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이 대구은행장 선임에 난항을 겪고 있다. 대구은행의 인적쇄신을 위해 은행장 선임에 나섰지만 지주회장 중심의 제왕적 지배구조와 지역 순혈주의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구은행장은 지난 3월 박인규 전 DGB금융 회장 겸 대구은행장이 사임한 이후 9개월째 공석이다. 이달 말 박명흠 행장직무대행의 임기가 만료된다. 은행장 선임을 앞두고 DGB금융과 대구은행이 팽팽히 맞서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제왕적 지배구조, 겸직 논란
최근 DGB금융 이사회는 지배구조 규범 개정을 통해 ‘자회사 최고경영자 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가 은행장 후보를 추천한다고 규정했다. 자추위는 김태오 DGB금융 회장을 비롯해 조해녕·서인덕·전경태·하종화·이담 등 사외이사 5명 전원으로 구성됐다.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이 지난5월31일 오후 DGB대구은행 칠성동 제2본점에서 500여명의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 취임했다,/사진=DGB금융지주 기존에는 자추위에서 대구은행과 DGB생명을 제외한 자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자격요건을 설정하고 후보를 추천했다. 앞으로는 지주가 전 자회사의 CEO 승계과정을 통합 관리한다.
은행장 자격요건도 기존 ‘금융회사 경력 20년 이상’에서 ‘금융권 임원경력 5년 이상’으로 강화했다. 이에 대해 대구은행 이사회와 노동조합은 “지배구조 규범 개정으로 은행 이사회 입지가 좁아졌을 뿐만 아니라 현직에서 김태오 회장만 은행장 요건을 충족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 18일 대구은행 이사회는 회의를 열고 DGB금융에 은행장 후보 추천기한을 연장해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자추위가 규정한 은행장의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을 찾기가 어려워서다. 지난 11일 김 회장은 사외이사들과 간담회를 가졌지만 은행장 선임과 관련해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지주와 은행의 분리·독립경영을 유지하고 내부 출신의 은행장을 선임해 은행 조직을 안정화해야 한다”며 “지주와 은행이 함께 협의할 수 있는 자리를 계속해서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대구은행 노조와 직원들에게 “대구은행장과 회장을 분리하는 게 원칙”이라며 “조직 안정과 성장기틀 마련을 위해 소임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학연주의 논란… 경영안정 행보 '험난'
김 회장은 DGB금융 사상 첫 외부 출신이다. 하나금융지주 최고인사책임자(CHRO) 부사장과 하나은행 고객지원그룹 총괄부행장, 하나HSBC생명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지방은행의 고질적인 문제인 출신·학맥 다툼을 개선할 구원투수로 꼽혔다.
DGB금융은 1대, 2대 회장이 모두 행장과 회장을 겸임하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회장이 흔들리면 회사 전체가 위축되는 'CEO 리스크'가 커져서다. 하지만 김 회장도 DGB금융의 학연주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김 회장은 경북고, 연세대 출신으로 DGB금융 내에 탄탄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역대 대구은행장 11명 가운데 경북고 출신이 4명이며 사외이사 5명 전원으로 이뤄진 자추위원 중 조해녕·서인덕 사외이사도 경북고 동문이다. 김 회장도 자추위원에 포함돼 대구은행장 선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대구은행 이사회가 지주사의 지배구조 개정에 반대하는 이유도 학연주의 때문이다. 대구은행 임추위를 구성하는 4명의 사외이사 중 1명은 대구상고, 3명은 영남대 출신으로 모두 박인규 전 DGB금융 회장과 연관됐다.
대구은행 이사회가 올 5월 행장 후보로 추천한 김경룡 전 DGB금융 부사장과 최종 후보군에 포함된 박명흠 행장 직무대행도 모두 영남대 출신이다. 지주 회장을 놓친 ‘박인규 라인’이 은행장 자리를 선점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DGB금융과 대구은행의 집안싸움이 장기화되자 경영불안이 지속될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큰 상황. 대구은행의 올 3분기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각각 10.4%, 7.9% 감소했다. 같은기간 DGB금융도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8.8%, 8.2% 줄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고 있는 시중은행은 물론 다른 지방은행과 달리 유일한 역성장이다.
코스피 상장사인 DGB금융 주주들의 손실우려도 커졌다. 김 회장이 DGB금융을 지역 금융그룹을 넘어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도약시키겠다고 선언한 만큼 내부조직을 추스르고 질적 성장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DGB금융은 올 11월 하이투자증권을 패키지로 인수해 계열사가 9개에서 12개로 늘었다. 지방금융지주 최초 은행, 증권, 보험을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이 됐지만 올 3분기 기준 대구은행이 그룹 전체 순익 중 96%를 차지하는 등 은행 쏠림현상이 심각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DGB금융이 증권업 진출을 발판으로 은행의 수익 쏠림현상을 개선하려면 대구은행장 선임과 함께 계열사 수익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은행은 지난 1967년 출범한 국내 최초 지역은행이다. 김 회장이 반세기 넘게 성장한 대구은행의 흠집난 내부조직을 안정화하고 글로벌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을 견인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