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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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대표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그룹 총수가 적대적 M&A나 승계 분쟁없이 계열사 대표 연임에 실패한 것은 건국 이래 최초다. 그의 패배는 충격적이지만 이미 예견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투자자들이 기업의 정보를 보는 공식 창구인 ‘공시’를 통해 그의 연임을 반대한 주장을 정리했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조 회장의 연임 실패는 국민연금의 반대표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 대한항공의 지분 11.56%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최대주주인 한진칼의 지분은 33.35%다.


반전은 주총 하루 전인 26일 벌어졌다. 국민연금이 격론 끝에 조 회장의 대한항공 대표이사 선임을 반대한다고 밝힌 것이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주주총회 안건의 의결권행사 방향에 대해 심의를 열고 조 회장의 대표선임 건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반대를 결정했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대한항공 정관에는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기재됐다. 이날 참석주주는 73.84%다. 이를 단순 계산하면 조 회장이 연임하려면 49% 수준의 주주가 찬성의사를 밝혀야 했다. 한진칼의 지분을 감안하면 16% 지분을 가진 주주 동의가 더 필요했다. 반면 국민연금은 보유한 지분에서 13%의 우호지분만 있으면 조 회장의 연임을 저지할 수 있었다.


해당안건은 결국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다. 약 2% 수준의 지분율 차이로 조 회장의 연임이 무산된 셈이다. 이런 결과는 예견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조 회장의 연임을 저지하기 위해 의결권 위임을 요구한 공시가 다수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중에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도 있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한항공 이사회는 지난 5일 제57기 정지주주총회를 27일 열기로 결의했다. 의결 사항은 재무제표 승인건과 정관 일부 견경, 이사 선임건, 이사보수한도 승인 건 등이다. 이중 재무제표 승인은 12월 결산 법인이면 당연히 해야 하는 사안이고 정관 일부 변경은 전자증권제도 시행과 외감법 시행 때문에 상정됐다.


문제는 이사 선임건 2개 중 1개가 조 회장의 대한항공 대표이사 연임 건이었다.

정기주총 개최가 공시된 후 2~3일 후 3건의 공시가 연달아 올라왔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그리고 이상훈씨의 '대한항공 주주총회 의결권 위임 요청'이었다. 이중 이씨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이다.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들에 대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끌어갈 주주권 행사기구다. 참여연대는 대한항공 주식 2주를 가진 주주로서, 민변은 1주를 가진 주주로서 의결권 위임 요청을 공시했다.


참여연대는 "횡령·배임·사익편취 행위 등 각종 불·편법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중인 조양호 회장은 대한항공의 이사로서 자격이 없다"며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의 이사로서 선관의무, 기업비밀유지의무, 충실의무를 져버렸을 뿐만 아니라 대한항공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기업가치를 크게 추락시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 이 위원은 “그동안 위원회 내에서 대한항공과 같은 재벌 총수 일가에 의한 문제적 지배구조, 그리고 이른바 '갑질' 등으로 명명되는 법적·도덕적 문제의 책임을 주주권 행사로 재벌 총수 일가에게 묻고자 했다”면서 “소수주주 자격으로라도 뜻을 같이 하는 주주 여러분들의 표를 적극 모아 조 회장의 연임을 막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여론 형성이 국민연금의 입장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