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선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이 지난 8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개선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DB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기업집단 기준 상향’이 충분한 여론수렴과 국회 논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기업집단 기준 상향은 2014년 말 정부의 ‘규제 기요틴(단두대)’ 과제에 포함됐으나 2년간 진척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한 달 반 만에 결론이 났다.

앞서 결정권을 갖고 있던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불과 두 달 전인 4월 1일 대기업집단 신규 지정·발표 시에도 공식적으로 “기준 상향 여부, 방법, 시기 등은 검토하거나 결정한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 4월 26일 박 대통령이 언론사 편집국장 간담회에서 대기업집단 기준에 대해 “시대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말한 이후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이처럼 대기업집단 기준 상향이 속도전으로 이뤄지다보니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먼저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에 구멍이 발생하게 됐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기준은 자산 10조원으로 상향 조정하지만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기존대로 자산 5조원 이상으로 유지할 방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난 9일 “이 규제는 현 정부 경제민주화의 핵심 정책 중 하나로 현행 기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차등 규제를 위해서는 공정거래법과 시행령 개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할 사안임에도 오는 9월 시행령만 우선 고칠 예정이어서 공정거래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총수 일가 사익편취 조사에 공백이 발생하게 됐다. 정부는 오는 10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지만 언제 개정안이 통과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한편 김기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기업집단 기준 상향이 급물살을 탄 것과 관련해 “공정거래법은 여러가지 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차등적으로 적용해야 하는데 대통령 말 한마디에 졸속으로 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대기업집단 기준은 굉장히 경제적 영향이 큰 문제인데 정부가 시행령에 의해 임의로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법률 개정 사항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