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화가 났다. 돈만 밝히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부러움이 더 커졌다. 심지어 "역시~"라는 감탄사마저 튀어나왔다. 이때는 전문가로 보였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감탄사 뒤에 "이러니 돈을 벌지"라는 혼잣말이 섞여 나왔다. 사뭇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감탄은 이내 한탄으로 바뀌었다. "난 그동안 뭘 하고 살았나.", "우리 부모님은 뭘 하셨나.", "나도 돈이 많았으면…." 등의 생각이 두서없이 오갔다. 37년 동안 '그냥' 살아온 내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중엔 '돈이 돈을 벌고 가난하면 계속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우리나라 현실이 싫었다. 결국 원망과 씁쓸한 마음이 남았다. 여기까지가 꽤 큰돈을 굴리며 부동산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이미자씨(가명·65·여)와 동행취재하며 느낀 소감이다.

 
지난 4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 신사동에 위치한 한 4층짜리 건물 앞에서 동행취재하기로 한 이씨를 만났다. 취재를 위해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만난 이씨는 500억원대 자산가로, 부동산투자의 큰손이었다. 그동안 국내 부동산시장이 침체기였던 까닭에 한동안 휴식기를 가진 이씨는 최근 부동산경기가 살아날 움직임을 보이자 다시 투자할 물건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물론 그는 처음에는 동행취재를 꺼려했다. 소개한 지인과 함께 수차례에 걸친 설득 끝에 겨우 동의를 얻었다. 다만 절대 이름을 밝히지 말 것과 건물명이나 자신의 흔적이 남을 만한 내용은 다뤄서는 안 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이렇게라도 취재가 가능한 것이 어딘가. 국내 정서상 부동산투자로 돈을 모으는 사람들을 보는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다. 기자도 그가 돈만 밝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이씨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강남 신사동에 위치한 4층짜리 건물. 이곳은 이씨가 소유한 건물 중 한곳이다. 이씨가 이곳에 들른 이유는 임차인이 3개월 동안 월세를 내지 않아서다. 그동안 관리인을 통해 월세 지불을 요구했지만 3개월이 지나자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어 직접 퇴거를 요구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임차인을 만난 이씨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매몰찼다. "일주일 내로 밀린 월세를 내지 못하면 바로 퇴거하셔야 합니다. 사업이 잘 안되면 보증금이라도 받아 나가셔야죠. 그게 사장님을 위해서도 더 나은 결정이 될 겁니다."

임차인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흥분한 듯한 어조로 "예. 그렇게 하죠. 저도 나갈 생각입니다"라며 문을 세게 닫아버렸다.


이후 이씨의 차를 타고 서울 서대문으로 이동했다. 기회다 싶어 "좀 시간을 주시면 안됐나요?"라고 묻자 이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임차인에게 도움이 될까요? 여기보다 보증금이나 월세가 더 싼 곳으로 옮겨가 고정비용을 아끼며 사업하는 게 좋지요. 그리고 이건 제가 임대사업을 하면서 세운 철칙입니다. 동정은 서로를 힘들게 할 뿐입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목적지인 서대문구 합동 프랑스대사관 인근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사사무소에 도착했다. 이곳에 들어서자 사장으로 보이는 다소 마른 외모의 남자가 큰소리로 외쳤다. "아이고 여사님 오셨습니까." 허리를 90도로 굽히는 남자는 이미자씨를 보자마자 입이 찢어져라 웃음 지어보였다. 인사를 받는 이씨는 누가 봐도 VIP고객이었고 인사를 하는 중개소 사장은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듯 굴었다.


두사람은 본격적으로 일 얘기를 나눴다. 먼저 중개소 사장이 입을 열었다. "여사님이 조만간 들르신다는 말을 듣고 물건 여러개를 준비해 뒀습니다. 투자하시려는 곳이 아파트죠? 다른 사람들에게는 소개도 안했습니다. 두채 생각하시는 거 맞고요?"

이씨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우선 두채 생각하고 있어요. 가급적 같은 동 아파트면 좋겠고 평형대는 중소형 위주로요. 세입자도 바로 구해주면 좋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중개소 사장이 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 준비해 뒀습니다. 그런데 전에 말씀드린 대로 지금 당장 월세로 놓기는 좀 어려워요. 대신 반전세로 하면 바로 세입자를 구할 수 있습니다. 월세는 시간이 좀 걸리거든요."

이씨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매매가가 얼마죠? 저번에 보니까 이곳 아파트 28평이 3억8000만원이던데 반전세면 요즘 시세가 얼마예요?" 중개소 사장이 대답했다. "2억원에 120만~150만원 정도 받을 수 있습니다. 같은 평형대로 같은 동에 두채가 마침 매물로 나왔는데 어떠세요?"

이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괜찮네요. 계약하시죠."라고 말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중개소 사장은 전화를 돌리며 집 주인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집 주인들을 기다리는 동안 이씨에게 물었다. "집은 안 보세요? 혹시 세입자가 안 구해지면 어떻게 하시려고…."

이에 이씨는 "집이야 이미 며칠 전에 와서 봐 뒀죠. 세입자는 요즘 같이 전세 구하기 힘든 시기에는 잘 구해져요. 그리고 이곳 사장님과 1~2년 거래한 것도 아니고 금방 나갈 거예요"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지금 타이밍상 아파트에 투자하는 게 가장 안정적이에요. 물론 큰돈은 못 벌어도 집값은 오를 거고 전세는 더 구하기 힘들어질 겁니다"라며 현재 국내 부동산시장의 흐름을 설명했다. 최근 1~2년 사이 국내 부동산시장의 흐름을 보면 이씨의 분석은 정확했다. 역시 투자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세로 120만원을 받으면 괜찮은 건지, 혹시라도 집값이 떨어져 손해볼 걱정은 안 하는지 물었다. 이씨는 "보증금 2억은 다시 돌려받는다 치고 실제 투자한 비용 1억8000만원에 월 120만원이면 은행에 맡겨두는 것보다 훨씬 낫죠." 너무나 계산적인 이씨의 답변에 기자는 말문이 막혔다.

이때 중개소로 한 남성이 찾아왔다. 이씨는 해당 아파트의 등기부등본을 꼼꼼히 살핀 후 이 남성과 바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본거래 날짜를 정한 후 남성은 돌아갔고 이후 찾아온 다른 집주인과도 바로 계약했다.

계약을 마친 후 이씨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부동산투자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이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시장 분위기나 경제상황, 그리고 지역 호재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성공여부가 달라지지만 이는 꼼수에 불과합니다. 특히 조심할 것은 여윳돈이 없으면 부동산투자는 절대 금물이라는 겁니다. 이유는 큰 금액이 들어가는 만큼 빚을 얻거나 담보를 맡겨서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실패할 경우 그 손해가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죠. 그래서 부동산투자는 현금으로 해야 수익이 생기고 돈이 돈을 벌어줍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