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실크로드© 뉴스1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인간의 문명이 길을 따라 전파돼 풍요로워지며 실크로드가 중국 한나라 때 비단을 수출하던 길에서 인류 문명의 교류 통로에 대한 범칭을 확대됐으며 한반도에도 문명의 젖줄이었다고 주장한 책이 출간됐다.

'우리 안의 실크로드'는 실크로드학·문명교류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이 지난 10여 년 동안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실크로드와 문명교류학 관련 논문을 정리한 책이다.


정 소장에 따르면 실크로드의 의미는 4단계를 거쳐 발전했다. 실크로드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1단계는 140년 전에 불과하다.

독일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은 1877년 저서 '중국'에서 실크로드를 최초로 사용했다. 리히트호펜은 중국의 주요 수출품이 비단었다는 점에 착안해 한나라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서북 인도로 물품을 수출하는 길을 독일어로 자이덴슈트라세(Seidenstrasse)라고 불렀다.


2단계는 1910년 독일의 동양학자 알베르트 헤르만에 의해서다. 헤르만은 실크로드를 시리아까지 확장했다. 한나라 비단 유물이 20세기에 들어와 중앙아시아를 넘어 지중해에 인접한 시리아의 팔미라에서까지 발견됐기 때문이다. 확장된 실크로드는 북위 40도 내외의 사막의 오아시스에서만 발견됐기 '오아시스로'라고도 부른다.

3단계는 2차대전 이후에 마치 현대의 도로망처럼 확장됐다. 실크로드는 2단계의 길에 지중해에서부터 중국 동남해안에 이르는 바닷길과 유라시아대륙 북방 초원지대를 관통하는 북위 50도 초원길이 포함됐다. 여기에 각각의 길을 종단하는 지선까지 더해졌다.


정 소장은 실크로드의 마지막 4단계에서 포르투갈의 탐험가 마젤란을 거론했다. 마젤란은 1522년 각각의 바다였던 대서양과 태평양 그리고 인도양으로 최초로 횡단한 인물일다. 그의 영향으로 감자와 고구마를 비롯해 담배, 토마토, 고추, 옥수수 등의 아메리카의 농작품이 세계로 퍼졌다.

저자는 중국과 라틴아메리카가 새롭게 열린 해로를 통해 비단과 도자기 그리고 백은 등을 교역했다는 사실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백은은 중국으로 수출돼 물가상승을 일으키고 생활을 변화시켰다.


실크로드가 한반도까지 이어졌다는 것은 저자가 신간 '우리 안의 실크로드'에서 공들인 개념이다. 저자는 이런 주장의 근거로 신라와 서역을 교류를 증명할 수 있는 유물과 기록을 제시했다.

4~6세기로 추정하는 신라 고분에서는 로마 말기의 유리잔이 다수 출토됐으며 특히 로마에서 풍요의 상징으로 쓰인 뿔잔도 발견됐다. 아랍의 학자 이븐 쿠르다지바는 '중국 동해에 있는 나라'에서 비단, 말안장, 도기 등 11가지를 수입한다고 밝혔다. 저자는 이 나라가 바로 신라라고 주장했다. 고려사를 살펴보면 아랍의 상인이 배를 타고 100여 명씩 수도인 개경까지 왔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저자는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대해 "오늘날까지도 계속 변화하면서 발전하고 있는 실크로드의 개념적 면모를 무시하고 실크로드를 유라시아 구대륙에만 한정하고 있다"며 "실크로드가 중국에서 시작되는 일방향적 공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국중심주의"라고 비판했다.

책은 실크로드가 우리 민족에게도 문명의 젖줄이었으며 인류의 문명이 풍요로워지는데 중추적 역할을 해왔음을 알려준다.

◇우리 안의 실크로드/ 정수일 지음/ 창비/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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