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지난 7월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 7.3연합 회원들이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있는 서울 중구 중앙우체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게 가습기살균제참사 가해기업과 정부 실정에 대한 특검을 촉구하고 있다. 2020.7.31/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집에 와서 애가 무릎을 꿇고 엉엉 우는 거에요. 자기는 죽을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면서요. 부모 입장에서 남자애가 그렇게 주저앉아 울고 있는데 기가 막히죠…."


지난 24일 경기도에 있는 자택에서 만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김서주(48·여·가명)씨는 지난해 7월 군에 입대했던 둘째 아들이 훈련소 생활 8일 만에 집으로 돌아온 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인정받은 아들이 제대로 군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노심초사했는데 걱정이 현실이 된 것이다.


김씨는 그동안 아들이 신체검사를 받으러 갈 때 그동안의 병력과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인정 받았다는 사실을 병무청에 알렸다. 그런데 신체검사 결과 아들 박민혁(21·가명)씨는 현역 판정을 받았다. 아들은 "하면 될 것 같다. 한번 해보겠다"고 엄마를 위로했지만 걱정이 된 김씨는 훈련소에서 아들을 배웅하며 부대 관계자들에게 아들이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민혁씨 말고도 김씨에 집은 3명의 아들 모두가 유아기 때부터 가습기를 사용했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사용했던 살균제가 독이 돼 돌아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둘째 아들인 민혁씨는 지속해서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결과로 어려서부터 피부질환, 천식 등을 앓았고 지난 2018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다행히 가족들의 돌봄과 조심스러운 생활로 민혁씨는 어느 정도의 일상생활이 가능해졌고 성인이 되면서 천식 증상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김씨는 아들이 '외관상'은 멀쩡해 보였기 때문에 현역 판정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민혁씨의 몸에는 입대 이튿날부터 비상등이 켜졌다. 첫 아침 뜀걸음을 하는데 폐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숨이 차오르고 찌르는 듯한 고통 때문에 느리게 뛸 수밖에 없었지만 민혁씨는 1.5㎞ 뜀걸음을 완주했다. 그래도 버텨보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하지만 민혁씨 폐는 매일 아침 이어지는 뜀걸음을 이겨내지 못했다.


민혁씨는 결국 귀가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2018년 7월29일 입대한 민혁씨는 8일만인 8월5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민혁씨의 귀가증을 받아본 엄마 김씨는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들이 '정신과적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귀가 조치됐기 때문이다.

김씨가 자초지종 확인해 보니 민혁씨는 신체적 문제로는 귀가 조치를 받기 힘들다는 부대 관계자들의 설명에 해당 정신과 관련 소견을 받아 귀가를 하게된 것이었다. 처음 서주씨는 "그렇게 나오면 안된다"고 아들을 다그쳤지만 '계속되는 고통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울음을 터트린 아들을 보고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귀가 후에도 민혁씨는 폐에 통증을 호소했다. 입대 전까지 주기적 관리로 증상이 완화됐던 천식이 재발한 것이다. 다시 신체검사를 받은 민혁씨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배정받았다. 서주씨는 사회복무요원이라도 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은 받아야 할 텐데 아들이 다시 군대에 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민혁씨의 사연은 지난해 8월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진행한 '가습기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청문회 당시 황전원 사참위 상임위원은 "정부와 기업의 잘못으로 공식적으로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에게 정신적 질환까지 추가하는 게 대한민국과 정부, 군이 할 일이냐"고 따져묻기도 했다.

가습기살균제 군 피해자 지원센터(국방부 제공) 2019.9.9/뉴스1

청문회 이후 관계부처가 후속 조치 마련에 나섰다. 현재 사참위는 환경부, 국방부 등과 월례 정기회의를 열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군입대 관련 제도 개선을 논의하고 있다. 사참위 관계자는 "(피해를 입은) 아이들이 군대에 갔을 때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제도 개선을 논의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사참위의 활동 기간이 올해 12월10일로 두달여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현재 국방부 내에 군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을 찾고 지원하는 지원센터가 운영 중이지만 사참위 활동 기간이 마무리되면 이 센터도 문을 닫게 된다.

이에 김씨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인정받은 아이들은 한정돼 있다"며 "이 아이들이 제대를 할 때까지만이라도 군대 내에 피해자들을 관리해 줄 수 있는 별도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해단체 등에 따르면 영유아기 때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입어 나이가 들면 입대를 하게 되는 피해자는 약 700명으로 추정된다.

한편 김씨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입었음에도 외견상 크게 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받은 아이들이 현재도 계속해 입대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개인적으로 아는 피해자만 해도 10여명이 군복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김씨는 최근 코로나로 인해서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폐기능이 약화된 아이들이 군복무 중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들이 들려온다고 전했다. 서주씨는 "한 아이는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스크를 써야 하니 숨 쉬는 게 힘들어 결국 쓰러지기도 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