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기업 인사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임 수장이 퇴임한 뒤에도 금융당국의 후임자 인선이 길어지면서 인사파행과 신사업계획 차질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해묵은 낙하산 논란도 제기된다. 최근 이사장 선임에 돌입한 신용보증기금은 관료출신 인사를 뜻하는 관피아(관료+마피아)가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왼쪽부터)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사진=각사

◆신보 이사장에 윤대희 국조실장 유력


신용보증기금은 차기 이사장에 지원한 후보자의 면접을 실시한 뒤 3명의 후보를 금융위원회에 추천했다. 금융위원장이 최종 후보 1명을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신보는 지난 1월 황록 전 이사장이 사의를 표명한 후 신임 이사장 공모절차에 들어갔다. 당시 기재부에서 퇴직한 최영록 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등 4명의 후보가 물망에 올랐으나 청와대 인사검증에서 모두 탈락해 재모집 공고에 나섰다.

현재 차기 이사장에는 윤대희 전 국무조정실장이 유력휴보로 거론된다. 윤 전 실장은 행정고시 출신의 경제관료로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재정경제원 등을 거쳐 노무현정부 때 청와대 경제정책수석 비서관을 지냈다. 이후 국무조정실장으로 일하다가 2008년 이명박정부가 출범하면서 공직을 떠났다. 과거 신보 이사장은 기재부 출신이 맡아 온 점을 감안하면 경제관료가 이사장에 낙점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수장 공백이 장기화될 여지도 있다. 지난 이사장 인사검증에서도 굵직한 경력을 지닌 후보들이 대거 탈락한 데다 윤석헌 금감원장 선임을 끝으로 금융권 주요인사가 마무리돼 정권에 줄 댄 인사들의 자리싸움이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보 관계자는 “황 이사장은 후임 이사장 취임 전까지 업무를 수행할 계획”이라며 “차기 이사장이 임명되길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보증기금도 차기 이사장 공모작업을 준비 중이다. 기보는 김규옥 이사장이 지난달 불륜 의혹으로 사임 의사를 밝혀 중소벤처기업부와 차기 이사장 선임을 위한 실무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기보는 조만간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공개 모집일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임추위는 기보 비상임이사와 이사회에서 선정한 위원 등 10명 안팎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후보자 모집과 검증 등을 거치면 일러야 다음달 말에 인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기보는 지난해 7월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주무부처가 금융위에서 중기부로 이관됐다. 따라서 임추위가 후보군을 선정해 중기부에 추천하면 중기부 장관이 임명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기보가 중기부에 이관된 후 처음 이사장 선임에 나선 만큼 최종후보군 선별작업이 장기화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예보 곽범국 사장 임기연장 가능성

금융공기업 수장 자리는 상대적으로 업무부담이 적은 반면 연봉이 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권이나 관료직에서 퇴직한 인사들이 금융공기업 수장으로 호시탐탐 재기를 노리는 이유다.

최근 민간 금융회사들은 채용비리 문제로 상임감사나 사외이사 등 임원을 꼽는 기준이 강화됐다. 하지만 금융공기업은 여전히 새로운 수장 인사 때마다 관치금융 꼬리표가 달린다. 그만큼 인사가 확정되기까지 정권에 줄 댄 인사들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다.

금융위 산하 준정부기관인 예금보험공사는 곽범국 사장의 임기가 연장될 전망이다. 오는 26일 곽 사장의 임기가 만료되지만 예보가 후임 사장 공모일정을 잡지 못해서다.

통상 예보는 사장의 임기만료 1~2개월 전에 공모가 시작됐던 점을 고려하면 빨라야 다음달 말이나 새 사장 선임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공공기관운영법률에 따르면 예보는 새 사장이 선임될 때까지 기존 사장의 임기가 연장된다.

곽 사장은 2014년 새누리당 기획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거쳐 2015년 예보 사장으로 취임했다. 역대 예보 사장 중 연임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곽 사장도 연임보다는 교체에 무게가 실린다.

금융권은 예보가 주택금융공사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재천 주택금융공사 사장은 임기가 지난해 10월 말까지였으나 후임 사장이 임명되지 않아 12월 말까지 자리를 지켰다. 3개월이 지난 후에야 이정환 사장이 취임했으나 관피아 논란이 여전하다.

이 사장은 행시 17회로 재정경제부를 거쳐 노무현정부 당시 국무조정실에서 근무했던 관료 출신이다. 2008년 한국거래소 이사장으로 취임했지만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1년7개월 만에 자진사퇴했다. 지난 대선 때 부산시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으며 경제정책 자문 역할을 담당하는 등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문가들은 금융공기업, 기관장 등이 기재부 등 특정 부처의 취업처가 되는 현실을 지적한다. 정부와의 소통관계 등을 고려해 관료출신 CEO(최고경영자)를 영입하는 사례가 있지만 금융관련 전문성이 전혀없는 인사들까지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건 문제라는 입장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새정부 들어 금융공기업의 논공행상식 인사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금융공기관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선 기재부나 경제관료들이 거리낌없이 피감기관의 중요직책을 맡는 인사관행이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0호(2018년 5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