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탈러 교수의 주요업적 중 하나는 행동경제학을 통한 퇴직연금 활성화다. 베스트셀러 <넛지>(Nudge)의 저자인 그는 미국 대표 퇴직연금인 401K 활성화를 위해 넛지 개념을 바탕으로 ‘디폴트옵션’을 제안했다.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는 뜻을 가진 넛지는 강요하지 않는 유연한 개입으로 올바른 선택을 유도하는 방법을 말한다. 실제 미국은 퇴직연금(401K) 가입단계에서 자동가입제도를 통해 퇴직연금 가입률을 크게 늘리고 퇴직연금 운용지시단계에서 적격투자상품을 디폴트옵션으로 제시해 퇴직연금 수익률을 제고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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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수익률 해결책 ‘넛지’

우리나라 퇴직연금도 수익률 제고를 위한 넛지가 필요하다. 2005년 퇴직연금제도 도입 후 적립금은 190조원 규모로 성장하고 있으나 가입자의 무관심 속에 수익률은 연 1%대로 부진하다. 가입자가 직접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의 운용실태를 살펴보면 가입자 중 최초 운용지시를 하지 않는 비중이 41%에 달한다. 이 중 1년 동안 상품을 변경하지 않는 비중은 83%로 매우 높다. 노후를 책임져야 할 퇴직연금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셈이다.

미국의 경우 퇴직연금 가입자가 별다른 운용지시를 하지 않으면 적격투자상품에 자동 투자하는 디폴트 투자옵션을 두고 있다. 2017년 말 미국 DC형 퇴직연금 가입자의 98.8%가 디폴트투자옵션을 설정했다. 그중 85.2%가 적격투자상품으로 타겟 데이트 펀드(TDF)를 선택했다.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TDF를 ‘현존하는 최고의 디폴트옵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TDF란 가입자의 생애주기를 고려해 가입시점부터 목표시점까지 미리 설정된 자산배분곡선(Glide Path)에 따라 포트폴리오의 자산배분을 자동으로 재조정하는 펀드이다. 일반적으로 은퇴시점을 기준으로 초기에는 위험자산 비중을 높게 가져가고 은퇴시점이 다가올수록 위험자산 비중을 줄여가는 투자전략을 실시한다. TDF는 미리 정해진 자산배분전략에 따라 펀드매니저가 알아서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기 때문에 연금자산관리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기 어려운 근로자 등 일반 투자자에게 적합하다.


그러나 TDF는 대표적인 노후준비상품이긴 하지만 만능은 아니다. 은퇴시점에 따라 생애주기별 자산배분전략을 실시하므로 투자자의 투자성향 및 금융시장 변화를 고려하지 않는다. 글로벌자산에 분산투자하더라도 변동성 있는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기 때문에 시장환경에 따라 가격하락 위험도 존재한다. 또한 운용사에 따라 TDF의 운용형태, 편입자산, 환율 등에 따라 운용방식에 차이가 있다. 이에 TDF 투자를 할 때 고려해야하는 사항들이 있다.


[고수칼럼] 미국 대표 노후준비상품 ‘TDF’

◆‘글라이드 패스’ 노후전략 꾸려야

우선 TDF의 은퇴시점은 일반적으로 5년이나 10년 단위로 구분되며 TDF 2030, TDF 2035, TDF 2040처럼 펀드명에 은퇴시점을 함께 표기한다. 은퇴시점이 2030년이라면 TDF 2030을, 은퇴시점이 2028년이라면 TDF 2025와 TDF 2030 중에서 선택하면 된다. 또 가입자의 투자성향에 따라 은퇴시점과 다른 TDF를 선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은퇴시점이 2030년인 투자자가 보수적이라면 위험자산 비중이 더 낮은 TDF 2025를, 반대로 공격적이라면 위험자산 비중이 더 높은 TDF 2035를 선택하면 된다.

일반 투자자들은 TDF 선택 시 은퇴시점만 선택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운용사마다 운용전략이 다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은퇴시점이 같은 TDF라도 운용사별 운용전략(주식투자비중, 해외자산 투자비중, 투자스타일 등)에 따라 포트폴리오의 기대수익과 위험수준이 달라진다. 운용사별 TDF 운용전략을 면밀히 살펴보고 투자자 본인의 투자성향에 가장 적합한 운용전략을 갖는 TDF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TDF는 장기투자 상품으로 보수 및 수수료가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운용전략에 따라 보수 차이는 발생할 수 있으나 운용전략이 유사하다면 보수는 낮을수록 유리하다. 특히 TDF는 글로벌 자산배분을 위해 여러개의 하위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펀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위펀드에 숨어있는 합성보수를 감안하면 펀드보수는 비교적 높은 편이다. TDF 투자 시 상대적으로 펀드보수가 낮은 연금저축, 퇴직연금(DC/IRP), 온라인전용 클래스를 선택하면 비용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어서 환헷지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 TDF는 다양한 글로벌 자산에 분산투자하기 때문에 환율변동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질 수 있다. 대부분 TDF는 환율변동위험을 차단하는 환헷지전략을 사용하고 있지만 일부 운용사는 환노출형으로 환율변동에 영향을 받는다. 환율변동위험을 피하고 싶은 투자자는 환헷지형을, 환율변동에 따른 환차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는 환노출형 TDF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마지막으로 TDF는 은퇴시점 또는 은퇴 후까지 투자하는 장기투자상품이라는 특성상 장기적인 성과가 더 중요하다. 펀드평가사인 모닝스타에 따르면 미국 TDF는 최근 1년간 평균 13.4%(4월말 기준)의 성과를 냈고 최근 5년간 연평균 9%의 꾸준한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TDF가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소개됐기 때문에 운용기간이 길지 않아 장기성과를 확인할 수 없다. 현재까지의 성과를 중심으로 고려하면서도 기간이 경과함에 따라 향후 장기적인 성과가 좋은 펀드로 교체매매를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행기는 도착지에 다다르면 서서히 고도와 속도를 낮추며 글라이드 패스(Glide Path)를 따라 착륙한다. 글라이드 패스는 조정사의 실수를 막아주고 안전한 착륙을 돕는 장치다. 은퇴준비도 착륙준비와 다르지 않다. 은퇴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하려면 은퇴시점에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은퇴자산의 위험자산비중을 낮춰주는 글라이드패스 전략이 필요하다. 장기간 은퇴자산에 시간과 노력을 쏟기 어렵다면 은퇴시점에 목표를 맞춘 글라이드패스전략에 따라 은퇴자산을 알아서 관리해주는 TDF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2호(2019년 7월23~2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