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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골목길 풍경이 사라진지 오래다. 몇몇 남아 있는 예스러운 골목길이 추억을 그리는 이들의 마음을 달래줄 뿐이다. 현대인들에게 골목길은 어떤 의미일까. 고층 아파트와 빌딩 숲에 둘러싸인 답답한 세상, 그 안에 숨겨진 보석 같은 추억 속 골목길 풍경을 <머니S>가 들여다봤다.<편집자주>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우리집은 살던 골목을 떠났다. 아파트가 즐비한 1기신도시로 이사했다. 초록대문집에 사는 친구 대신 1301호에 사는 친구가 생겼다. 골목길을 뛰어가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하나둘 나이를 먹으면서 골목에서의 기억은 희미해졌다. ‘골목길’이란 단어 자체가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네모 모양의 계획적으로 구획된 공간에서 이뤄진다. 문득 골목길이 그리워졌다. 시간을 돌릴수는 없겠지만 그 정취를 다시 느끼고 싶어졌다. 옛 정취를 간직한 서울시내 골목길을 둘러봤다.
하나둘 나이를 먹으면서 골목에서의 기억은 희미해졌다. ‘골목길’이란 단어 자체가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네모 모양의 계획적으로 구획된 공간에서 이뤄진다. 문득 골목길이 그리워졌다. 시간을 돌릴수는 없겠지만 그 정취를 다시 느끼고 싶어졌다. 옛 정취를 간직한 서울시내 골목길을 둘러봤다.
◆ 과거와 현재의 공존 ‘해방촌’
이태원은 서울에서 가장 ‘핫’한 곳 중 하나다. 주말 밤 해밀톤호텔 근처는 유흥을 즐기는 수많은 사람이 운집하고 엄청난 소비가 이뤄진다. 하지만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상반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오래된 골목길이 있다. ‘해방촌’이 그곳이다.
해방촌은 그 지명에서 드러나듯 1945년 해방과 함께 형성된 동네다. 광복 후 귀국한 동포와 실향민, 한국전쟁 피난민이 거주하며 만들어졌다. 행정구역상으로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용산구 용산2가동 일대를 지칭한다.
사실 해방촌은 SNS를 통해 젊은층에게 잘 알려진 동네다. 경리단길이나 녹사평역에서 이어지는 한신아파트 길목에 ‘해방촌’이란 간판이 서 있고 오래된 옹기집이 있는 신흥로를 따라 특색있는 레스토랑과 카페, 서점 등이 줄지어 있다. 앞서 몇차례 이 길가의 식당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들어섰다. 해방촌 방문을 추천한 지인은 "진짜 골목을 느끼고 싶다면 108계단을 통해 마을에 들어가라"고 강조했다. 그가 알려준 루트를 따라 버스를 타고 용산중학교에서 하차해 길을 올랐다. 5분정도 걸으니 ‘108하늘계단’이 나타났다. 아래서 보니 까마득한 높이다.
이 계단은 1943년 일제가 경성호국신사를 지으면서 참배 길로 만들었다. 지금 신사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주민들 또한 신사가 어디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계단 곳곳에는 보수의 흔적이 있지만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이다. 좌우 계단 가운데 배치된 화단 역시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계단은 한칸 한칸이 그리 높지 않다. 젊은이들은 두계단씩 건너뛰며 뛰듯이 오르고 노인들은 한계단씩 느긋이 등반한다. 계단 좌우로는 다세대주택 출입문이 바로 맞닿아 있는데 이 광경이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108개의 계단을 올라 뒤를 돌아보니 서울 도심이 내려다 보인다.
골목길 이곳저곳을 정처없이 걸었다. 계단 위의 풍경은 대로변의 그것과 상반된다. 다세대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었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곳도 많아 보였다. 평일 오전시간, 추운 날씨라 그런지 골목에 나와있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빼곡히 늘어선 집들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의 골격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골목’의 정취를 느끼기는 충분하다.
걷다보니 신흥시장 입구가 나왔다. 안으로 들어서면 옛 골목의 골격이 그대로 간직돼있다. 햇빛을 가린 슬레이트 지붕 탓에 대낮임에도 어두컴컴하고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지만 조금 더 걸음을 옮기니 따뜻한 분위기의 카페가 눈에 들어오며 분위기가 확 바뀐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분위기의 골목이다. 근처에는 유명연예인이 차렸다는 책방도 있다. 아쉽게도 이날은 문이 닫혀있었다.
