, 해운, 자원개발, 건설 등 중후장대한 분야를 개척하며 한때 재계순위 12위까지 우뚝 섰던 한라그룹. 정 회장에게 2013년은 국내 아이스하키의 발전을 이끄는 일 못지않게 한라그룹의 부활을 앞당겨야 하는 시기로 보인다.
☞ 정몽원 회장은 누구?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바로 아래 동생인 고 정인영 한라그룹 전 명예회장의 2남인 그는 고려대 상대를 졸업하고 1979년 현대양행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어 1985년 만도기계 전무, 1989년 같은 회사 사장, 1992년 한라그룹 부회장을 거친 후 1997년 그룹 회장에 올랐다.
그러나 무리하게 추진했던 조선사업이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그룹 회장 취임 1년 만에 '그룹 해체'라는 비극적인 상황을 맞았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은 계열사인 한라건설 회장으로 물러나기도 했다. 이후 1999년 만도를 매각한 뒤 8년 만에 되찾았다. 하지만 정 회장은 주식배당을 두고 정몽국 전 한라건설 부회장과 법정다툼을 벌인 바 있으며, 한라중공업 불법지원과 관련해 집행유예를 선고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