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철도 20년사의 산 증인
‘서울역 안방마님’의 소통 철학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이후 일상에 변화가 찾아왔다. 거리두기와 재택근무로 대변되는 비접촉의 일상은 이제 낯설지가 않다. 한때는 세상이 멈추는 듯했다. 공들여온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탄식이 쏟아졌다. 땅이 꺼지는 듯 절망감에 몸을 떨었다. 방심은 재확산이라는 화를 불러왔다. 비상식적이며 몰지각한 행태로 일관해온 자들을 향한 공분이 들끓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됐지만 멈추려는 일상의 시곗바늘을 돌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감염병 확산에도 아침은 밝아온다. 코로나19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질곡에도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그들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침을 열고 있다. 서울역에서 또 다른 우리인 추선정 인천공항철도 서울역 역무 매니저(44)를 만났다.


공항철도 추선정 서울역 역무 매니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장동규 기자

북적이던 터미널 눈에 밟혀도… 아침을 달리는 공항철도

인천공항철도(AREX·공항철도)는 대한민국 관문인 인천국제공항과 서울 도심을 잇는다. 공항철도 서울역에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개설된 도심공항터미널이 있다. 직통열차를 이용하는 출국객 편의를 위한 도심 속 작은 공항으로 불린다. 탑승수속·수화물 탁송·출국심사를 짧은 시간에 끝내고 인천공항으로 직행할 수 있어서다.

인기가 높던 터미널은 코로나19 사태로 문을 닫았다. 직통열차도 4월1일부터 멈춰섰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영향으로 우리나라를 드나드는 이가 줄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와 거리두기 격상은 일반열차 이용에도 영향을 미쳤다.

“도심터미널에 줄지어 선 여행객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 눈코 뜰 새 없는 업무 속에서도 떠나고 돌아오는 여행객의 얼굴에서 보람을 느꼈죠. 돌아보니 여행객의 캐리어에 치이는 게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곧 북적이는 모습을 볼 날이 오겠죠.”


실제 수도권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3월1일부터 일반열차 이용객이 급감했다. 공항철도에 따르면 일반열차의 일평균 수송인원은 3월1일~9월13일 전년 동기 대비 69% 수준으로 감소했다. 서울역은 이보다 낮은 56%에 그쳤다. 거리두기 2.5단계 기간에는 더 쪼그라들었다. 8월29일~9월13일 일반열차의 일평균 수송인원은 전년 대비 51% 수준이었고 서울역은 40%에도 미치지 못했다.

여행객으로 북적였던 공항철도 도심공항터미널을 배경으로 추선정 서울역 역무 매니저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장동규 기자

추선정 서울역 역무 매니저 “새벽을 여는 뿌듯함은 여전”

북적였던 서울역 공기는 달라졌다. 하지만 추 매니저는 오늘도 어김없이 서울역 공항철도의 아침을 연다. 그는 “일반열차 첫차가 매일 5시20분에 떠난다. 이를 위해 4시30분부터 업무를 시작한다”고 했다. 막차가 들어온 이후 새벽 1시 셔터를 내린 뒤 2시간가량 당일 업무 마감을 한다. 2시간30분정도 숨을 돌린 뒤 다시 첫차 준비에 나서는 것이다. 4조 2교대의 근무 일정이다.

추 매니저는 고되지만 첫차를 준비하는 발걸음은 가볍다고 했다. 그는 “첫차 이용객이 코로나19 발발 이전에 비해 많이 줄었지만 표정만큼은 여전히 활기차고 밝다”면서 새벽을 여는 뿌듯함은 한결같다고 했다.


추선정 매니저는 공항철도 20년사의 증인이다. 청춘을 공항철도와 함께했다. 그는 “공교롭게도 사번이 23번이다. 회사 창립기념일과 같다”면서 사원증을 꺼내 보였다. 공항철도는 2001년 3월23일 창립했고 6년 뒤인 2007년 3월23일 개통했다. 내년 3월23이면 추 매니저의 근속년수는 정확히 만 20년이 된다.

줄곧 본사 근무를 해온 그가 역무 현장으로 온 지 4년이 조금 지났다. 공항철도 서울역 부역장으로서 매니저 업무를 맡은 것은 2년째. 지금은 역무 매니저 그 이상의 업무도 가뿐하다지만 처음부터 그랬을까.

공항철도 추선정 서울역 역무 매니저가 서울역 플랫폼에서 열차 출발 전 안전 확인을 하고 있다. /사진=장동규 기자

공항철도와 함께한 20년… ‘서울역 안방마님’의 소통 철학

16년을 본사에서 보낸 추 매니저는 현장에 왔을 때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각종 민원처리를 비롯해 고객응대·안전관리·시설물관리·교대근무 등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는 “현장에 늦은 나이에 와서 동료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며 웃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가족이었다고 털어놨다. 현장 발령을 받았을 때 아이들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여섯살·네살배기였다. 추 매니저는 “현장에서 밤을 보내는 교대근무라고 했더니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 회상했다. 그는 “사실 두달 정도는 벅찼다. 이제 역무 업무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가족과 동료의 응원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추 매니저는 현재 공항철도의 홍일점 역무 매니저이다. 특유의 자신감으로 긴급상황을 돌파하는 현장 대응력이 빼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추 매니저와 함께하면 어떤 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동료들 사이에선 ‘서울역 안방마님’으로 통한다.

그렇다면 공항철도에서 역무 매니저의 기본 책무는 무엇일까. 추 매니저는 고객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업무에 방점을 둔다고 했다. 고객 이용 편의에 앞서 안전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역무원 매뉴얼과 팀원 직무교육의 모든 것이 안전으로 시작해 안전으로 끝난다.

추 매니저는 ‘인간은 입이 하나 귀가 둘’이라는 탈무드의 명언을 꺼냈다. 그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잘하라는 뜻”이라면서 고객과의 소통은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밑거름이 된다고 했다. 직원 간 소통은 행복한 일터를 만든다고도 덧붙였다. 소통은 ‘서울역 안방마님’의 철학인 셈이다.

그동안 겪어온 에피소드에서 역무 업무가 가장 매력적이라는 추 매니저의 마음이 엿보였다. 시각장애인을 안내하고 치매환자를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면서 이 일에 보람을 느꼈다고 밝혔다. 취객의 폭행과 폭언에도 아침을 기꺼이 여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추 매니저의 따뜻한 시선에 눈길이 머문다. 역무 매니저이기 전에 그는 아이들의 엄마이고 한 남편의 아내이며 그보다 앞서 어느 부모의 딸이기도 하다. 고난의 시기에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인 추 매니저가 대한민국의 아침을 열고 있다. 플랫폼으로 안전점검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에서 공항철도 초대 여성 역장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