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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빈대가 아닌 사람이다. 빈대한테서도 배울 건 배우자. 인간도 모든 일에 절대 중도 포기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한 노력만 쏟아 붓는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는 그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에서 ‘빈대학습론’을 펼쳤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빈대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정 회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인천에서 막노동할 때 잠을 잤던 노동자합숙소는 들끓는 빈대로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이었다. 몇 사람이 밥상 위에서 잤지만 빈대는 밥상 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와 물었다. 다시 머리를 짜내 밥상 네 다리를 물 담은 양재기에 담갔다. 이틀 동안은 빈대에서 해방돼 잘 잤다. 하지만 사흘째 되는 밤부터 다시 가려움에 시달렸다. 물 담은 양재기에 길이 막힌 빈대들이 벽을 타고 천정에 올라 사람을 향해 툭 떨어졌다. 그때 느꼈던 소름끼치는 놀라움을 잊을 수가 없다.”
정 회장은 “빈대도 목적을 위해선 저토록 머리를 쓰고 저토록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서 성공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의 ‘빈대학습론’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로 현대조선소 건설을 위한 외자유치, 서산앞바다 물막이 공사의 ‘유조선공법’, 전세계의 눈과 귀를 집중시킨 ‘소떼방북’ 등의 신화를 만들어 냈다.
간충(肝蟲)의 지성감천
정 회장에게 깨달음을 준 빈대의 사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 간충으로 소개되고 있다. 간충(Fasciola hepatica)은 양 소 염소 등의 간에 사는 기생충이다. 간충은 간에서 알을 까지만 알은 간에서 부화될 수 없다. 알은 똥과 함께 배출돼 애벌레가 된 뒤 달팽이에 먹혀 자란다. 달팽이의 끈끈물을 타고 나온 애벌레는 개미에게 먹힌다. 개미 갈무리 주머니(사회위)를 뚫고 나온 애벌레는 개미가 양 소 염소 등에 먹히도록 조종한다.양들과 개미는 활동하는 시간대와 장소가 많이 다르다. 양들은 신선할 때 풀줄기의 윗부분을 뜯어먹는다. 반면 개미들은 따듯할 때 둥지를 나와 풀뿌리의 신선한 그늘 안에서 돌아다닌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양들과 개미가 만날 수 없고 간충 애벌레가 양들의 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간충은 빈대보다 더 한 노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간충 애벌레는 개미의 가슴 다리 배 등에 10여 마리씩 들어가고 뇌에는 한 마리가 들어간다. 뇌가 간충 애벌레에 감염된 개미는 몽유병 환자가 된다. 애벌레가 개미의 신경을 통제해 밤에 일어나 양들이 좋아하는 풀(냉이와 개자리 등) 꼭대기에 올라붙어 양들에게 풀과 함께 뜯어 먹히기를 기다리도록 만든다.
간충은 아주 오랫동안 필사적으로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끝에 양의 간→달팽이→개미→양의 간으로 이어지는 ‘번식순환과정’을 만들어 냈다. 특히 개미의 뇌로 들어간 애벌레는 다른 애벌레들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희생정신을 발휘한다. 간충 애벌레에 감염된 개미로서는 마른하늘에서 벼락을 맞은 셈이지만 생태계는 그렇게 진화해 가고 있다.
성냥개비 6개로 정삼각형 4개, 6개 만들기
이런 수수께끼가 있다. 성냥개비 6개로 똑같은 크기의 정삼각형 4개를 만들 수 있을까. 정답 찾기가 쉽지 않지만 확실히 정답은 ‘있다’. 힌트는 ‘다른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방식과 다르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답을 찾았는가. 이번에는 성냥개비 6개로 똑같은 정삼각형 6개를 만들어 보라. 성냥개비를 부러뜨려서도 풀을 사용해서도 안된다. 이번 문제도 정답이 있다. 힌트는 ‘다른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 쉽지 않다. 이보다 더 골치 아픈 문제가 있다. 알고 나면 매우 간단하지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문제다. 1 11 12 1121 122111 112213 다음에 나올 숫자는 무엇일까. 힌트는 ‘영리한 사람일수록 답을 찾기가 더 어렵다.’ ‘자기가 아는 것을 다 잊어버려야 한다.’ ‘우주가 그렇듯이 이 수수께끼는 절대적인 단순성에 기원들 두고 있다.’ 정답은 12221131이다. 그리고 그 다음 숫자는 1123123111가 된다. 왜 그럴까.
‘개미’에 나오는 이 3가지 문제는 우리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굳어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성냥개비 6개로 정삼각형 4개를 만드는 것은 평면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입체로 영역을 넓히면 금세 만들 수 있다. 성냥개비 6개로 정삼각형 6개 만드는 것도 알고 나면 매우 간단하다. 3개씩으로 정삼각형을 2개 만든 뒤 하나를 뒤집어 다른 하나 위에 올려놓으면 된다. 세 번째 문제는 동심의 세계로 가보면 알 수 있다. 1을 보면 아이는 ‘1이 한개’라고 대답할 것이다. 11이다. 11을 보면 ‘1이 두개’라고 할 테니 12가 된다….
총선 이후 해야 할 일
우리가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과거의 지식과 고정관념으로 변화무쌍한 현재와 미래를 재단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끊임없이 바뀐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과거의 죽은 지식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케인즈는 1929년 대공황 이후 급증한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책, ‘일반이론’ 서문과 끝부분에 이를 적절하게 지적했다. “이 책을 만드는 일은 저자에게 기나긴 탈출의 고투(사고와 표현의 습관적 양식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고투)였는데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도 이 책을 읽는 것이 탈출의 고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려움은 새로운 관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낡은 관념으로부터 탈출하는 데 있다.” “위험한 것은 사상이지 기득권익은 아니다.”
코로나19 전염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치러진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여당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총선에서 반영된 민심을 어떻게 해석하고 우리가 직면한 과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해결하느냐가 급선무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위해 이긴 사람은 아량을 진 사람은 반성이 필요하다. 패배는 개혁적이고 승리는 보수적이 되는 경향에서 벗어나야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올바른 정책이 나올 수 있다.
총선에서 주인으로서 심판자 역할을 한 국민은 정치권에 대해 정주영의 ‘빈대’와 베르베르의 ‘간충의 지성’(至誠과 知性)을 요구하고 있다. 승리에 도취돼 자기를 섭섭하게 한 사람들에게 복수하겠다고 벼른다든지 실패한 것에 울분을 터뜨리며 희생양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자신은 물론 국민과 나라를 모두 망치는 백해무익한 짓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2호(2020년 4월28일~5월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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