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DB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DB
미국에서 체류 중이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한국시간) 새벽 숙환으로 별세한 가운데 그의 45년 항공 외길 인생이 재조명 받고 있다. 최근 가족들의 일로 곤혹을 치렀으나 항공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대한한공을 세계적인 항공사로 키운 건 부인할 수 없는 조양호 회장의 공이다. 


지난 1949년 인천에서 출생한 조 회장은 1964년 경복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1975년 인하대 공과대학 공업경영학과 학사를 거쳐 1979년 미국 남가주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 인하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1년 전인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조 회장은 아버지이자 한진그룹 창업자인 조중훈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경영 일선을 이끌었다. 1992년부터는 대한항공을 이끌었으며 2003년 한진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조 회장은 1974년 12월 대한항공에 입사한 이래 항공·운송사업 외길만 45년 이상 걸어온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국내외를 통틀어 조 회장 이상의 경력을 지닌 항공·운송 전문가를 찾아보기 힘들다 게 대체적인 업계 평가다.


서울 중구 한진그룹 본사. /사진=뉴시스 DB
서울 중구 한진그룹 본사. /사진=뉴시스 DB
그는 입사 이후 정비, 자재, 기획, 정보기술(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전 부서를 고루 경험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조 회장의 입사했던 1974년은 1차 오일쇼크가 한창이던 시절이다. 1978년~1980년에도 2차 오일쇼크가 세계를 덮치며 대한항공도 위기에 직면했다. 연료비 부담 등으로 미국 최대 항공사였던 팬암과 유나이티드항공도 수천명의 직원을 감원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하지만 조 회장은 선친인 조중훈 선대회장과 시설과 장비 가동률을 높여 불황 속 호황을 대비하는 모험을 택했다. 당시에는 위험을 담보한 결정이었지만 결국 오일쇼크 이후 중동 수요 확보 및 노선 진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조 회장의 위기관리 능력은 빛을 발했다. 그는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 임차 등을 통해 유동성 위기에 대처했다. 또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는 보잉737NG(Next Generation) 주력 모델인 보잉737-800 및 보잉737-900 기종을 27대나 구매하는 대규모 계약으로 계약금 축소를 통해 자금을 아꼈다.


2003년에는 한진그룹 회장에 취임했으며 2009년에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글로벌 스포츠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또 조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에 폭넓은 인맥과 해박한 실무지식을 앞세워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스카이팀 등 국제 항공업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이 같은 세계 항공업계에서의 조 회장 위상을 바탕으로 ‘항공업계의 UN 회의’라 불리는 IATA 연차총회가 올 6월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된다.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사진=뉴시스 배훈식 기자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사진=뉴시스 배훈식 기자
조 회장에겐 부침도 있었다.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공회항’ 사건을 시작으로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의 갑질·폭언 논란 등으로 고개를 숙였다. 여기에 아내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갑집·폭언 논란이 불거진 데다 오너 일가의 명품 밀수 의혹 등까지 제기돼 궁지에 몰렸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 결과에 따라 1999년부터 맡았던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서 내려왔다. 조 회장은 이어서 열린 한진칼 주주총회에서는 완승을 거두며 재기를 노렸지만 폐질환이 악화되며 파란만장했던 항공·운수 외길 인생은 빛이 바랬다. 하지만 대한한공을 글로벌 항공사로 키운 평가는 역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