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건설이 7년 전에 분양한 한 고급 아파트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일단 살아보고 결정하라’는 ‘에프터 리빙제’(전세형 분양) 때문이다. 현재 반도건설은 전세형 분양 계약을 맺은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유보라팰리스 입주민들과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전세형 분양이 뭐길래…소송까지
지난 2011년 반도건설은 당산동 유보라팰리스의 일부 계약 해지분 60여 가구(158㎡, 187㎡)를 ‘전세형 분양’을 통해 계약을 이뤄냈다. 약 13억 원짜리 아파트를 3억3000만원을 내고 입주하면 회사 측에서 2년간 나머지 대출금 이자를 대납해주는 조건과 함께 입주자가 원하면 전매(제3자에게 소유권을 넘기는 행위)를 알선해준다는 계약 조건을 내걸었다. 또한 집값이 하락할 경우 반도건설은 입주자가 손해를 보지 않게 하기 위해 차액을 보전해주기로 했었다. 반대로 시세가 상승하면 시세차익은 건설사가 가지고 가는 조건이었다. 명의만 입주자가 빌려줬을 뿐 반도건설의 소유나 다름없는 셈이다.
당산 유보라팰리스 조감도 조건이 조건인 만큼 전세형 분양은 잘 이뤄졌다. 하지만 만 2년이 지난 지난해 입주민들이 구입 여부를 결정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2년 사이 집값이 분양가보다 무려 4억~5억원이 떨어져 현재는 9억원에도 못 미치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전세형 분양 계약자들로서는 이 아파트를 구입할 이유가 없어졌다.
입주자들은 ‘전매를 책임 알선해준다’, ‘차액을 보전해 준다’는 특약사항을 곧이곧대로 믿고 인근 부동산에 집을 내놨지만, 대형 평형대라 찾는 사람도 없고 설사 있다 해도 건설사에서 인정해주질 않았다. 반도건설은 “2년 동안 가구당 9억원이 넘는 대출에 대한 이자를 부담한 만큼 분양가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매매가 될 경우 분양가와 매매가의 차액을 부담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기 때문이다.
전세형 분양을 받은 입주자들은 즉각 반발, 소송을 진행했다. 반도건설 측의 계약위반이라는 주장이다. 소송을 진행한 한 입주자는 “제발 들어와서 살아달라고 매달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이렇게 안면 몰수하는 법이 어디 있냐”며 “특약 조항이 있는 만큼 반도건설은 계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전세형 분양 계약을 맺고 반도유보라팰리스로 입주한 이들 중 이주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사를 가고 싶어도 회사에서 분양대금을 돌려주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부동산시장 침체에 결국 이런 일이…
이번 반도건설 사태를 두고 업계에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세형 분양 방식은 겉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임대가 아닌 매매 계약이란 맹점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특히 입주민이 주변 시세보다 낮은 전세 보증금 수준으로 새 아파트에 입주한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을 때 건설사들은 매매 계약서를 들고 은행에 가서 입주자 명의로 중도금 대출을 받는다. 미분양이 발생하면서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건설사들이 부족한 자금을 융통하는 수단으로 전세형 분양 방식을 활용하는 셈이다.
실제로 반도건설은 60여가구의 전세형 계약을 통해 가구당 계약금 3억 3000만원과 은행 대출을 통해 약 800억원에 이르는 현금을 확보했다. 사실 당시만 해도 반도건설은 대규모 자금이 들어간 이곳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상당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도건설로서는 800억원에 이르는 현금은 그야말로 ‘단비’였던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07년 반도건설이 분양한 당산동 유보라팰리스는 높은 분양가와 대형 평형이라는 이유로 시장에서 소외를 받았다”며 “2010년 말까지만 해도 전체 299가구 중 100여가구가 미분양으로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시만 해도 업계에선 반도건설이 이 사업으로 인해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는 소문이 돌았었다”며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서 건설사들의 꼼수에 입주자들이 당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어디서 꼬였나…시장침체·고분양가에 '발목'
지금이야 반도건설이 극심한 부동산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00%에 가까운 분양성공을 이어나가며 명성을 높이고 있지만 당산동 유보라팰리스는 실패의 오점으로 남는다. 부산지역 주택업체인 반도건설은 지난 2006년 ‘유보라’라는 새 아파트 브랜드를 론칭하고 야심차게 서울 지역 아파트 시장 진출을 모색했다. 장소는 옛 대한통운 물류부지인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4가. 이 부지는 반도건설이 자산관리공사 공매를 통해 사들인 것으로, 서울지역에 반도건설을 알리는 랜드마크로 대형 고급 아파트를 세울 요량이었다.
이때만 해도 국내 부동산 시장은 지금처럼 악화일로를 걷고 있지도 않았던 데다 신규분양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반도건설로서는 하나의 승부수를 띄운 셈이었다. 이를 보여주듯 당산동 유보라팰리스는 공급면적 108.16㎡~251.46㎡로 중대형 위주로 선보였다. 전 세대의 남향 배치, 고급마감재와 유비쿼터스·인텔리전트 시스템 등 최첨단 시설로 꾸며 고품격 아파트를 지향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너무 큰 평형, 그리고 12억6000만~13억6000에 이르는 높은 분양가가 발목을 잡았다.
◆성공신화 이미지 망칠까 전전긍긍
당산동 유보라팰리스 분양에 크게 데인 탓인지 반도건설은 현재 자체사업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적정 수익률 7~8%대의 다른 건설사와 달리 4~5%로 낮춰 '착한 가격'으로 주택 공급을 이어 나가고 있다. 또한 중소형 위주 공급과 무조건적인 수도권보다는 검증된 입지 등 고객 중심의 공급 전략을 세워 승승장구 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공급된 3398가구 중 전용면적 85㎡ 이하 중소형 물량이 3093가구로 90%를 웃돌았다. 이에 힘입어 전국 4곳(3398가구)에서 지난해 분양한 아파트 모두 순위 내 청약을 마치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렇듯 잘 나가고 있는 반도건설이지만 2007년 당산동 유보라팰리스의 분양 실패와 전세형 분양으로 인한 소송 등으로 지금까지 잘 쌓아온 이미지에 타격을 입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 어떻게 보면 반도건설은 자신들의 수요 예측 실패의 손실을 전세형 분양을 받은 입주자들에게 전가시킨 셈”이라며 “더욱이 특약으로 입주자들을 모아놓고 문제가 발생하자 안면을 바꾸는 태도는 보기 안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반도건설 직원들도 이를 의식한 듯 당산동 유보라팰리스와 얽혀있는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