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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에 참석한 조국 장관.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티푸스> 마지막에 주인공이 하늘을 원망하며 터뜨린 말이다. 스토리는 이렇다. 한 젊은 중위가 오랜만에 휴가를 얻어 고향에 간다. 그는 기차 안에서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더니 오한과 고열과 갈증과 구토감에 시달린다. 옆 사람과 말도 못할 지경이지만 집에 가서 사랑하는 누이동생을 만날 생각에 마지막 힘을 다한다. 결국엔 집에 와서 기뻐하는 누이동생과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쓰러진다. 며칠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 깨어난 그는 누이동생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다. 그의 발진티푸스가 누이에게 전염됐기 때문이다.
“짐승! 콧구멍이 시뻘건 혐오스러운 짐승!”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이란 소설에서 주인공 셉티머스가 자신의 주치의를 이렇게 욕하고 있음을 그렸다.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어머니와의 불화로 가출한 셉티머스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함께 싸우던 상관 에번스가 전사하자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그는 자신의 환청과 환각, 두통과 불면증이 신경과민에 의한 것이라며 40년 경력의 자신의 말을 믿으라고만 강요하는 의사 홈스에게 위의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홈스는 의사 만나기를 거부하는 그의 방에 억지로 들어갔고 셉티머스는 의사를 피하려고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비극 부른 '나만의 호의'
체호프의 중위와 울프의 홈스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오로지 내 생각만 하는 호의가 어떻게 뜻하지 않은 비극을 초래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내가 한 행동이 상대방에 어떤 나쁜 영향을 끼칠지를 배려해야 그 사랑이 오롯이 전달되고 뜨거운 반응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근거 없는 확신에 빠져 설교한다거나 내가 전혀 의식하지 못했지만 치명적 병균이 사랑하는 사람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사실에 둔감한 것은 내 호의와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정부 정책도 마찬가지다. 서민을 위한 경제정책이 오히려 서민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소득주도성장’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는 과거 개발연대의 ‘수출-투자주도성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에 따라 서민의 소득을 늘리기 위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젊은이들을 위해 청년을 고용하는 중소기업에 정부가 급여의 일정부분을 부담하는 정책도 도입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집권 3년차에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이란 말이 쏙 들어간 것을 보면 정책 실패를 자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갈수록 곤두박질치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성장률이 떨어지자 한국은행이 지난 7월 기준금리를 1.75%에서 1.50%로 내렸다. 게다가 오는 10월에 또 0.25%를 추가로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지고 있다. 금리인하는 기업의 투자비용을 낮춰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케인스경제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투자는 금리보다는 기대수익에 더 민감하다. 금리를 내려도 기업 투자는 늘어나기 힘든 반면 대출받아 아파트를 사려는 ‘투기’가 늘어나 집값이 오름으로써 가뜩이나 힘든 서민 가계를 더욱 쪼그라들게 한다. 게다가 금리인하는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수입)물가를 끌어올림으로써 서민은 더 살기 어려워진다.
◆젊은이 분노 부른 '비공감'
조국 법무부장관의 후보자 시절에 불거진 여러 의혹도 체호프의 중위와 울프의 홈스를 떠올리게 한다. 조 장관 딸의 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 입시를 둘러싸고 불거진 ‘가짜 인턴증명서와 가짜 표창장’ 의혹 및 ‘과분한 장학금 수령’ 논란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입시와 장학금 관문을 가까스로 넘었거나 넘지 못한 젊은이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급기야 조 장관의 모교이자 그가 교수로 몸담았던 서울대와 조 장관 딸이 졸업한 고려대에서 조 장관 사퇴를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잇달아 열렸다.
하지만 조국 장관은 젊은이들의 이런 분노에는 눈과 귀를 닫고 자신의 호의, 즉 ‘나만이 검찰 개혁을 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있는 듯하다. 오죽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의 송곳 같은 비판이 나왔을까.
금 의원은 지난 6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후보자의 언행불일치에 대한 젊은이들의 정당한 분노에 동문서답식 답변을 해서 그들의 상처를 깊게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 젊은이들이 후보자의 단점을 공감 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고 꼬집었다. 장관으로서 국민이 원하는 정책을 펴려면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국민의 눈과 귀와 마음으로 보고 듣고 느껴야 하는데 그런 자세와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금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우리편을 대할 때와 다른편을 대할 때 기준이 다르면 편 가르기다. 법무부장관으로서는 큰 흠”이라고 질타했다. 조 장관이 서울대 교수 시절 각종 SNS와 칼럼 등에서 제시한 보수정권에 대한 비판 잣대와 그가 장관 후보자로서 내보이는 잣대가 크게 달라 국민들 사이에서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공감 없는 정치가 독재 부른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내면의 자아를 다스릴 줄 모르는 자일수록 자신의 오만한 뜻에 따라 이웃의 의지를 지배하려 든다”고 했다. 체호프의 중위와 울프의 홈스가 저지른 잘못은 파우스트의 오류를 되풀이한 것으로 조 장관도 그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봤으면 한다.
‘망치만 들고 있는 사람은 모든 문제를 못의 시각으로만 바라본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헨리 애덤스도 “정치는 무엇을 하든 항상 미움을 낳는 조직 시스템으로 적개심과 진영논리를 이용한다”고 갈파했다. 하지만 괴테는 “법률도 강하지만 필연의 힘은 더 강하니라”고 말했다. 공자가 그토록 서(恕)로 공감을 강조하고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어짊으로 정치해야 한다는 인정(仁政)을 계속 거론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나의 호의만 강조하면 독재로 흘러 백성이 고통받을 수 있음’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모든 문제를 ‘검찰개혁’으로만 연결시키려고 하는 조 장관이 명심해야 할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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