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 북 비핵화 공조 변수될까

지난해 11월 14일(현지시간) 미 CNN방송은 미 의회 보좌관과 행정부 당국자 말을 인용,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으로 50억 달러를 제시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며 국무·국방부 당국자들의 설득으로 이를 47억 달러로 낮췄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이 과정에서 국무부와 국방부 당국자들이 여러 근거를 동원, 해당 금액을 정당화시키느라 분주하다고 CNN은 설명했다. 의회 보좌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국무부와 국방부 당국자들이 한국의 부담금에 미군 주둔비와 오물처리비 등 일상적인 것부터 준비태세 비용까지 포함되도록 확대했다”고 발언했고 이에 대해 행정부 당국자들이 확인해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 같은 대폭 인상 요구로 미 국방부 당국자들이 좌절했으며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의원들까지도 깊은 우려를 보이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정부의 대폭 증액 요구가 궁극적으론 한국을 화나게 하면서도 불안하게 만들어 한국 내 지도자들조차 양국 동맹에 의구심을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美 정부 아닌 트럼프 개인의 요구 반영


CNN 보도의 요지는 미국이 한국에 2020년 방위비 부담액을 전년(9억 달러)보다 5배 이상 많이 요구하는 것은 미 정부가 아닌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요구가 반영됐으며 이는 양국 동맹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자 궁극적으론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처사라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수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는 매우 커 관련 협상이 지연되고 있고 급기야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 카드까지 꺼내들며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는 결국 군사작전과 준비태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CNN은 지적한다.


일각에선 방위비 분담금을 둘러싼 이 같은 양국 간 대치가 한반도 안보를 위협받는 사안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이 같은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는 상원에서의 탄핵안 부결을 계기로 재선 행보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하든 카드’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지적이 대다수다. 오히려 이런 무리한 요구가 국제 경제질서를 흔드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트럼프, 재선 가도엔 동맹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당선 후 꾸준하게 동맹국들의 방위비 증액을 요구해 왔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을 확인하려는 것도 있지만, 궁극적으론 재임기간 내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란 판단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탄핵 정국에 휩싸인 지난해 말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한국에 방위비 증액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나토는 당초 미국과 서유럽이 냉전시대 집단안전보장을 목적으로 맺은 군사동맹이었으나 소련 붕괴 후 1999년부터 동유럽이 가세하면서 지난해 기준 29개 국가가 정식회원국으로 소속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으로 나토 회원국들은 2024년까지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늘리는 데 합의했고 지난해 30%가 넘는 9개 국가가 약속을 이행했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말 나토는 방위비 지출을 늘리는 한편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기여금 비중을 낮추기로 합의했다. 나토 전체 예산의 22%를 담당하던 미국이 독일(16%) 수준으로 기여금을 줄여 매년 약 1억5000만달러(약 1768억원)의 예산을 절약하게 된 것이다. 부족분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이 분담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4일(현지시간) 미 의회 하원에서 진행한 국정연설에서 나토와의 협상 등 재임기간 내 성과를 강조하며 ‘위대한 미국의 귀환’(The great American comeback)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연설에서 “동맹국들이 공평한 몫을 지불토록 돕고 있다”며 “나는 나토 회원국들로부터 4000억달러 이상의 분담금을 걷었고 최소한의 의무를 이행한 동맹국 수는 2배 넘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앞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거론한 한국과 일본이 다음 대상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실질부담금 11조원 달해

불안한 예감은 현실로 다가왔다. 같은달 2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인근 국방부 청사에서 만난 정경두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한·미 동맹 강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주요 현안을 논의했다.

양자회담에서 두 장관은 입장차를 재확인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공동 방위비용 부담이 납세자에게 불공평해선 안된다”며 “한국은 방위비를 더 분담할 능력이 있는 데다 관련 금액이 전체 비용의 일부에 지나지 않기에 대폭 증액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정경두 장관은 “한국 정부는 방위기 분담금 외에도 직·간접적 방법으로 주한미군 주둔에 기여하고 있다”며 “지난해도 예년보다 훨씬 높은 8.2%의 증가율을 적용했는데 현재 진행중인 11차 협상도 기본적으론 (전년보다) 많은 수준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이 요구하는 대폭 인상과는 인식 차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5억달러(6조원)는 지난해 한국 방위비 분담금(약 1조389억원)의 5.5배 수준에 달하는 금액이다. 1966년 맺은 소파(SOFA)에선 ‘한국이 제공하는 시설 및 구역을 제외한 미군 주둔비용은 모두 미국이 부담한다’는 조항을 이행했지만 1991년 맺은 예외협정으로 한국도 방위비 일부를 부담하게 됐다.

첫 협정 당시 1073억원이던 분담금은 꾸준히 상승, 지난해 10배가량 증가했다. 물가상승분을 고려하더라도 한국이 부담하는 방위비 분담금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에 지원하는 직·간접적 비용만 5조원을 돌파한 상황에서 방위비 분담금 명목으로 6조원가량의 예산을 집행할 경우 약 11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주한미군 직·간접 지원비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재정지출을 수반하는 직접지원 2조4279억원을 포함해 면제·감면 비용, 평택 미군기지 이전으로 유발된 한시적 비용을 포함할 경우 2015년 주한미군에 지원한 직·간접 지원은 5조4563억원에 달한다. 방위비 분담금 외에 카투사 비용, 기지주변 정비, 토지임대료 등을 합친 금액이다.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번 방위비 분담금이 6조원 규모로 합의될 경우 차액인 5조원을 위해 추경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며 “올해 정부의 국방예산인 50조원의 약 12%를 방위비 분담금으로 지급할 경우 국방비 지출의 심각한 왜곡을 야기해 자주 국방력이 치명적으로 훼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정(SMA) 협상이 연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오는 4월 1일부터 주한미군 내 한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급휴직을 시행할 것이라며 강도 높은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관련 노동자 규모는 약 9000명으로 추산된다.

정부 입장에선 이번 SMA 협상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 규모를 최대한 줄여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한국, 미국, 일본 등 3개 국가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세운 만큼 방위비 분담금이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절충안을 통해 3~4조원 규모로 협상을 타결하더라도 예상 범위를 초과하는 만큼 국민 여론 악화를 피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참여연대를 비롯한 48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2월 18일 오전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 ‘미국의 방위비 강요 규탄, 호르무즈 파병 반대 100인 평화행동’에 참석해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 경비 일체와 인도·태평양 전략 비용까지 한국에 떠넘기려 한다”며 “기존 SOFA와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헙정 범위를 명백히 넘어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34호(2020년 3월3~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