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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컨설턴트, 딜러,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등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이들의 이름은 어느덧 세분화됐다.
작품을 소장하거나 매매할 때, 작가가 성장할 때 역시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이들의 존재는 현대에 이르러 더욱 역할이 증대됐다. 특히 시장을 움직이는 스타 딜러는 작품의 그림자로 존재했던 과거와는 달리 작가 못지않은 유명세를 누리며 작가와 이름을 나란히 하고 있다.
이들은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해 성장시키고 작품에 직접적인 가치를 부여하며, 나아가 작가들의 기획력 있는 전시로 미술사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스타 딜러의 이름은 역사 속 대가의 이름처럼 우둔거림을 전한다. 묵묵히 작가를 지지하며 그 작가가 역사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함께 한 딜러는 오랜 시간 귀감이 되는 모델로 존재한다.
컬렉터의 입맛에 맞추지 않고 오히려 컬렉터의 안목을 이끌며, 때론 작가의 가치를 피력하고 인내함으로써 한 작가의 가치를 높이는 딜러는 작가만큼이나 딜러의 존재가 중요함을 일깨운다.
20세기에 이르러 등장한 스타 딜러 중 뉴욕 미술계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은 레오 카스텔리다. 1907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레오 카스텔리는 60∼70년대 뉴욕미술의 수장이나 다름없었다.
제스퍼 존스, 프랭크 스텔라, 로버트 라우센버그,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로버트 모리스, 도날드 주드, 부르스 뉴만 등 걸출한 작가들이 무명시절 레오 카스텔리를 만나 빛을 본 케이스다. 1950년대부터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딜러였던 레오 카스텔리의 관심사는 익숙하고 어느 정도 상업성이 보장된 작품이 아니었다. 늘 새로운 도전정신을 가진 작가를 과감히 발굴했고, 그의 안목이 적중하듯 작가들은 블루칩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특히 그는 작품이 팔리지 않을 때는 작가가 마음 편히 오랜 시간 작업할 수 있도록 창작을 지원하며 독려했고, 좋은 작가로 성장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며 작가의 각별한 친구가 돼주기도 했다. 레오 카스텔리는 뉴욕의 작가들을 유럽 등 해외에 알리는 데도 특출난 재능이 있었으며, 당장의 수입보다 작가의 창조적 에너지와 예술에 대한 사랑이 우선한 모습이었다.
◆레오 카스텔리, 드니즈 르네 등 미술사조를 이끈 스타 딜러
작가가 레오 카스텔리를 떠날 수는 있어도, 그가 작가를 떠난 적은 없다고 할 정도로 탄탄한 신뢰를 기반으로 작가를 성장시켰던 레오 카스텔리. 그를 스쳐간 많은 작가들은 화폭에 그의 초상을 남기며 불멸의 존재로 남게 했고, 이러한 레오 카스텔리의 명성은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미술의 중심지로 이견이 없는 뉴욕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데도 레오 카스텔리는 큰 역할을 했다. 진중한 안목과 지원, 인내와 신의로 1999년 타계하기까지 레오 카스텔리는 20세기 최고의 딜러로 지금껏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딜러로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드니즈 르네다. 프랑스의 문화권력으로 불리며 건재한 노익장을 과시했던 르네는 2012년 타계하기까지 추상미술의 전도사로서, 전설적인 딜러로서 존경받았다.
미모의 딜러였던 드니즈 르네는 유대인 비단상의 딸로 태어나 1944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갤러리를 오픈하게 된다. 드니즈 르네가 유능한 딜러로 추앙받게 된 배경에는 작품을 읽는 뛰어난 안목이 있었다. 1955년 드니즈 르네가 기획한 '움직임. 역사적인 선조들을 찾아서-마르셀 뒤샹 혹은 칼더'전은 미술사조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나 다름없었다.
미술은 시간 속에 정지된 매체라는 편견을 보란 듯이 파괴하듯, 전시장에는 움직이는 작품들이 새로운 사조의 태동을 알리고 있었다. '움직이는 미술작품'을 처음 소개했던 키네틱 아트의 시초와 같은 전시였다. 이렇듯 키네틱 아트를 비롯해 기하학적 추상,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 미니멀 등에는 드니즈 르네의 이름이 함께했다. 그녀를 추상미술의 전도사라 부르는 이유다.
르네는 컬렉터의 수준이 작품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작품을 팔지 않았고, 좋은 작가를 발굴해내는데 애썼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녀는 생존 컬렉터이자 딜러로는 최초로 퐁피두센터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전시를 갖기도 했다.
메리분 역시 시대를 풍미한 미모의 화상으로 빼놓을 수 없는 딜러다. 뉴욕 화랑가에서 스타 갤러리스트로 맹위를 떨친 메리분은 뛰어난 경영수완으로 화가 못지않은 유명세를 누렸다. 1977년 소호에 자신의 이름을 딴 갤러리를 오픈한 메리분은 당시 팝아트가 휩쓸던 뉴욕 미술계에 줄리앙 슈나벨이나 데이비드 살르와 같은 신표현주의 작가들을 주로 소개했다. 지나친 야망으로 때론 구설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메리분이 보여준 딜러로서의 열정만큼은 인정받고 있다.
이외에도 평생 모은 미술품 700여점을 공공미술관에 기증한 도페이 갤러리 대표 엔서니 도페이, 뉴욕의 스타 딜러로 이미지를 굳히며 오노요코, 매튜바니, 키스 해링 등 거물급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한 제프리 다이치 등 유능한 딜러는 뛰어난 작가만큼이나 그 행보를 주목받고 있다.
어느 순간 작품이 가진 단기적인 상업성에만 관심을 가지는 딜러의 모습이 익숙한 미술계에, 눈앞의 짤막한 달콤함 대신 새로운 창작의 에너지에 과감히 손길을 건네고,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우선시하는 딜러의 모습은 현실을 각성하게 한다. 20세기를 빛낸 유능한 딜러와 유능한 작가를 잇는 가교는 묵묵한 인내와 신뢰, 예술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 기저에 흐르고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프로필
마이애미·뉴욕·퀼른·워싱턴·런던·도쿄·베이징 등 국내외에서 100여회의 전시를 가졌으며 2011년 청작미술상을 수상했다. 화장품 브랜드 미샤와 한정판 라인 출시, 소녀시대 의상 콜라보레이션 등 갤러리의 문턱을 넘어 문화 전반에서 관객과 만났다. 주요 저서로는 <스물아홉 김지희, 그림처럼 사는>, <스물아홉 김지희, 삶처럼 그린>(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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