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가 무너진다. ‘세계 뷰티 트렌드의 중심’이라는 타이틀을 내놓은 지는 한참이다. 경쟁 상대로조차 보지 않던 중국에 밀렸다. 최근에는 일본에게도 뒤처지고 있다. 중국과 사드 갈등으로 ‘한한령’이란 직격탄을 맞은 탓이 크다. 냉각기류가 흐르는 동안 시장은 빠르게 변했다. 가성비 중심의 독특한 콘셉트는 일회성이라는 독이 됐다. K만 붙여 내놓으면 팔린다는 자만심이 화를 불렀다. 지금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 K뷰티의 몰락 원인과 현황, 뜨는 C뷰티와 J뷰티에 대해 짚어본다.(편집자주)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비브라스 매장. 내부가 한산하다. /사진=김경은 기자

“저희는 한국 브랜드예요.”

지난 14일 서울 명동의 ‘비브라스’ 매장 직원은 서툰 한국어로 이같이 말했다. 중국자본의 화장품 회사 비브라스가 내세우는 브랜드 정체성은 ‘K뷰티’다. 하지만 매장 내에서는 좀처럼 K뷰티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중국인에 의한 중국인을 위한’ C뷰티 브랜드, 비브라스가 K뷰티를 표방한 이유는 무엇일까. 

◆K뷰티 맞나… 판매자 구매자 모두 ‘중국인’

비브라스 매장 곳곳에는 중국어로 된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관광 1번지 명동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여느 로드숍과 달리 일본어나 영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주요 타깃층과 실제 구매자 비중이 중국인에 쏠려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매장에서 일하는 중국인 직원 역시 “한국인보다 중국인이 많이 온다”고 전했다. 다만 이 직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중국인 관광객이 줄었다”고 덧붙였다. 

중국인 관광객이 사라진 비브라스 매장은 한산했다. 비브라스는 지상 5층 규모의 건물 전체를 매장으로 쓰고 있지만 실제 운영되는 곳은 1층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텅텅 비어 직원들만이 자리를 지켰다.

기자가 매장에 머문 30분간 다녀간 손님은 단 한명도 없었다. 반면 인근 K뷰티 로드숍에는 코로나19 여파에도 한국인과 일본인이 삼삼오오 쇼핑을 하고 있었다. 중국인 관광객의 부재로 인한 타격이 비브라스에 더욱 크게 작용하는 듯했다.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비브라스 매장. 내부가 한산하다. /사진=김경은 기자

덕분에 직원의 안내는 기자에게 집중됐다. 이 직원은 비브라스가 K뷰티 브랜드임을 강조했지만 그의 안내는 중국시장에 맞춰져 있었다. 그는 중국인이 많이 사는 제품, 중국에서 유명한 제품을 위주로 추천했다. 

비브라스의 베스트셀러는 마스크팩. 특히 중국인들 사이에서 한국 마스크팩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중국의 대기오염이 날로 심각해져 피부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진 데다 한국여행 시 지인들에게 기념품으로 선물하기 좋아서다. 

비브라스 직원은 여러 종류의 마스크팩 가운데 금색 호일 시트가 사용된 ‘럭셔리 프레스티지 마스크’를 추천했다. 가격은 5장에 3만원으로 개당 6000원꼴이다. 로드숍 마스크팩 평균 가격(1000~4000원)에 비해 고가에 속했다. 
직원은 “중국 최고의 배우 판빙빙이 써서 인기를 끌었다”며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도 검색량이 1위인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제품 앞에는 판빙빙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증글과 사진도 인쇄돼 있었다. 하지만 한국어 번역 없이 중국어로만 기재돼 읽을 수는 없었다. 

또 다른 베스트셀러는 ‘리바이브 미 립스’. 이 제품은 만년필 모양의 립스틱으로 화려함을 선호하는 중국인의 취향에 부합할 듯 했다. 가격은 3만5000원으로 로드숍보다는 높고 백화점에 입점한 글로벌 뷰티 브랜드와 유사하거나 낮은 수준이다. 
비브라스 베스트셀러인 마스크팩 제품군. /사진=김경은 기자

◆비브라스는 어떻게 K뷰티가 됐나 

국내 로드숍보다 비싼 가격에 이름도 생소한 브랜드. 비브라스는 어떻게 중국 소비자들을 사로잡았을까. 그 비결은 비브라스가 K뷰티를 표방한 C뷰티라는 데 있다. 비브라스는 중국 웰란쏭 그룹의 투자 유치를 받았으며 진인란 대표이사를 포함한 등기 임원들이 모두 중국인이다. 

비브라스가 K뷰티를 내세운 것은 중국 진출을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국내시장에 먼저 진출해 K뷰티 이미지를 얻고 나면 중국 사업이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비브라스는 명동에 1호 매장을 낸 뒤 중국 현지에도 매장을 오픈했다. 

비브라스 관계자는 “중국에 매장이 있다”면서도 “매장 개수나 국내외 사업 비중, 매출 등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비브라스의 움직임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비브라스가 국내 쇼핑 중심부인 명동 한가운데서 ‘큰손’인 중국인 관광객을 포섭하고 있는 까닭이다. K뷰티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을 두고 K뷰티와 C뷰티가 경쟁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화장품시장에서 C뷰티의 점유율이 상당히 높아졌다”며 “아직까지 국내시장에서는 영향이 미미하지만 C뷰티가 K뷰티를 계속 답습하는 만큼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왼쪽부터) 비브라스 , ‘리바이브 미 립스’, ‘블랙티라피 트리트먼트 에센스’ ‘럭셔리 프레스티지 마스크’. /사진=홈페이지 캡처
C뷰티 어디까지 왔나… 직접 써보니 

기자가 이날 비브라스 매장에서 구매한 제품은 ‘럭셔리 프레스티지 마스크’, ‘리바이브 미 립스’, ‘블랙티라피 트리트먼트 에센스’ 등 3종이다. 제품 가격을 더하면 총 12만1000원. 국내 로드숍 브랜드에서도 이만큼의 화장품 쇼핑을 해본 적이 없어 구매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해보니 금액이 크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스크팩의 경우 호일 시트로 제작돼 일반 마스크 시트보다 피부를 감싸는 밀착력이 뛰어났고 마스크팩 성분이 피부에 잘 스며들어 보습에 효과적이었다. 에센스는 끈적임 없이 촉촉한 제형이라 부담 없이 바르기 좋았다. 다만 립스틱은 발색이 잘 됐으나 C뷰티 특유의 쨍한 색감이 부담스러웠다. 

비브라스는 디자인이나 향, 발색 등을 볼 때 화려하고 진한 메이크업을 선호하는 C뷰티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제품력은 K뷰티 로드숍 브랜드와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비브라스가 코스맥스, 코스메카, 엔코스 등 국내 제조사개발생산(ODM)과 손잡고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C뷰티는 한국 ODM기업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자체 기술력을 키워왔다. 그 결과 C뷰티는 지난해 중국 화장품시장 점유율이 절반을 넘어설 정도로 성장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의 저가·저질 상품 이미지를 탈피한 것이다. 이제 C뷰티는 K뷰티를 맹추격을 하고 있다. 차별화를 위한 K뷰티의 노력이 시급해 보인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33호(2020년 2월25일~3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