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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A셀프주유소를 자주 이용했던 김석용씨(서울 은평구 갈현동·35·가명)는 최근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기름값을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지금까지 셀프주유소만을 고집했건만 며칠 전 부득이하게 이용한 일반주유소에서는 휘발유를 ℓ당 40원가량 더 싸게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구의동에 사는 정우식씨(37·가명)도 더 이상 회사 근처인 강남구 소재의 B셀프주유소를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 당연히 저렴할 것이라는 생각에 주유했는데 집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일반주유소 평균가격보다 ℓ당 150원 가까이 비싸서다.
일반주유소보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셀프주유소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지만 휘발유 가격 차이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 운전자들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 특히 일부 셀프주유소는 오히려 일반주유소보다 기름값이 더 비싸 불만을 증폭시키고 있다.
◆셀프주유소가 무조건 싸다고?
운전자들은 자신이 직접 주유하기 때문에 당연히 셀프주유소 기름값이 저렴할 것이라 여기지만 무턱대고 이용했다가는 바가지를 쓰게 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한국석유공사 주유소 종합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서울지역 셀프주유소의 ℓ당 휘발유가격은 최고 2135원(5월 첫째주 기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같은 시기 서울지역 휘발유 평균 가격은 1970원대였다. 최저 및 최고가격은 각각 1832원과 2348원이었다.
강동구에 위치한 한 셀프주유소는 같은 시기 휘발유를 1958원에 팔았다. 강동구에는 최저 1857원에 제공하는 곳을 포함한 총 7개의 일반주유소가 이 셀프주유소보다 싸게 판매했다.
강남구에 위치한 모 셀프주유소도 1948원에 휘발유를 판매했다. 반면 인근 일반주유소에서는 1855원에 거래됐다. 이외에도 같은 구에선 6개 일반주유소가 이 셀프주유소보다 싼 가격에 휘발유를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일부 셀프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자 실속파 운전자들은 더 나은 혜택을 받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셀프주유소는 운전자 스스로 주유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워셔액을 갈아주거나 쓰레기통을 비워주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왕이면 일반주유소를 찾아 다양한 혜택을 누리겠다는 운전자들이 늘고 있다.
최근까지 셀프주유소를 이용했던 한 운전자는 "셀프주유소는 기본적으로 일반주유소보다 저렴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며 "운전자들은 당연히 쌀 것으로 생각하고 이용하는데 만약 셀프주유소가 이를 악용한다면 분명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분노했다.
운전자들의 이 같은 반응에 일부 셀프주유소들은 진퇴양난에 빠진 자신들의 입장을 토로했다. 한 셀프주유소 관계자는 "전용 주유기 마련 등 초기 투자비용이 일반주유소보다 많이 들어가는 데다 요즘처럼 셀프주유소들의 증가세가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무작정 가격을 낮추는 것은 '제살 깎아먹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따라서 주위 주유소들의 눈치를 본 후 판매가를 책정하는 쪽이 오히려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게 현실"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알뜰주유소 전철 그대로 밟나
일부 셀프주유소의 가격 경쟁력 저하는 그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2007년까지 59개에 불과했던 전국 셀프주유소는 지난 1월 기준 1094개로 증가했다. 지난해 1월 650개였던 것을 감안하면 1년 새 68.3%가 늘어난 셈이다. 전체 주유소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지난해 4.9%에서 8.3%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최근 휘발유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곤 있지만 여전히 고유가 행진은 이어지고 있어 조금이라도 저렴한 휘발유를 구하려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셀프주유소의 이 같은 증가세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자칫하면 알뜰주유소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1년 12월 말 인근 주유소보다 100원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며 등장한 알뜰주유소는 1년 만에 800개를 넘어서는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후 수익성 악화가 현실로 드러나면서 하나 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실제 서울지역 알뜰주유소 1호점인 형제주유소는 등장한지 6개월 만인 지난해 9월 영업부진을 이유로 문을 닫았다. 형제주유소는 개점 초 대대적인 홍보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인근 일반주유소들과의 가격차이가 사라졌고 결국 고객 감소로 이어져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다른 알뜰주유소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일부 알뜰주유소들은 이득을 내기 위해 가짜석유에 손을 대는 등 소비자 피해와 함께 사회적 폐단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알뜰주유소에 빗대며 셀프주유소 전환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셀프주유소가 계속 늘어나다보면 최소 1억원에 달하는 전환비용 만큼의 매출 증대효과를 보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셀프주유소로의 전환은 박리다매 식으로 판매량을 늘림으로써 매출 증가를 원하는 것"이라며 "셀프주유소가 전체 주유소의 20% 이상이 되면 과도한 가격경쟁으로 고사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국내 주유소는 1만2000여개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휘발유 공급가 낮출 수 없나
정유사들의 유류 공급가격 역시 셀프주유소 가격 경쟁력 저하의 이유로 꼽힌다. 정유사들은 일반주유소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셀프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부가서비스 삭제만으로 인하 폭을 넓히기에는 한계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이에 셀프주유소 관계자들은 국내 정유사가 서로 경쟁하도록 해 공급가를 낮추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정부가 유류세율을 내린다면 가격 경쟁력을 갖춘 셀프주유소로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유사들의 5월 첫째주 기준 휘발유 공급가격은 1806원 수준으로 셀프주유소와 일반주유소의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
정유사 관계자는 "셀프주유소 설립시 시설 지원 등이 수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특정 주유소의 공급가격을 공개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현재 평균 공급가격은 거품을 최대한 뺀 것으로 주유소 자체적으로 책정하는 판매가격에 있어서도 정유사가 개입할 경우 자율경쟁을 저해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유류세 인하는 환경보호 등의 목적으로 봤을 때 현재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실제로 지난 2000년부터 10년 넘게 746원(부가세 제외)으로 고정돼 있는데 유럽의 경우 물가에 따라 유류세가 오르는 점과 비교하면 국내는 손실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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