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개방이 임박한 가운데 석유화학 구조조정 논의가 빠르게 재개돼야 한단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전경. /사진제공=여수시


중동 전쟁이 종전 국면에 접어들면서 석유화학 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하락하고 중국발 공급 과잉이 재개될 경우 실적이 다시 악화할 수 있다. 전쟁 기간 멈춰있던 구조조정 논의가 빠르게 재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기업 간 이해관계 충돌과 신규 설비 변수 등으로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 간의 종전 협상 타결로 호르무즈 해협 개방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에 산업통상부는 오는 8월 말까지 적용하기로 했던 '나프타 수출제한 및 수급 조정에 관한 고시' 조기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국내외 공급망을 단계적으로 정상화하겠다는 의도다.

석유화학 기업들은 전쟁 기간 원유와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면서 '래깅 효과'를 누렸다. 기업들은 통상 나프타 매입 후 일정 기간을 두고 제품을 생산·판매한다. 전쟁으로 제품 가격이 오르면서 전쟁 이전 낮은 가격에 확보한 원료 덕분에 수익성이 개선됐다. 롯데케미칼은 1분기 영업이익 735억 원을 기록하며 10분기 만에 흑자 전환했다. LG화학 석유화학 부문과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도 각각 1648억 원, 341억 원을 올리며 적자를 탈출했다.


현재 기업들은 전쟁 기간 공급망 다변화를 시도하며 높은 가격에 들여온 나프타를 공정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원유·나프타 수급이 원활해져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급락할 경우 마진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업계 수익성 지표로 꼽히는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에서 원료인 나프타 가격을 뺀 값)는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산업통상부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전쟁 발발 후 한때 톤(t)당 500달러를 넘었던 에틸렌 스프레드는 지난 16일 기준 169달러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손익분기점을 250달러로 본다.

중국발 공급 과잉에 재직면할 가능성도 크다. 그동안 중국은 대규모 증설과 저가 공세를 앞세워 에틸렌·프로필렌 등 범용 석유화학 제품 시장을 장악해 왔다. 중동 전쟁 발발 후 중국이 자국 내 석유화학 제품 수급 차질 우려로 수출을 통제한 덕분에 국내 기업들은 저가 물량 공세를 피할 수 있었다.


실적 악화 우려가 커지면서 석유화학 구조조정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와 업계는 대산 1호 프로젝트(HD현대케미칼·롯데케미칼) 확정 이후 여수·울산 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추가 사업재편을 논의해 왔다. 하지만 중동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원료 확보와 공급망 안정이 우선순위가 돼 구조조정 논의는 사실상 답보 상태였다.

종전 이후에도 구조조정이 곧바로 진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여수 산단 1호 프로젝트(롯데케미칼·여천NCC)는 큰 틀은 잡혔지만 자산·부채 이관과 지분율 조정 등 세부 조율에서 지연되고 있다. 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DL케미칼의 일부 다운스트림 사업까지 신설법인에 묶는 구조인 만큼 기업 간 셈법이 복잡하다.


여수 산단 2호 프로젝트(LG화학·GS칼텍스)는 합작 대상 설비 자산가치를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GS칼텍스는 정유·석유화학 수직계열화를 구축한 데다 정유에 비해 사업 규모가 크지 않아 통합 논의에 있어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에너지 기업 셰브론이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울산 산단은 상황이 더 복잡하다. 에쓰오일과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는 이번 달 말 기계적 완공을 앞둔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를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할지, 고효율 설비로 보고 예외로 둘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에쓰오일은 구조조정 논의 전부터 프로젝트 착공에 들어갔으며, 효율성 높은 신규 설비를 정상적으로 가동하는 게 정부 구조조정 취지와 맞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샤힌 프로젝트를 제외할 경우 경쟁사들이 구조조정으로 공급을 줄이는 데 따른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종전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호르무즈 해협 통항 정상화는 결론이 나지 않았기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산단별 이해관계가 복잡해 결론 도출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