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3시 서울 흑석동 중앙대 교수연구동 연구실. 무더운 날씨만큼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만든 이창재 감독(중앙대학 첨단영상대학원 교수)은 이날 하루종일 인터뷰를 소화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총 4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베테랑 감독이다. 그 중 최근 <노무현입니다>가 흥행하면서 단숨에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영화는 개봉 10일 만에 관객 수 100만명을 돌파했고 200만명 고지를 바라본다.

“아직 인기가 실감나지 않는다. 영화가 잘 되면 주인공이 인터뷰해야 하는데 우리는 주인공이 안 계셔서 감독이 대신 주목받는다(웃음).”


한시간 남짓 이어진 인터뷰는 그의 겸손한 멘트로 시작됐다.


이창재 영화감독. /사진=임한별 기자

◆법대생이 마이크로폰을 잡기까지

“영화를 찍은 건 도전이었다. 젊은 시절 흔들리는 갈대처럼 많이 방황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는 열망이 있었다. 현실만 보고 살았다면 지금처럼 영화를 찍지 못했을 것 같다.”

한양대 법대를 졸업한 그가 마이크로폰을 잡은 데는 사회문제를 풀고자 했던 욕구가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부모님 권유로 법을 전공했지만 대학교 3학년때 사회문제를 다룬 소설을 쓰고 상을 받기도 했다.


35세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돌연 미국 유학을 떠났다. 광고회사, 케이블TV PD로 일했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예술대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특히 허구의 세계가 아닌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주목했다. 그에게 다큐멘터리는 길고 긴 여행이다.

하루에도 수십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하고 막을 내리는 만큼 빛을 보지 못한 경우가 많지만 대상을 선택하고 타인의 삶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긴 여행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감독의 작품 <길 위에서>(2012)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출가한 상욱행자, 인터넷 검색으로 절에 왔다는 민재행자, 어린시절 사찰에 버려져 출가한 선우스님의 모습을 다뤘다. 이 감독은 영화를 찍는 동안 사찰에서 스님과 생활하면서 한때 불제자가 되고 싶었던 과거의 갈증을 원없이 풀었다.

호스피스 병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목숨>(2014)은 시한부 삶을 사는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담았다. 삶과 죽음에 고민이 깊었던 이 감독은 <목숨>을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노무현입니다>도 긴 여행과 같았다. 이 영화는 지지율 2% 안팎의 군소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새천년민주당 국민참여 경선에 출사표를 던지고 승리하는 모습을 심도있게 다뤘다.

각종 선거에서 4번이나 낙선하고 경선에서 꼴찌로 불린 그가 대선후보 1위가 되는 순간을 생생하게 연출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젊은 세대에게 희망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정치인이 아닌 사람 노무현은 지나칠 만큼 낙관적이다. 몇번이나 선거에서 떨어졌지만 ‘반갑습니다, 노무현입니다’라고 손을 내미는 모습에선 패배주의적 시각을 찾아볼 수 없다. ‘헬조선’에 살면서 절망에 빠진 젊은 세대에게 이 사람의 온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가치를 둔 삶이다. 경쟁이 없으면 갈등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영화 제작과정에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2014년 제작을 시작한 <노무현입니다>는 4년 후 빛을 보기까지 투자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선거캠프에 남은 경선영상도 12초에 불과해 자료 수집에도 애를 먹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안희정 충남도지사, 유시민 작가 등 노 전 대통령과 관련 깊은 인물 39명을 만나 노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면을 두루 조명했고 그들의 목소리로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기존 영화에서 성공스토리를 다뤘다면 실패해도 착하고 올바르게 사는 사람의 인생이 가치있다는 점을 소개하고 싶었다. 영화 <색, 계>로 잘 알려진 리안감독은 독립영화부터 상업영화까지 많은 장르를 다루지만 스토리텔링에 강한 영화를 만든다. 사람들의 인생과 가치, 그리고 삶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스토리를 전달하고 싶다.” 


이창재 영화감독. /사진=임한별 기자

관객을 웃고 울린 노무현 '굿바이'

이 감독은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정치인 노무현이 경선마다 '도와주십시오'라고 목 놓아 부르짖었던 모습만 기억되길 바라지 않았다.

"노무현은 선거가 끝난 후 참모들에게 '정말 힘들다'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남에게 신세도 못 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읽은 유서에서 '너무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는 문구도 그의 성격을 보여준다."

영화에는 눈물도 있고 웃음, 그리움, 미안함도 있다. 다양한 감정들이 러닝타임 내내 교차한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나는 사람 노무현을 그대로 보여주고 정치인으로서 오해했던 부분을 풀고자 했다."


관객들은 영화의 엔딩장면을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다. 노 전 대통령은 콧노래를 부르며 홀로 거리를 걷다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엔딩부분만 수없이 고쳤다. 홀로 길을 떠나는 대통령에게 '잘가요. 노무현'이란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의 인생을 다룬 영화인 만큼 노 전 대통령을 잘 보내주고 싶었다. 관객들도 같은 마음이었으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창재입니다’는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노무현입니다>가 손을 내밀며 사람에게 다가간 주인공의 삶을 보여준 것처럼 ‘이창재입니다’를 보여줄 수 있는 문구가 궁금했다.

“참 어려운 질문이다. 어떤 학생이 ‘교수님은 20대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겠나’라고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현재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나를 둘러싼 의문들을 풀고 있다. 앞으로도 책을 쓰고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인간과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계획이다. 그런 시간이 지나 작품으로 결실을 맺으면 ‘이창재’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9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