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해 동안 국내 부동산시장은 밝게 웃은 날이 없었다. 집값은 폭락했고,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 서민들은 속속 ‘하우스 푸어’로 전락했다. 경매장엔 깡통주택이 넘쳐났고 건설사들은 미분양 아파트를 조금이나마 줄이려고 정신이 없다. 한마디로 ‘부동산 침몰’이다.
우리나라는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국민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2012년 말 기준 국민순자산 1경630조6000억원 중 토지와 건설자산 몫이 89%(9457조3000억원)에 이른다. 자본 대부분이 땅과 건물, 사회간접자본(SOC) 등 부동산에 쏠린 것이다. 가계자산의 75%도 부동산이다. 주택 시가총액(3094조원)은 국내총생산(GDP)의 두배를 웃돈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이란 운영 수익을 내기보다 싸게 사서 비싼 값에 되파는 전형적인 ‘자본 차익형’ 투자 상품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우리나라 부동산 침몰은 수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 무너진 중산층
부동산 경기가 호황을 누리던 2000년대 중반까지 집 가진 이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한달 봉급보다 많은 돈이 집값으로 뛰는 현상이 벌어지자 너도나도 주택 구입에 열을 올렸다. 여기에 자산이 충분치 않음에도 금융기관의 후한 인심에 혹한 중산층이 무리한 차입금을 등에 업고 아파트 계약에 나섰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모든 것이 한순간에 정반대의 상황으로 변하고 말았다. 영원히 오를 것만 같았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힘겹게 이자를 부담하면서 시세차익을 볼 날만 기다렸던 이들에게 원리금 상환일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의 심정으로 바뀌었다. 주택 가격이 오히려 떨어지면서 물가상승률과 기회비용을 차치하더라도 이자 부담금과 원금이 산처럼 쌓여있는 현실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여건은 보다 악화됐다. 약간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집을 팔고 세입자 신세로 돌아가려 해도 매수세가 없었다. 당장 갚아야 하는 원금이 있는 만큼 무턱대고 집값을 낮춰 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집을 가진 이들은 이곳저곳에 돈을 빌리며 시장이 살아나기를 기다렸지만 부채만 쌓여갔다. 때문에 하우스 푸어가 생겨났고, 해를 거듭할수록 이들의 숫자가 늘기 시작했다.
흔히 소득 대비 주택담보대출 이자 상환 부담이 20%를 넘어 고통 받는 이들을 하우스 푸어로 보는데,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2년 306만가구에서 지난해 328만가구로 하우스 푸어가 약 7.3% 증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우스 푸어가 아닌 이들조차 떨어지는 집값과 대출의 부담을 줄이고자 전세를 높은 가격에 내놓기 시작했다. 세입자들 역시 언제까지 떨어질지 모르는 집을 구매하느니 시세변동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전세매물을 찾으면서 전세 대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결국 집을 가진 자도 집을 갖지 못 한자도 서로 만족하지 못하는 현재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 투기가 뭐예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주택매매거래는 매년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을 갱신하며 급감했다. 부동산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던 2000년대 초·중반, 이동식 중개업소를 뜻하는 ‘떴다방’이 있었다. 지금은 흔치 않지만,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서는 곳이면 전국 어느 곳이든 등장해 간이 파라솔을 치고 청약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전단지와 명함을 건네며 웃돈(프리미엄)을 얹어 분양권 전매를 알선하던 중개 점조직이다.
당시 떴다방은 대부분 정식 중개 면허도 없이 프리미엄을 얹은 단타 매매를 부추겨 투기의 온상이자 주범으로 낙인 찍혔다. 하지만 속칭 ‘된다’는 곳일수록 떴다방은 많아지는 비례관계가 성립해, 건설사들이나 분양업체들로선 내심 반가웠던 존재 역시 떴다방이었다. 당시 떴다방은 분양성을 짐작해볼 수 있는 가늠자 역할을 한 셈이다. 분양시장에서 프리미엄이 사라진 요즘, 달라진 시장과 함께 자취를 감추며 이제는 이름조차 낯설어진 떴다방에서 부동산 불황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부동산경기가 침체돼 있다고 해서 투기바람이 전혀 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일부 투기세력은 더 이상 주택을 이용한 시세차익을 노릴 수 없게 되자 오피스텔이나 상가 등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워낙 침체된 부동산경기에 조금만 수익이 난다 싶으면 몰려드는 투자자들과 이를 잡으려는 건설사들이 물량을 쏟아내면서 공실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시들기 시작했다.
◆ 큰손이 사라졌다
이처럼 부동산시장이 침체일로를 이어가자 큰손 투자수요가 시장을 외면하고 있다. 이들의 발빼기는 국내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맞물리고 있다. 공급 과잉 경고 속에 부동산 큰손들마저 사라지며 집값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신용경색과 예전만 못한 낮은 투자 수익률, 주택 수요 둔화, 공급이 넘치는 가운데 심화되는 경쟁 등에 맞닥뜨려 버티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분양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오피스텔 계약자 동향분석 결과 거주지가 강남권인 투자자 비율이 28%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2채 이상을 산 계약자 비율도 지난해 9.9%에서 최근 2.7%로 뚝 떨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부동산 경매현장에서 더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넓은 땅이나 고급주택 등이 경매에 나오면 ‘전문 경매꾼’들이 들러붙어 곧바로 낙찰되던 현상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큰손 경매꾼들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대신 이 자리를 ‘서민형 경매꾼’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경기침체로 부채를 갚지 못해 살림살이 등과 같은 동산을 압류된 곳만을 골라 찾아다닌다. 가전제품과 같은 소규모 경매는 집이나 영세한 자영업장에서 이뤄지고 채무자 측에서 쓰던 물건을 그대로 되사려 한다는 점을 노려 경매꾼들이 접근하는 것이다.
한 전문 경매꾼은 “예전에는 부동산처럼 억 단위의 경매를 하는 경매꾼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동산처럼 부담 없는 금액을 투자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경매꾼들이 늘었다”며 “금액이 적다 보니 수익은 적지만 대신 안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