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산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의 보고회가 열린 27일 서울 중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임한별 기자

2015년 12월28일 위안부 합의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병기 전 국정원장의 주도로 강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직속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이하 위안부 TF)는 27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 7월 말 공식 출범한 TF는 연내 보고서 발표를 목표로 위안부 합의의 전 과정에 대한 검토작업을 벌여왔다.


위안부 TF는 이날 위안부 합의협상 과정에서 △피해자들과의 소통부족 △‘위안부 외교’의 매몰 △청와대 위주의 비밀협상 △대통령, 협상 책임자, 외교부 사이 소통 부족으로 인해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 왜곡‧퇴색됐다고 진단했다.

TF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한일정부 간 위안부 합의를 위한 협상이 본격 개시된 것은 2014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 직후다. 한·일 양국 정상은 이 자리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루기 위한 국장급 협의 개시에 합의했다. 이후 외교부 동북아국장과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간 제1차 협의가 그해 4월16일 서울에서 개최됐다.


이듬해 1월까지 6차례에 걸쳐 국장급 협의가 진행됐으나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2015년 2월 고위급 비공개 협의가 열렸다. 일본 측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이, 한국 측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병기 당시 국가정보원장이 대표로 나섰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국장급 협의가 개시된 후 양쪽이 기본 입장만 되풀이하면서 교섭에 진전이 없자 협상 대표의 급을 높여 양국 정상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고위급 비공개 협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양쪽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첫번째 고위급 협의가 열린 2015년 2월부터 합의 발표 직전까지 총 8차례의 협의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위안부 합의 이후 논란이 됐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소녀상 이전 문제'뿐만 아니라 '관련 단체 설득', '제3국 기림비 문제', '성노예 용어 사용' 등에 관한 입장 조율도 이뤄진 사실이 이번 위안부 TF를 통해 밝혀졌다.

합의에 반영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문제는 한국이 제6차 국장급 협의과정에서 먼저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측은 일본의 사죄가 공식성을 가져야 한다는 피해자 단체의 의견을 참고해 ‘사죄의 불가역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합의에서는 ‘해결의 불가역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맥락이 바뀌었다.


위안부 TF는 맥락이 바뀐 책임에 청와대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외교부는 잠정 합의 직후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이 포함되면 국내적으로 반발이 예상되므로 삭제가 필요하다는 검토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불가역적’의 효과는 책임 통감 및 사죄표명을 한 일본 쪽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안부 TF는 "위안부 협상 관련 정책 결정 권한이 지나치게 청와대에 집중돼 있었다"며 "주무부처인 외교부는 위안부 협상에서 조연이었으며 핵심 쟁점에 관해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