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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던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용산개발)이 무산된 이후 오랫동안 답보상태에 놓였던 서부이촌동 재건축에 다시 시동이 걸렸다. 서울시가 지난해 말 서부이촌동 일부 지구의 재건축을 골자로 한 '용산 지구단위계획 결정안'을 수정 가결했기 때문이다.
개발 호재에 인근 부동산시장이 조심스레 살아나는 분위기라는 언론보도와 달리 현장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주민 대다수는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기보다는 냉소에 가까운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재건축 연한(30년)을 훌쩍 넘긴 노후주택이 밀집한 이곳은 지난 2007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용산개발사업을 '한강르네상스'와 연계하면서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 재건축 추진이 좌절된 이후 9년이라는 긴 세월을 돌고 돌아온 터라 그들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재건축? 주민들은 '냉담'
새해를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31일 기자가 찾은 서부이촌동은 한낮임에도 거리를 오가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적막감마저 감도는 중산아파트 단지에선 즐비하게 늘어선 자동차만이 사람의 존재를 짐작케 하는 유일한 증거였다.
과거 직장인들로 붐비던 철도창 부지를 마주한 상가골목도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용산개발 사업으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한솔제지, 서울우편집중국 등 기관과 기업이 떠난 이후 외부인의 방문이 뚝 끊긴 것처럼 보였다.
동원 베네스트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차모씨(38)는 "이곳 주민은 지난 수년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서인지 최근 시의 발표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모습"이라며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용적률 인상을 놓고 시와 실랑이를 벌였지만 이제는 거의 포기상태"라고 말했다.
인근 A공인중개사 대표 박모씨(45)도 비슷한 말을 건넸다. 그는 "그동안 이곳 주민은 용산개발 사업을 둘러싼 열풍에 휩쓸려 다니면서 지칠 대로 지친 상태"라며 "이제라도 재건축이 진행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정도거나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주민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재건축을 고대하는 주민도 있긴 하다"며 말을 이었다. 지난해 초 부동산시장이 오랜만에 활황을 띠면서 새로 이사 온 이들은 시의 발표 이후 미래가치를 보고 찾아든 투자자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원주민이 떠난 자리를 새로운 주민이 채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그 속사정이 씁쓸하다. 2013년 당시 용산개발사업의 시행사인 드림허브가 조사한 결과 서부이촌동 2300가구 중 절반인 54%(1250가구)가 평균 3억5000만원의 빚을 진 것으로 집계됐다.
2008년 시와 시행사가 제시한 보상계획을 믿고 대출을 받아 생활비 등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자를 제외한 대출 원금만 42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를 온전히 주민의 책임으로만 돌리기엔 시와 시행사의 '원죄'가 너무 크다.
그 결과 이곳에 남은 사람은 현재까지 버틸 여력이 있던 주민과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기가 버거운 고령의 주민 뿐이다. 이촌시범 아파트 주민 오모씨(67)는 "재건축으로 돈을 벌고 싶은 욕심도, 좋은 아파트에서 살고 싶은 욕심도 이제는 없다"고 혀를 찼다.
◆원망·불신 소용돌이 치는 서부이촌동
일부 주민은 시에 반감을 표하기도 했다. 중산시범 아파트 주민 조모씨(54)는 "시의 계획을 보면 중산시범 아파트는 30층까지 재건축할 수 있으나 일부 단지는 남산조망과 국제업무지구에서 한강쪽을 바라보는 통경축을 확보하기 위해 최고 층수가 13층에 불과하다"고 힐난했다.
조씨는 "이렇게 되면 현재 원주민만 수용하는 정도의 규모밖에 되지 않는다. 고령층과 저소득층이 많은 이곳 주민 중 누가 수억원에 달하는 추가분담금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이는 시가 계획을 수립하면서 원주민 재정착을 아예 염두에도 두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시는 임대주택 등 기부채납을 통해 법정 상한인 500%까지 용적률을 높일 수 있도록 했으나 늘어난 일반가구 수만큼 임대주택을 확보한다고 해도 층수 제한을 받는 중산시범 아파트에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조씨와 같은 단지에 거주한다는 오모씨(49)도 "시는 지난해 하반기 주민설명회 때 1년여의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일부 단지의 최고 층수를 11층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면서 "그런데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원주민 중 40가구 정도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는 시민의 혈세로 용역을 진행해 놓고 엉터리 결과를 내놨다. 시의 계획은 신뢰가 가지 않는다"면서 "줄곧 시는 '주민과 합의를 통해 계획을 설정하겠다'고 하고선 주민의 의사를 단 한번도 들으려 하지 않고 일방적인 통보만 해왔다"고 꼬집었다.
시에 대한 불신만큼이나 서부이촌동 주민의 가슴속에 맺힌 큰 응어리는 또 있다. 용산개발사업으로 수년간 재산권을 제한당하면서 주민이 입은 물질적·정신적 피해에 대해 책임질 사람도, 보상할 방법도 없다는 사실이다.
주민 홍모씨(41)는 "오세훈 전 시장은 사업만 벌여놨고 박원순 시장도 재건축을 질질 끌고만 있다"며 "전·현직 시장들이 탁상공론을 하는 사이 주민에게 누적된 피해는 도대체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느냐"고 토로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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