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죽어서 나라 지키는 용이 됐다. 천재지변은 그림 같은 바다를 만들고 용이 된 왕은 사찰을 드나들며 기도하고 휴식했다. 이곳은 신화와 역사의 어디쯤인 듯하다. 경주의 동해, 그곳으로 간다.
문무대왕릉. ◆ 용이 된 왕의 바다, 문무대왕릉
올 때마다 파도가 거세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파도 저 너머로 푸른 용이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다. 경주에서 36㎞ 떨어진 동해바다, 이곳에는 문무대왕의 바다무덤이 있다.
문무왕은 신라 31대 왕이다. 태종무열왕의 장자로 재위 21년 동안 당나라와 연합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후에 당나라를 몰아냄으로써 삼국통일을 완성했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에 동해의 용이 돼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했다. 재위 21년 (681년)에 승하했고 이 바다, 봉길리 큰 바위에 장사됐다. 이를 위해 불교식으로 화장을 했고 큰 바위에 사방으로 수로를 열고 안쪽에 공간을 둬 유골을 안치하고 화강암으로 덮었다. 이러한 장치는 일부러 깎고 다듬은 것이 아니라 이 바위가 가지고 있던 자연스런 형태로 이뤄졌다. 다만 안쪽 공간만 약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바위마저도 문무대왕을 영접하려고 준비돼 있었던 것 같다. 수중 무덤인 것도 특이하지만 인도의 산치탑이나 불탑의 형식이 적용된,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왕릉이다.
왕은 정말 용이 된 것 같다. 파도의 용맹함이 여행자를 압도하는데 이러한 기운 때문인지 이곳에선 언제나 무속인과 치성 드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파도 끝에 앉아 손을 모은 사람 앞에는 가느다란 촛불이 흔들리고 간절한 기도는 끝날 줄을 모른다. 갈매기들만 대왕암과 해변을 날며 무념무상의 자유를 과시한다.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바다와 파도를 만나는데 새들은 한가롭기만 하다. 그들의 평온을 깨는 것은 바람도 파도도 아닌 간식거리다. 갑자기 떼지어 날아오르는 갈매기들의 목적지는 백발백중 과자를 꺼내 새를 부르는 여행자다.
경주양남주상절리. ◆ 파도소리 주상절리길
문무대왕릉에서 바닷길로 5㎞, 찻길로 7㎞ 떨어진 곳에 읍천항이 있다. 이곳에서 ‘파도소리 주상절리길’이 시작된다. 이 길은 읍청항에서 하서항까지 1.7㎞ 정도라 걷기 길로는 짧은 편에 속하지만 시간이 의외로 많이 걸리는 코스다. 주상절리 절경으로 몇걸음 뗄 때마다 자꾸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 표지판으로 보면 하도항에서 읍천항쪽으로 거슬러 올라오며 주요 포인트를 설명해 놓았는데 시작점은 양쪽 어디든 관계없다. 다만 읍천항에서 시작할 경우엔 바닷가의 벽화마을을 잠시 구경해도 좋겠다. 길이 시작되는 방파제에서 너도나도 인증샷을 찍는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바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주상절리군을 한컷에 담으려고 셀카봉을 꺼내 들기도 하고 이쪽 저쪽으로 카메라를 움직이며 각도를 잡는다.
이곳은 그림이 참 다양하다. 해송과 나무가 어울린 길도 예쁘고 길과 함께 한눈에 들어오는 바다도 좋다. 바닷가 바위와 주상절리는 그 형태와 모습이 다양하고 파도에 부서지는 하얀 포말과 검은 바위의 색감이 아름답다. 거리와 방향에 따라 산수화처럼 보이기도 현대미술처럼 보이기도 하는 바위의 패턴도 재미있다. 사람들은 다른 주상절리와 구분하기 위해 ‘경주주상절리’라고도 부르는데 실제 모습을 보면 형태에서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다.
주상절리는 화산이 폭발하며 용암이 흐르다 차가운 바닷물을 만나 바위가 된 것이다. 이것이 마치 자른 원목을 포개 놓은 것 같은데 이곳 경주 양남 주상절리는 기울어진 것, 누워있는 것, 위로 솟은 것, 동그랗게 퍼진 것 등 대규모는 아니지만 각자 다양한 모습으로 해안선을 따라 흩뿌려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다. 어떤 사람은 주름치마 같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꽃봉오리 같다고도 하며 이곳의 대표 사진으로 등장하곤 한다. 그 모습이 마치 바다 위에 핀 해국 같다고 하여 ‘동해의 꽃’ 이라고도 부른다.
