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차모씨. 지난 2008년 가게를 열자마자 2개월 만에 건물주가 바뀌었다. 이후 4개월간 진행된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영업 손실을 입어야만 했다. 하지만 바뀐 건물주는 1년 후 임대료를 50% 올렸다.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던 차씨는 결국 임대료를 연체했고 올 4월 건물주는 연체를 근거로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4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차씨는 지난 5월13일 이전에 계약이 만료돼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데다 건물주가 직접 장사를 하기로 해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 이전 임차인에게 줬던 권리금은 허공에 날아가게 됐다.
차씨의 사례와 같이 현재도 많은 임차인은 계약 연장은 커녕 권리금 회수의 기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임차인에게 유리한 법률임에도 소급적용을 받지 못하는 데다 법 자체가 허점이 많아 개정안 시행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탓이다.
◆허점투성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임차인들은 개정안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유명무실한 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가장 큰 문제는 환산보증금이다. 서울의 경우 환산보증금이 4억원을 넘지 않으면 재계약 때 임대료 상승률 9% 상한을 적용받을 수 있다.
문제는 지난해 3월 서울시 조사 결과 강남의 평균 환산보증금은 5억4697만원으로 약 45.5%가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전체 22.6%는 법의 보호망에서 비켜나 있다.
부동산114에서 집계한 서울 주요 상가 월 임대료 추이(만원/1㎡)를 보면 지난해 1분기에서 올 2분기까지 이태원은 70.5%, 종각역 50.2%, 홍대 앞 34.2%, 신사역 25.9%, 압구정 19.3%, 강남역 1.7%씩 임대료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평균 임대수익률은 고작 0.1% 올랐다.
임대료가 치솟으면서 폐업하는 자영업자도 속출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지난해 408만2000명보다 10만7000명 줄어든 397만5000명이다. 1995년 상반기의 397만1000명 이후 20년 만에 최저치다.
허술한 법 조항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임대인의 방해금지의무 예외 사유 중 '임대차목적물인 상가건물을 1년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라는 조항이 있어 건물주가 18개월분의 임대료를 포기하고 권리금을 임차인에게 주지 않는 방식이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에 따르면 상가 평균 권리금은 9780만원으로 임대료 327만원보다 30배나 많은 수준이다. 지역에 따라 많게는 100배 가까이 차이가 있다 보니 건물주가 합법적 약탈을 시도하는 사례가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임영희 맘상모 사무국장은 "임차인에게 노골적으로 18개월 동안 상가를 비워야 하니 나가라고 종용한 건물주가 있다"면서 "그러나 법적으로는 대응할 방법이 없다. 하루라도 빨리 독소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회수기회 보장 기간(종료 직전 3개월) 조항을 빌미로 출산이나 이주(이민) 등 상가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임차인이 점포를 양도할 때 계약 기간이 상당 기간 남아있다는 이유로 권리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건물주의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다.
◆ 법정 외엔 하소연 할 곳도 없는 임차인
재개발·재건축 정비구역 임차인에 대한 보호조항이 개정법에 빠진 것도 문제다. 신규임차인과 임대인이 계약을 체결할 때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재건축 계획을 사전에 알리는 경우에는 사실상 권리금을 정상적으로 회수하기 어렵다.
권리금을 받을 신규임차인이 없어 기존 임차인은 그야말로 맨몸으로 쫓겨나게 생긴 셈이다. 법의 본래 취지인 영업가치 보장과 거리가 멀다. 영업 기간을 5년까지만 보호하는 것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투자한 원금을 회수하기에 5년은 너무 짧다는 것. 그럼에도 실제 평균 임대 기간은 1.7년에 불과하다. 최근 FR인베스트먼트가 서울에 있는 상가의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데 21년(6월 기준)이 걸린다는 통계를 발표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상가임대차 관련 분쟁을 조정할 기구조차 없다는 것 역시 문제다. 건물주와 권리금으로 분쟁이 생기면 임차인은 민사소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소송 자체의 생소함과 어려움, 이에 따른 비용과 감정평가비용까지 임차인에게는 큰 부담이다.
실제로 소송과 감정평가 비용 탓에 손해배상을 포기하는 임차인이 적지 않다. 이런 이유로 애초 개정안에 포함됐던 시도별 분쟁조정위원회 구성이 절실해 보인다.
관련 전문가들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더욱 적극적인 개입에 대해 역설했다. 김남주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는 "모든 상가가 재계약 때 임대료를 9%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개정안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역시 이른바 '착한 임대료'를 강조했다. 그는 "임대료가 낮아져 특색 있는 가게가 늘어나면 영업이 활성화돼 건물주로서도 이익이고 임차인도 종업원 월급을 제대로 주면서 장사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 팀장은 "정부는 앞으로도 세부적인 부분을 조율해 나가야 한다. 애초 올해 마련된 개정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는 게 무리"라며 "특히 이번에 배제된 전통시장은 권리금 문제와 관련한 논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임 사무국장은 "정부가 지난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권리금 보호방안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던 것처럼 쫓겨나는 임차인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마음 편히 장사할 수 있는 환경이 모든 임차인의 소박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법의 효용성을 높이려면 사회적 인식의 개선이 선제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강민구 법무법인 진솔 변호사는 "권리금은 함부로 빼앗아서도 빼앗겨서도 안 되는 것"이라며 "권리금 약탈은 범죄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하루 빨리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