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제구포신'(除舊布新). '묵은 것은 없애고 새 것을 펼치라'는 뜻의 사자성어다. 2년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른바 '뉴타운 출구전략' 카드를 꺼내면서 생각한 것도 이와 같으리라. 삽 한번 뜨지 못하고 주민과 업체 간 반목하며 불신만 쌓인 채 '시간이 멈춰버린' 서울시 뉴타운을 구원하기 위해 박 시장이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은 녹록지 않다. 사업은 지지부진한 국면을 이어가고 있고,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 간 갈등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추진된 지 어언 2년이 훌쩍 지난 뉴타운 출구전략. 말 많고 탈 많던 박원순표 출구전략의 끝은 어떻게 맺어질까. <머니위크>는 '박원순 2기' 출범을 맞아 뉴타운 출구전략을 점검했다. 직접 뉴타운 현장을 찾아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보고 뉴타운의 남은 숙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도 살펴봤다.
"답답해 죽겠습니다. 1억원을 깎아서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에요."
지난 1일과 2일 뉴타운 북아현 1-3구역에서 만난 이들의 공통된 말이다. 조합원 대부분은 7년 전 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 지정에 마치 로또라도 당첨된 것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2014년 7월 현재 북아현 1-3구역은 시공사인 대림산업이 공사를 중단하고 중장비를 철거한지 3개월여가 지나고 있다. 주민들 간 갈등의 골이 깊어져 조합과 비대위를 비롯한 주민협의체만 4개에 달한다. '뉴타운 노른자'로 불리던 북아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주 완료됐지만 3개월째 공사 중단
좁은 골목 오르막길 따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북아현 일대는 지난 2005년 3차 뉴타운으로 지정되면서 9년 새 크게 바뀌었다. 특히 서울시 최초 고가도로인 아현고가도로가 철거된 북아현은 탁 트인 전경에 얼굴색이 바뀐 기분마저 들게 했다.
아현역 1번 출구부터 아현대로를 따라 복정초등학교와 한성고등학교를 끼고 있는 구역이 북아현 1-3구역이다. 지난해 4월 전면철거가 진행된 후 주민들의 이주까지 완료돼 현재 공사현장에는 높은 펜스가 둘러쳐져 있다. 지금은 큰길을 따라 오래된 상가건물들만 남은 상태다. 삶의 터전을 잃은 철거 상가 입주자의 농성장도 지난해 10월 서울시의 조정덕분에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웬일인지 공사현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펜스 안 분주해야 할 공사장은 중장비도, 오가는 사람도 없는 휑한 황무지다. 여느 공사현장에서든 들을 수 있는 분주한 기계음이 없어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근처 상가건물 안에 위치한 조합사무실도 마찬가지다.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무실 안에서 만난 조합원 대부분은 지쳐있었다. 북아현 1-3구역 조합사무실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와 조합이 각각 한편씩 나눠 사용하고 있다. 사전에 조합원들 간 갈등이 있는 것을 알았기에 사무실을 함께 사용한다는 사실에 적잖게 놀랐다. 사무실에서 느껴진 찬 공기가 기분 탓만은 아니었던 것.
◆한숨으로 보낸 7년 "앞으로 또 얼마나"
"사업시행 인가를 받은 2000년 당시 마을 분위기는 굉장히 들떠 있었습니다. 당시 사업 속도도 빠르고 용적률도 20%가 높아져 기대가 컸죠. 34평형 확정입주권의 경우 3억원 이상의 매매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1년, 2년이 지나더니 벌써 7년이 됐네요. 공사가 전면 중단되면서 한달에 발생하는 금융이자만 22억원에 달합니다. 중단된 지 3개월이 지났으니 66억원가량을 조합원들이 또다시 떠안아야 됩니다. 추가 분담금도 당초 예상보다 늘어나 6억원가량을 부담해야 하는 조합원도 있고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조합사무실 근처에서 만난 한 조합원의 한숨 섞인 말이다. 북아현 1-3 구역은 북아현동 159-1번지 일대 10만6611.8㎡ 규모로 대림이편한세상 아파트 1910세대가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 2010년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고 이주와 철거 작업에 들어갔지만 정작 착공이 이뤄진 것은 지난해 말이었다. 송성범 북아현 1-3구역 재개발조합장 직무대행은 "사업에 반대하는 조합원과 세입자들의 이주문제 때문에 명도소송이 걸려 있었고 판결이 미뤄지다 보니 철거에만 3년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이후 순항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던 공사는 삽을 뜨지도 못한 채 지난 4월 말 중단되며 또다시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해 12월 바뀐 사업계획에 따른 관리처분계획안이 발단이었다.
변경된 관리처분계획안에 따르면 2010년 당시 100.05%였던 비례율이 81.7%로 뚝 떨어졌다. 비례율이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수익을 조합원의 자산총액으로 나눈 비율로, 이 비율이 낮을수록 조합원의 추가 분담금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조합원들은 비대위를 따로 구성해 기존 조합집행부의 해임을 요구하는 등 마찰을 빚고 있다. 비대위측 관계자는 "두 차례의 설계변경을 거쳤지만 현재 추가 분담금이 가구당 최소 1억5000만여원에서 상가주택의 경우 최대 6억원까지 늘었다"며 "예상 사업비도 2009년 당시 1674억원에서 4년 만에 2배가량 급증한 4642억원(도급공사비 3600억원 제외)이다. 이렇게 급증한 원인을 조합측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업지연으로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도 문제다. 사업비 명목으로 시공사로부터 대출받은 1200억원에 대해 3년간 연 7.5%의 이자가 발생, 1600억원으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첩첩산중으로 부동산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아파트 대신 현금청산을 요구하는 조합원이 늘어 당초 200억원으로 예상된 현금청산액이 현재 1800억원에 달한다.
결국 기존 조합집행부는 이자가 더 불어나기 전에 공사진행을 위해 변경관리처분을 인가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비대위 측은 변경된 본계약서의 조합원에게 부당한 조항을 수정하는 것은 물론 조합 임원진 교체를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이들의 복잡 다난한 정쟁은 10평 남짓한 조합사무실에서 아직도 이뤄지고 있다. 북아현 1-3구역에서 뉴타운 출구전략이 먼 나라 얘기로 들리는 이유다.
조합원 박모씨는 "출구전략에 따라 서울시에서 정비사업 닥터팀을 파견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조합집행부와 비대위 간 갈등이 해소되기도 전에 파견이 종료됐다고 하더라.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사업을 중재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도자료 및 기사 제보 (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