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문화예술을 특정 작가와 그의 유명 작품을 통해 기억한다. 이들을 묶어서 낭만주의, 고전주의 등 일정한 유파의 흐름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이런 기억과 연상에 따른다면 문화예술을 움직이는 것은 작가와 그의 작품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들이 주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특정한 작품들이 유행했고 그것이 역사의 기록에 남았다고 말이다.


이런 작가들과 작품이 선호되려면 그것을 가치 있게 여기고 공유하는 이들이 존재해야 한다. 작가와 작품은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사회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적어도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려면 말이다. 이점에 착안해 살펴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다.



이 책에서 사회사라고 말한 이유는 바로 문화예술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탄생하고 공유될 수 있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문화예술사가 아니라 사회사이기 때문에 사회 속에서 문화예술이 어떻게 존립해왔는지 보여준다. 여기서 사회라는 것은 사람들(주체) 간의 관계성이다. 관계성은 사회 구조와도 밀접하다. 이 책은 문화예술이 누구에게 선호되고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이 사회구조에서 어떤 관계성 속에 있었는지를 살핀다. 저자는 구석기 시대의 동굴벽화부터 20세기 영화예술까지 이런 관점으로 분석한다.

책 내용 중 선사시대를 다룬 부분을 살펴보자. 그 시대에 인간이 남긴 예술의 특징은 자연주의인데 재기가 넘치며 인상주의 기법을 보인다. 그들은 신성한 힘이나 초월적인 존재, 나아가 종교적인 믿음도 없었다. 그들은 사냥을 위해 유랑을 다녔고 사냥 대상인 동물을 소유하려는 뜻에서 그림을 동굴에 그려 넣었다. 그러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그러한 마술 같은 일은 실용적인 목적 그 자체였다.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면서 문화예술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자연주의에서 기하학 문화예술의 시대가 된다. 농경문화의 신석기 시대가 되면서 농사가 잘 되고 못 되고는 일정한 법칙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로써 특정한 법칙을 관장하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생긴다. 종교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로써 문화예술 작품은 일상생활과 초월적 세계라는 이중적인 세상에 접근한다.


이 책은 개별적인 사실의 확인이나 암기를 중시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잘 꿰어낼 수 있는 관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 관계의 변동에 따라 문학을 포함한 예술이 어떻게 창작·전달·향유되는지 유심히 살펴보기를 권한다. 사회적 관계라는 것은 정치적 권력의 변동이나 경제적 생산 구조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주체들의 관계를 말한다. 이런 점은 과거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문화예술의 흐름을 바라보고 전망·분석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문화예술사도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반성완 외 옮김 | 창비 펴냄 | 7만2000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