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자금난에 허덕이는 기업 살리기에 팔을 걷었다. 100조원의 실탄을 마련해 중소·중견기업에 58조원 규모의 대출·보증을 공급한다. 여기에 대기업도 포함한다. 채권시장엔 42조원의 유동성을 투입한다. 국책은행이 이번달 만기되는 5조6000억원의 회사채를 사들여 기업의 자금조달에 숨통을 틔워줄 전망이다. 100조원의 기업구호긴급자금이 암울하던 국내 산업에 한줄기 빛이 될까. ‘머니S’는 정부의 100조원 정책금융 계획을 살펴보고 실효성을 진단했다. <편집자주>
[Cover Story-코로나 늪에 빠진 산업]① 100조원 실탄, 누가 내고 어디에 쓰이나
“기업이 코로나19 충격에 도산하는 사태를 반드시 막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신음하는 기업 살리기에 나섰다. 코로나19발 경제위기가 1997년 IMF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사태보다 더 심각한 실물 경기 위축을 불러올 것이란 위기감이 반영된 조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및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회의 개최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임한별 기자 코로나19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중소·중견기업에 58조원을 투입한다. 지원 대상에는 대기업도 포함됐다.
기업과 금융시장의 ‘돈맥경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2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도 동원한다. 증시부양을 돕는 증권시장안정펀드는 10조원 넘게 조성한다. 단기자금시장에 들어가는 자금까지 포함하면 총 100조원 규모의 긴급부양책이 가동된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지역 신용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은 시중은행과 중소기업·소상공인 금융지원에 29조2000억원, 대기업을 포함한 중소·중견기업 자금지원에는 29조1000억원을 각각 투입한다.
산업별 자금지원은 경영난을 겪고 있는 항공업, 해운업, 관광업, 유통·서비스업 등 다양하게 적용될 전망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은 지난달 27일 두산중공업에 1조원을 수혈한 데 이어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제주항공(400억원)과 진에어(300억원) 등 저비용항공사(LCC)에 700억원의 운영자금을 무담보 조건으로 지원했다.
이달 안에 아시아나항공을 통해 에어부산에 최대 280억원의 대출을 공급한다. 운항이 잠정 중단된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에 인수자금 2000억원을 다른 은행과 공동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대규모 유동자금을 기업들에게 긴급히 수혈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국가 간 이동이 제약되면서 타격을 받은 LCC에 속도감 있는 금융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피해 기업은 100조원 규모의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국책은행의 자금지원 등 ‘두 가지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두산중공업과 항공업계가 선택한 것은 국책은행의 자금지원이다. 당장 4월에 6조50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기업들은 국책은행이 회사채를 사주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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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 팔 비틀어… 증시부양 효과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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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회사채와 주식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41조8000억원을 새롭게 마련했다. 금융사들이 참여해 채권시장안정펀드를 20조원 규모로 조성한다.
만기가 돌아왔으나 재발행이 어려운 회사채는 산업은행이 신속히 매입하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도(2조2000억원)를 포함해 국책은행 등이 회사채 발행을 지원한다. 회사채 등급 A이상이거나 코로나19 여파로 등급이 하락한 기업 가운데 투자등급(BBB- 이상)이 대상이다.
기업 입장에선 채권은행과의 협의 절차가 생략되는 만큼 회사채를 신속하게 발행하고 차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산업은행은 기업은행과 함께 2조원 규모의 기업어음(CP) 매입에도 나선다. 먼저 회사채 차환·CP 매입 수요를 조사하고 이달부터 본격 매입에 들어갈 예정이다.
회사채 지원 대상 1순위는 항공업종이 꼽힌다. LCC는 물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 항공사들도 ‘항공사 채권 발행 시 정부(국책은행)의 지급보증이 선행돼야 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어서다.
최근 한국신용평가는 대한항공의 무보증 사채 기준에 대해 ‘BBB+(하향검토)’, 아시아나항공은 ‘BBB-(상향검토)’로 등급을 매겼다.
아시아나항공은 인수에 나선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산업은행에 인수대금 납입일 조정 등을 요구해 인수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1386.7%로 전년(649.3%)대비 2배 넘게 급증했기 때문이다.
아직 아시아나항공의 실질적 주인인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의 원활한 인수합병(M&A) 진행을 위해 추가 자금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HDC현대산업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대금은 총 2조원에 육박하며 납입은 1차 신주 인수(1조1700억원), 2차 신주 인수(5800억원), 구주 인수(2600억원) 등 3단계로 나뉜다.
관건은 국책은행이 코로나19 피해기업의 회사채를 인수하는 속도다. 자금이 목마른 기업에 빠른 속도로 차환 발행을 지원해야 직접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번 달 만기되는 대한항공 회사채는 2400억원이다. 아시아나항공도 올해 상환하거나 차환해야 하는 차입금이 1조1700억원에 달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회사채 만기를 막아내지 못하면 ‘흑자 도산’도 가능하다”며 “정부와 국책은행이 채권시장 경색으로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이 늘어나지 않도록 회사채 인수에 빠른 속도와 적절한 타이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정부, 국책은행 지원 외에 기업의 자구노력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은행이 특정 기업의 회사채를 인수하면 특례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은 “지금은 기업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는 게 시급하다”면서도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만큼 자체 경쟁력 확보하기 위한 자구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