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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난 1987년 8월29일 경기도 용인의 오대양 공예품 공장에서 사장 박순자와 가족, 종업원 등 32명이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으로 지난 26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 소개돼 다시 이목을 끈다.
방송에서는 한 기자가 당시 목격했던 장면을 소개됐다. 기자는 20~30대의 청년 13명이 중년 부부를 창고에 가두고 12시간 집단 폭행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그 중년 부부는 박순자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에 5억원을 투자한 이들로 그들의 7남매 모두가 박순자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큰딸이 먼저 비서로 입사하고 동생들을 추천해 모두 다니게 된 것.
이 회사는 대전에 본사를 두고 용인에 또 다른 공장을 둔 금속공예품 제조 업체로 전도유망한 회사였다. 사장 박순자는 당시 직원들의 자녀를 위한 학사를 무료로 지원하는 등 복지에 투자하고 최고급 보육 시설도 지어 자선사업에도 나섰다. 이 회사는 당시 지역사회에서 '꿈의 직장'으로 불렸다.
그 중년 부부는 돈이 필요해져 투자금을 돌려받고자 했고 이후 폭행을 당했으며 이를 기자가 목격한 것이다.
중년 부부가 돈을 돌려받고자 할 때 큰딸이 회사로 와서 사장을 직접 만나라고 했고 그날 중년 부부는 감금돼 폭행을 당했다. 큰딸과 사위가 폭행장면을 지켜보고 있었고 부부는 5억원을 돌려받지 않겠다는 포기각서를 쓰고 풀려나 경찰에 신고했다.
박순자는 직원 13명과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쓰려졌다. 병원에 입원했고 자신의 세 자녀와 갑자기 행방불명됐다. 그런데 박순자가 운영하던 보육원 아이들과 회사 직원 등 총 80여명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도청의 고위 공무원이었던 박순자의 남편은 실종자들을 찾기 위해 대전 공장으로 갔고 사라진 80여명 중 공장 창고에 숨어있던 49명을 찾았다. 나머지를 찾기 위해 용인 공장으로 갔고 식당 아주머니를 추궁했다.
아무 말을 하지 않던 식당 아주머니는 실종 5일째가 돼서야 "공장에 찾으시는 분들이 있다"고 실토했다.
박순자 남편은 공장의 천장 위 조그만 구멍 사이로 속옷만 입고 목을 맨 공장장 최씨를 발견했다. 최씨 주변에는 목 졸린 흔적이 남은 31구의 시신이 더 있었다. 박순자 사장과 자녀 셋도 포함됐다.
시신들은 두 곳에 나뉘어 겹겹이 쌓여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속옷 차림에 손과 발이 결박됐고 목에는 뚜렷한 교살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부검 결과 독극물 등 약물은 검출되지 않았으며 사망 추정 시각은 박순자 남편이 식당 아주머니를 추궁하던 새벽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경찰이 조사 중 천장 바닥 나무판자 위 스티로폼 사이에서 발견한 67조각으로 찢긴 쪽지였다. 쪽지에는 "절대로 입 닫아라" "이미 의식 없으시다" "네 시간 전부터 5명 정도 죽였다" "오늘 중으로 거의 갈 것 같다" 등의 내용이 담겨 충격을 안겼다.
경찰은 "성령 인도로 너만 버텨라" 라는 내용에 의심을 품고 조사에 나섰고 박순자가 사이비 교주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식당 아주머니는 마지막 생존자였다. 박순자는 몇 년의 암 투병 끝에 기도로 완치 판정을 받자 자신이 스스로 선택받았다고 여겼고 직원들을 모두 신도로 들였다.
박순자는 원금 30~40%를 이자로 주는 조건으로 투자자들을 모았고 3년 동안 채권자들과 신뢰를 쌓았으며 그들을 이내 신도로 끌여들였다. 신도들과 집단 시설에서 생활하며 170억원에 이르는 사채를 빌려쓴 정황도 드러났다.
당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죽음에 함께 하지 못해 자괴감을 느끼거나 '들림' 받지 못해 서운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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