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게 말을 거는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자. /사진=로이터 뉴스1
한국은 어떻게 식민지배와 6·25전쟁으로 인한 자산파괴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과 민주화를 달성했을까. 삼성전자는 어떻게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세계 1위가 됐고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빌보드차트 1위에 올라 K-Pop 열풍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을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당연시됐던 일이 기적처럼 현실이 되는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에선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우리의 인문학적 바탕을 찾아본다. -편집자-

‘노란조끼 운동’이 유럽을 휩쓸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란조끼 시위대’ 요구를 대폭 수용하며 사실상 항복한 덕분에 프랑스에선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에서는 강추위 속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네덜란드, 벨기에, 불가리아에 이어 이라크로까지 번졌다. 이같은 열기는 지중해를 넘어 아프리카로 번져 이집트는 노란조끼 판매를 금지시켰고 튀니지에서는 붉은조끼 시위가 일어났다.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는 심화된 부의 불균등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벌어졌다. 앞서 지난해 10월 디젤유에 대한 세금을 10% 인상하는 세제 개편안이 프랑스 의회를 통과했다.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한다는 명목에서다.

여기에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최근 1년간 프랑스의 기름값은 23%나 올랐다. 게다가 내년부터 휘발유와 디젤에 대한 세금을 리터당 2.9센트와 6.5센트씩 더 올리겠다고 하자 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법인세를 내리고 부동산·주식·보험·사치품 등 자산 전반에 적용하던 부유세를 부동산에 한정하는 쪽으로 축소한 것이 기름을 부었다. 소득격차가 확대된 상황에서 왜 서민들 조세 부담만 키우냐는 불만이 시민들을 거리로 쏟아져 나가도록 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항복


노란조끼 시위대가 70만명(누적기준)을 훌쩍 넘자 40대의 패기 넘치는 마크롱 대통령은 유류세를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필리프 총리가 유류세 인상을 6개월 유예하겠다고 했지만 시위가 더 격화되자 아예 백지화한 것이다. 또 최저임금을 월 100유로(12만8000원) 인상하겠다는 당근도 제시했다.

파리 시민들은 1789년 7월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부르봉 왕가에 저항하는 ‘프랑스 대혁명’의 시작이었다. 오랜 전쟁으로 재정이 부족해지자 부유한 귀족과 성직자가 아닌 평민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했고 이들은 참았던 불만을 쏟아냈다.


이처럼 노란조끼 시위를 더 방치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까지 확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마크롱의 항복을 이끌어냈다.

프랑스와 유럽에서 노란조끼 시위가 열기를 더할 때 인도에서는 ‘1억 달러 결혼식’이 열렸다. 인도에서 11년째 최고 부자 자리를 지킨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회장이 맏딸 이샤 암바니와 피라말 그룹의 후계자 아난드 피라말의 결혼식에 거금을 쓴 것이다.

릴라이언스 대변인은 결혼식 비용이 1500만달러(약 170억원)였다고 밝혔지만 언론들은 1억달러(약 1100억원)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가수 비욘세가 참석해 축하공연을 했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힐러리 클린턴 미국 전 국무장관과 에릭슨, HP, JP모건 등의 최고경영자가 하객으로 참석했다.

인도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16년 기준으로 1816달러에 불과했다. 2020년에는 3500달러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세계은행), 여전히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하루 한 끼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의 눈에 1억달러, 혹은 1500만달러의 결혼식은 어떻게 보였을까.

◆제비 한 마리로 봄이 오진 않지만

제비 한 마리를 보고 봄이 왔음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제비 한 마리가 봄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받아들이든 각각의 자유다. 결과는 그 한 사람에게 한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이나 회사 최고경영자(CEO), 대통령 등 마지막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은 낙엽 한 잎을 보고 가을이 왔고 머지않아 겨울이 닥칠 것임을 대비해야 한다. 그래야 가족과 회사원, 국민이 어려움에 닥쳤을 때 큰 곤란 없이 난국을 이겨낼 수 있다.

<시경>에서는 “부엉이도 구름 몰려오고 바람 불면 곧 큰 비가 내릴 것을 알고 뽕나무 뿌리껍질을 물어다 둥지를 단단하게 묶는 대비를 하니 업신여기지 않는다”고 노래한다. “일이 닥치기 전에 준비한다”는 ‘상두주무’(桑土綢繆)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나왔다.

<서경>에서도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불현시도’(不見是圖)’를 강조한다.

시경과 서경을 섭렵한 공자는 상두주무와 불현시도를 통한 유비무환을 “군자는 기미를 보고 움직여야 한다”며 더욱 강조했다.

◆‘여민동락’의 필요성

꿈에 부풀어 시작한 ‘황금 개’의 해 무술년 연말이 어수선하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지난 11일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24)가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는 사고로 숨지는 ‘후진국형 사고’가 일어났다.

카카오 카풀 서비스에 반대하는 택시기사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둘러싸고 야당 대표들이 단식농성하는 일도 벌어졌다. ‘온다 안 온다’로 오락가락하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은 불발로 끝나는 양상이다.

모두 내년 이후에 벌어질 일을 먼저 알려주는 '기미'들이다. 엇갈리는 기미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무슨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까. 소설가 이청준이 1976년에 발표한 <당신들의 천국>이란 소설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소설은 육군 대령 출신의 조백헌이 소록도병원장으로 취임한 뒤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의 천국을 만들겠다며 득량만 매립공사를 하다 한센인들과의 대립으로 실패하고 소록도를 떠났다가 7년 뒤 다시 돌아와 결혼식 주례를 맡는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자유 없는 권력은 증오를 낳고, 사랑 없는 권력은 강요된 의무만을 요구할 뿐이라고 고발한다. 권력은 사랑과 자유에 기초해야 하며 인간의 천국은 다른 인간의 천국과 대립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관건은 국민이 모두 함께 즐거워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여민동락의 길은 쉽고도 어렵다. “고루 나누면 가난이 없고, 화목하면 모자람이 없으며, 편안하면 기울지 않으니(均無貧 和無寡 安無傾), 모자람보다 고루 나누어지지 않았음을 걱정하고(不患寡而患不均) 가난함보다 편안하지 않음을 걱정하라(不患貧而患不安)”는 가르침을 실천하느냐 아니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국민과 함께 즐거워하지 못한 마크롱은 항복해야 했다. 1억달러 결혼식을 치른 부자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혼자 즐거워하는 독락(獨樂)은 국민을 고달프게 한다. 어려운 국민은 지지를 거둬들인다.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2호(2018년 12월25~3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