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서울 중구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에 대한 의견수렴을 위한 공청회'. / 사진=뉴스1 DB.
지난해 9월 서울 중구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에 대한 의견수렴을 위한 공청회'. / 사진=뉴스1 DB.
국내 기업계에 지주회사 전환 바람이 거세다. 지주회사 제도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절 복잡한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풀기 위해 도입됐다. 지난해 9월말 기준 국내 지주회사는 일반지주 164개, 금융지주 9개 등 총 173개로 늘었다. 지주회사 체제는 지배구조의 투명화, 안정적인 경영권 등이 순기능으로 꼽히는 반면 총수일가의 지배력이 커지는 역기능을 드러내기도 한다. <머니S>는 오는 6월 38년 만의 공정거래법 개정을 앞둔 국내 지주회사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나아가 지주회사 선진형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방안도 모색했다.<편집자주>


[지주회사의 두 얼굴] ②성장동력 확보 ‘최상의 구조’


지주사 체제는 우리 경제의 지속성장에 필수적인 탄탄한 기반일까, 아니면 구조적 취약성을 잉태한 어둠의 전조일까. 여러 논란이 나오고 있지만 2000년대 이후 지주사 체제를 통해 성장세를 유지해온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주사 체제의 가장 큰 장점은 지배구조의 투명화, 경영권 안정, 계열사 간 시너지 확보 등이다. 이미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10대 그룹 중 8곳이 지주사 형태를 갖추는 등 대다수의 중견·대기업이 지주사로 전환하며 경영권을 강화하고 성장동력을 갖추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부는 국회 계류 중인 공정거래법을 통해 지주회사 규제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재계는 정부의 규제가 현실화할 경우 투자위축 등이 불가피해 성장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IMF 이후 지주사 체제 독려


정부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집단의 복잡한 출자구조 해소를 위해 지주회사 체제를 제한적으로 도입했다. 1999년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한 뒤 2000년 금융지주사법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후 정부는 부채비율이나 자회사 지분보유 비율 완화 및 세제혜택 등을 통한 지주사 전환을 유도했다.

지주회사의 가장 큰 장점은 지배구조의 투명화와 사업재편의 안정성이다. 이에 비해 과거 국내 대기업집단의 일반적인 지배구조였던 순환출자구조는 A사가 B사를, B사가 C사를, C사가 D사를, D사가 다시 A사를 지배하는 형태를 말한다. 즉 A사의 지분만 갖고 있으면 4개 기업 모두를 지배하는 구조로 적은 자본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여러 측면에서 지배구조의 투명성 확보가 불가능해진다. 순환출자 고리에 엮인 기업이 파산 등의 문제에 직면할 경우 기업집단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적은 자본으로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다보니 순환출자 고리에 연결된 핵심 기업 중 어느 한곳만 경영권 공격을 받더라도 제대로 방어할 수 없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사태 당시 파산한 한보그룹과 대우그룹을 비롯해 쌍용, 동양, 한진해운 등을 들 수 있다. 삼성그룹 역시 2015년 미국 헤지펀드인 엘리엇으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받으며 순환출자구조의 문제가 드러났다.


반면 지주회사 체제는 그룹 최상위에 위치한 지주사가 자회사의 지분을 보유하는 체제여서 순환출자에 비해 지배구조가 투명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업재편·시너지에 배당도 유리

계열사 간 시너지와 사업구조 재편 등에 있어서도 지주사 체제가 순환출자보다 유리하다. 지주사 체제에서는 계열사 간 사업 분장 및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해 최상의 사업구조를 짜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인수합병(M&A)이나 자회사 매각 과정에서 순환출자의 경우 여러 계열사 간 맞물린 지분구조의 해소가 복잡해질 수 있지만 지주사 체제는 보다 탄력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경영권 승계의 경우도 순환출자보다 유리한 편이다. 경영권 승계에 대해 부정적 여론도 나오지만 사업의 지속성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정부도 가업 상속 요건에 맞을 경우 혜택을 부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10년간 업종·지분·자산·고용유지의 현행 요건을 하향조정하는 방향이 검토 중이다.

기업별 차이는 있지만 배당도 지주회사가 다소 유리하다. 지배구조 최상층에 위치한 지주사의 경우 오너일가 지분율이 높은 만큼 배당성향이 높은 경우가 많다. 순환출자 구조의 경우 A사가 배당을 하면 B사가, B사가 배당하면 C사가, C사가 배당하면 D사가, D사가 배당하면 이를 다시 A사가 받는 구조로 이 과정에서 세금이 발생하는 만큼 배당을 낮게 가져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지배구조 강화 차원에서는 자금이 덜 들고 세무 혜택을 볼 수 있는 지주회사 체제가 유리하다”며 “경영권 승계를 통해 사업의 영속성을 이어가는 것이 경제발전에 득이 될 수 있고 이 역시 지주사 체제가 낫다”고 설명했다.

/사진=뉴스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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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규제, 기업투자 위축"

국내 10대그룹 중 지주사(사업지주 포함) 체제를 갖춘 곳은 SK, LG, GS, 포스코, 한화, 현대중공업, 농협 등으로 국내 경제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기업이다. 롯데그룹도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고 삼성·현대차도 지주사 전환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SK는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LG의 경우 2003년 국내 재벌기업 최초로 지주사 체제를 갖췄고 이후 분리된 LS(2003년)와 GS(2004년)도 지주체제를 구축했다. 한진, 효성, 오리온, 매일유업, 크라운제과, 한솔 등도 최근 5년 사이에 지주사로 전환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지주사는 오너일가의 입김이 강하다는 점에서 기업가치가 저평가된다는 시각도 많다. 하지만 자회사 역량에 따라 지주사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고 사업지주의 경우에는 영위하는 사업 역량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지주회사로 전환했을 때 성장성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현한 연세대 교수는 2017년 9월 기준 인적분할로 설립된 일반지주회사 50개 기업쌍(100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지주사 전환 전후의 기업가치를 조사했다.

지주사와 사업회사의 주가수익률을 시가총액으로 가중평균한 수익률은 전환 후 2개월부터 플러스로 전환했고 10년간 같은 흐름이 지속됐다. 48개 지주사를 대상으로 개인대주주와 일반주주의 지분가치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지분가치가 상승한 기업 수가 비슷했다.

신 교수는 “최근 자회사 지분 의무 비율 상향 등 지주회사 관련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라며 “규제보다 기업가치 증대를 위한 지배구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새로 설립하거나 전환하는 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의무 지분율을 상장사 30%(현행 20%), 비상장사는 50%(현행 40%)로 강화하는 내용을 추진 중이다. 이미 지주사 체제를 구축한 기업은 제외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에 맞춰야 할 가능성이 농후해 자회사 지분을 대거 사들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 관계자는 “지주회사 체제는 수직적 구조로 지배구조가 뚜렷하고 투명해 정부에서도 장려해온 체제”라며 “하지만 강화되는 규제안으로 인해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선택의 폭이 좁아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설 지주사만 규제대상이라고 하지만 여러 사안에서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현 지주체제 기업들도 지배구조 유지에 중심을 둘 수밖에 없다”며 “결국 투자나 연구개발 등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고 도전하는 데 제한이 생길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0호(2019년 2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