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취지로 국민청원 제도가 도입됐다. 28일 현재까지 올라온 청원이 36만여건에 달한다. 비상식적인 글이 올라오면서 비판 여론도 발생했지만 정부와 소통할 수 있는 순기능이 더 크다는 평가다. 올해 답변요건을 충족한 청원은 67개. 이 중 62개는 답변이 완료된 상태다. 올 한해 많은 관심을 받은 청원과 정부의 답변을 살펴봤다.
사진=임한별 기자 ◆[가상화폐 규제반대] 정부는 국민들에게 단 한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 적 있습니까?
☞ 참여인원: 22만8295명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가상화폐(암호화폐) 광풍. 당시 과열된 가상화폐 거래를 제재하기 위해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거래소 폐쇄 검토”라는 칼을 꺼내들었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조율되지 않은 사안”이라며 진화에 나서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투기냐, 투자냐’를 놓고 투자자와 정부가 갈등했고 해당 청원은 19일 만에 20만 동의를 달성했다.
답변자로 나선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가상통화 거래과정에서의 불법행위와 불투명성은 막고 블록체인 기술은 적극 육성해 나간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방침”이라며 “현행법의 테두리 내에서 가상통화 거래를 투명화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월6일 가상화폐 대장주 격인 비트코인 가격은 2598만8000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한 뒤 끝을 모르게 폭락했다. 가상화폐거래소 코인원에 따르면 28일 기준 비트코인은 412만3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사진=임한별 기자 ◆연극인 이윤택씨의 상습 성폭행, 성폭력 피의사실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조사를 촉구합니다
☞ 참여인원: 20만8522명
미투(MeToo, 나도 당했다)를 빼놓고 올해 이슈를 설명할 수 없다. 서지현 검사 폭로로 시작된 미투는 예술계로 이어졌다. 지난 2월 이윤택 연극연출가가 극단 단원들을 수십년 동안 성추행 해온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청원인은 이윤택 성폭행 피의사실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조사, 구속수사를 촉구했다.
답변인으로 나선 박형철 비서관은 사회 전분야에 퍼진 미투에 대해 “여성가족부, 경찰청 등 12개 부처가 성폭력 근절 대책 협의체를 구성해 대책을 마련했다. 역할을 분담해 중장기적 예방대책 마련도 병행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법원은 지난 9월 이윤택씨에게 유사강간치상 등 혐의로 징역 6년에 8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10년 동안 취업제한을 선고했다. 미투 관련 재판 첫 실형이다. 이씨는 곧바로 불복 항소심을 제기했다.
사진=뉴스1 ◆강서구 피시방 살인 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
☞ 참여인원: 119만2049명
지난 10월 서울시 강서구 한 PC방에서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생을 살해한 김성수씨가 체포됐다. 피해자는 얼굴과 목, 손 부위를 무려 30여차례나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김씨 측이 우울증약 복용 전력을 내세워 ‘심신미약’을 주장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청와대 국민청원에 해당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언제까지 심신미약, 정신질환으로 처벌이 약해져야 하냐”며 강력 처벌을 촉구했다. 여론의 분노는 역대 최다 동의로 드러났다.
답변에 나선 김형연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해당 청원에 "심신미약에 대한 판단은 엄격히 해야 한다"며 "특히 술에 취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형벌을 감경해 주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전했다.
경찰과 검찰은 김씨가 범행 당시 정신병적 상태나 심신미약 상태에 있지 않다고 판단했고 김씨는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또 '김성수법'으로 불리는 심신미약 감형 의무조항 폐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앞으로는 피의자가 심신미약 상태로 판단될 경우 무조건 심신미약 감형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판사의 판단에 따라 감형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
◆이수역 폭행사건
☞ 참여인원: 36만5418명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가 짧단 이유만으로 피해자 2명은 남자 5명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올해 대한민국에선 젠더갈등이 극에 달했다. 해당 청원은 그 끝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지난달 13일 새벽 4시쯤 이수역 인근 한 주점에서 남성무리에게 맞았다고 주장한 누리꾼이 인터넷에 글을 게재했다.
피해 여성 A씨로 추정되는 글쓴이는 “주점에서 남자 무리가 (우리에게) 얼굴이 왜 그러냐” 등 인신공격을 했고 시비 끝에 여성 비하를 하며 우리 일행을 폭행했다“며 ”일행 중 한명은 남성이 발로 차 계단에 머리를 찧으면서 뼈가 보일 정도로 뒷통수가 깊이 패였다“고 주장했다.
청원은 하루 만에 31만명의 동의를 얻으며 대표적인 여성혐오 사건으로 굳혀졌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많은 사실이 A씨 주장과 달랐다.
경찰에 따르면 여성 일행이 먼저 남성 일행 한명의 손을 쳐 최초의 신체접촉이 이뤄졌다. 남성의 운동화와 여성 상의를 국과수에 성분분석한 결과 흔적이 나온 것이 없었다. 여성 측은 두개골이 보일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전치 2주의 머리 부상을 적용했다. 인터넷에는 추정되는 여성들이 남성의 성기 등을 지칭하며 욕설을 하는 동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경찰은 지난 26일 해당 사건을 ‘쌍방폭행’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수역 폭행 청원은 ‘거짓 청원’ 논란을 낳기도 했다. 누구나 쉽게 익명으로 청원글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여론 조작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이수역 폭행 청원에 대해 "경찰 수사를 토대로 검찰이 실제 이들을 모두 기소할지 여부 등을 더 지켜봐야 할 상황"이라며 "짧지 않은 기간, 전력을 다해 다각도로 수사해온 경찰의 결론을 존중해야 할 시점"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