길은 걷기 편하다. 주상절리를 잘 볼 수 있도록 데크길이 만들어져 있어 가족과 함께 해도 좋고 데이트 코스로도 그만이다. 길에서 만나는 출렁다리, 전망대, 빨간 우체통과 정자는 하나같이 ‘사진 포인트’다. 곳곳에 마련된 벤치와 쉼터에서 놀다 쉬다 한가로운 산책이 좋다 보니 저녁에도 통행을 허용하고 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감은사지 당나무. ◆ 금당 아래 은밀한 통로, 감은사지
경주 시내에서 문무왕릉으로 가는 길목에 감은사지가 도착을 알린다. 길가에 커다란 석탑 두개가 보이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감은사지 삼층석탑이고 여기서 1㎞ 정도 더 가면 문무대왕릉이다. 절터와 왕릉은 가까운 거리만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감은사지는 해상왕릉의 주인인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왜구의 침략을 막고자 이곳에 세우기 시작했다. 문무왕이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아들인 신문왕이 686년에 완성했다. 그리고 ‘아버지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에서 감은사(感恩寺)라 이름을 지었다.
절터는 일부분만 남아있다. 중문터와 화랑터의 남쪽 절반과 금당터의 대부분은 밭이 됐고, 화랑터 북쪽 부분과 강당터가 민가에 들어갔다고 하니 창건 당시 규모가 어땠을 지 짐작이 간다. 감은사는 황룡사•사천왕사와 함께 나라를 보호하는 호국사찰이었다고 한다.
이곳엔 흥미로운 흔적들이 남아 있다. 우선 탑이다. 탑은 높이 13.4m의 장대한 모습으로 동쪽과 서쪽에 한쌍을 이루고 있다. 안정감 있으면서 위풍당당한 모습이 멀리서도 인상적인데 탑을 해체하고 보수하는 과정에서 서탑에서는 사리장치가, 동탑에서는 금동사리함이 발견됐다.
금당터는 특이하다. 두개의 탑 사이로 금당이었던 자리가 잘 보존돼 있는데 건물을 받친 장대석 아래로 얕은 지하 공간이 있다. 60㎝ 정도 높이의 아래 공간은 무슨 용도였을까.
이곳은 사람의 영역이 아닌 용이 된 문무왕의 공간이다. <삼국유사>에는 ‘이 공간은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을 감은사 금당에 들어오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과연 용이 드나들기 딱 좋았을 것 같은 길이다.
잠시 상상해 본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감사의 제를 지내고 용은 길을 찾아 들어와 바다에서 지친 몸을 쉬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 용이 올까? 행여 여행자의 소란이 방해라도 될까봐 발끝을 조심하며 절터를 빠져 나온다.
● 여행 정보
☞ 문무대왕릉 가는 법 [승용차] 경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경부고속도로 - 서라벌대로 - 배반지하차도 진입 후 산업로 - 구황교네거리에서 ‘감포, 보문관광단지’ 방면으로 우회전 - 경감로 - 보문교삼거리에서 ‘감포, 불국사’ 방면으로 우회전 - 경감로 - 추령터널 - 어일삼거리에서 ‘문무대왕릉, 감은사지, 양남주상절리’ 방면으로 우회전 - 감은로 - 대본삼거리에서 ‘울산, 원자력발전소, 양남주상절리’ 방면으로 우회전 - 동해안로 - 봉길해안길
[대중교통] 경주고속버스터미널 - 중앙시장에서 150번 승차 - 봉길 1리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문무대왕릉: 검색어 ‘문무대왕릉’, ‘봉길해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동해안로 1366-5 양남 주상절리: 검색어 ‘읍천항’, ‘읍천 1리 마을회관’ 또는 ‘하서항’ / 경상북도 경주시 하서리 하서항 또는 경상북도 경주시 읍천리 읍천항 감은사지: 검색어 ‘감은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동해안로 1248
< 여행지 주요 정보 > 경주문화관광 http://guide.gyeongju.go.kr / 054-779-8585 경주역사문화탐방 스탬프 투어: 경주의 역사문화명소 15곳에 있는 스탬프를 해당 리플렛에 찍어 완성하면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사이트에서 사은품 신청)
주상절리 해양수산과: 054-779-6320 야간통행: 하절기 저녁 9시 30분까지, 동절기 오후 8시까지
문무대왕릉 문의: 054-779-8743~8759 주차비: 소형 3000원 / 대형 4000원
< 음식 > 만선회센터: 감포 앞바다에서 매일 직접 낚시나 그물로 잡은 자연산 활어를 사용한다고 하는 횟집으로 여행자들에게 소문나 있는 대규모 식당이다. 만선모듬회 5만~10만원 / 회정식 2만원 / 물회 1만5000원 / 회덮밥 1만2000원 020-3515-8758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3-2
양남 주상절리빵: 주상절리 모양을 한 찰보리빵으로 앙금에 호두를 넣었고, 오징어먹물을 천연색소로 사용한다. ‘양남빵’ 제과점에서 개발했고 양남빵집과 주상절리 근처 휴게소에서 판매한다. 택배 주문시 5박스 이상이면 무료배송이고 선물하기 좋다. 1박스(12개) 1만원 054-776-8333 /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412-4
< 숙소 > 바다이야기: 주상절리가 바로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어 최고의 경관을 자랑한다. 근처에 마트가 가깝고, 갯바위나 방파제로 나가 바다 낚시를 할 수 있다. 객실요금: 6만 ~ 19만원 010-7336-3095 /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40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