해방촌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 시장은 과거 니트 제조공장이 들어서 이 지역의 경제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상점은 불이 꺼져있고 정육점과 세탁소, 인쇄소 등 몇몇 상점만 남아있다. 상인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상점은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실 겸 주거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시장을 나와 해방촌 오거리에서 녹사평역 방향으로 신흥로를 따라 내려오니 어느 순간 경계선을 넘은 듯 거리의 분위기가 뒤바뀐다. 다세대주택들이 가득하던 골목 양켠에는 이국적인 음식점과 카페가 줄지어 늘어섰고 평일 낮시간임에도 사람들로 빼곡하다.
현재의 해방촌은 두개의 층위를 보여준다. 해방 이후 만들어진 오래된 마을이 골격이라면 젊은 사람과 외국인이 유입되며 덧입혀진 새로운 환경은 피부다. 골목의 정취와 꿈틀거리는 변화를 느끼려면 해방촌을 걸어보자.
◆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길 ‘서촌’
경복궁을 기준으로 ‘서쪽 마을’을 뜻하는 서촌은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를 말한다. 청와대 인근이라 개발이 제한돼 옛 가옥이 잘 보존된 동네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혹은 3번출구로 나오면 자하문로를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나뉜다. 자하문로 동쪽은 갤러리와 미술관 등이 주를 이루고 서쪽에는 먹거리와 시장 등의 볼거리가 많다.
골목에 진입하기 전 대로변의 모습은 영락없는 번화가다.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입소문을 타면서 상권이 형성됐고 프랜차이즈카페와 화장품가게 등이 대거 들어섰다. 서울시는 젠트리피케이션 조짐을 보이는 서촌에 지난해 7월부터 프랜차이즈카페와 제과점 등이 입점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하지만 대로변에서 한블록만 들어서도 서울 다른지역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서촌은 조선시대 중인들이 모여살던 지역으로 현재 이곳에 위치한 한옥 대부분은 1910년대 이후 주택계획에 의해 대량으로 지어진 ‘개량 한옥’이다.
서촌의 골목길은 단 한번도 한옥에서 살아본 적 없는 기자가 추억하는 ‘골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길이 풍기는 정취는 너무나 익숙했다. 차 한대 지나가기 힘든 좁은 길이라는 공통점 때문이거나 미디어를 통해 늘 접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길’인 서촌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됐다.
먼저 자하문로 동쪽을 걸었다. 평일 오후시간임에도 대림미술관 앞에는 전시를 위해 방문한 사람들의 발길로 분주했다. 전시나 관람 같은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골목을 걷는 사람도 많다. 골목길 특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해진 까닭이다.
서촌의 한옥들은 주거용이었지만 최근 상권이 커져 갤러리나 게스트하우스, 체험공간 등으로 많이 활용된다. 효자로에 다다르면 마주칠 수 있는 ‘보안여관’ 역시 유명한 곳이다. 광복 이후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 시인과 작가, 예술인들이 자리를 잡기 전 장기 투숙하는 공간이었다. 현재도 간판을 그대로 걸고 있지만 각종 전시나 문화행사를 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어느새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움직인 탓에 출출한 배를 움켜쥐고 자하문길을 건너 서쪽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가봐야 할 곳은 통인시장. ‘엽전 도시락’ 등으로 유명세를 탔다. 기름떡볶이 등 침샘을 자극하는 음식들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골목길에 들어가면 노포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50년이 됐다는 중국집에서 허겁지겁 자장면을 먹다가 옆테이블에 앉은 손님과 대화를 하게 됐다. 오래 전부터 이 집의 단골이라는 그는 “사람들이 서촌의 매력을 느끼고 찾는 것은 고맙지만 집세가 올라 노포들이 문을 닫는다”며 아쉬워했다.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서촌에서 가장 잘 알려진 ‘대오서점’이 눈에 들어온다. 1951년 개업해 60년간 운영된 헌책방이다. 현재는 창업주의 자녀가 카페를 겸해 운영 중이다.
어느새 해는 완전히 저물어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단 몇시간의 걸음걸이였지만 깊은 여운이 남았다. 서울 골목길 여행은 옛 기억속에 남은 익숙함에 낯선 설렘이 더해져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서울’이란 공간의 깊은 향기는 큰 도로가 아니라 골목길에 남아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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