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지난 27일 오전 민주당 최고위원회 모두발언에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피해자와 가족들께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사진=임한별 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지칭하며 '2차 가해' 논란을 부추긴 더불어민주당이 박 전 시장의 성 비위에 대한 공식 사과와 반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 27일 오전 민주당 최고위원회 모두발언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성희롱 등에 관한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피해자와 가족들께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 여러분께도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이 대표의 사과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직권조사해 온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5일 전원위원회에서 "박 전 시장이 업무와 관련해 피해자에게 행한 성적 언동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대표는 "피해자가 2차 피해 없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저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겠다"며 "성평등 문화가 되고 일상이 될 때까지 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와 교육연수원을 중심으로 성평등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겠다. 윤리감찰단과 윤리 신고센터, 젠더폭력신고상담센터를 통해 당내 성 비위를 철저히 감시·차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최고위원회 후 브리핑에서 당이 박 전 장관의 성추행 피해자에 2차 가해를 조장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우리는 사과와 반성 속에서 저희들이 내놓은 대안을 실천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최 수석대변인은 "오늘 회의에서 수석대변인으로서 내시반청(內視反聽)과 조고각하(照顧脚下)란 사자성어를 썼다"며 "내시반청은 남을 탓하기 보다는 먼저 스스로를 성찰하고 남의 충고와 의견을 경청한다는 뜻이며 조고각하는 자기 발 밑을 잘 보라는 뜻이다. 앞으로 내시반청과 조고각하의 자세로 늘 반성하면서 저희들의 대책을 꾸준히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반성·성찰 절실' 여성 의원 중심으로 자성 촉구 확대

여성 운동가 출신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6일 김종철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에 대한 민주당의 행동에 깊은 유감을 나타냈다. /사진=뉴스1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 성추행 사건' 이후 민주당 여성 의원을 중심으로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쏟아져 나왔다. 정의당 사태를 논하기에 앞서 민주당의 대응부터 되돌아봐야 한다는 자성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여당 간사인 권인숙 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은 지난 2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정의당 대표 성추행 사건에 대한 민주당 입장문을 비판하며 "너무나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적었다. 그는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서 구태의연함이 아니라 반성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을 역임한 권 의원은 "민주당도 같은 문제와 과제를 안고 있는데 '충격과 경악'이라며 남이 겪은 문제인 듯 타자화하는 태도가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며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의 논평을 강력 비판했다. 전날 김종철 전 대표 사건과 관련해 민주당이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란 입장을 내놓은 데 대한 문제제기다.

원내지도부인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같은당 이소영 의원(의왕과천)도 원내대책회의 공개 발언을 통해 "우리 중 누구도 이 문제를 성찰하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반성했다. 이 의원은 "이번 사건을 비롯해 우리가 아프고 괴롭게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정치권 내 성폭력에 대해 자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 당시 인권위의 최고위원이었던 남인순 의원은 인권위의 직권조사 결과가 발표된 지난 25일 입장문을 통해 "피해자와 여성인권 운동에 헌신해 온 단체와 성희롱·성차별에 맞서 싸워 온 2030 세대를 비롯한 모든 여성들에게 상처를 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라고 말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당시 인권위의 최고위원이었던 남인순 의원이 "모든 여성들에게 상처를 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사진=뉴스1
지난해 말 검찰 발표에 따르면 남 의원은 사건 발생 당시인 지난해 7월 평소 친분이 있던 시민단체 공동대표를 통해 박 시장의 피소 가능성을 전해들었고 보좌진 출신인 임순영 당시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불미스러운 얘기가 도는 것 같은데 무슨 일 있느냐'고 언급했다. 남 의원은 이해찬 대표 체제 최고위에서 '피해호소인' 단어 사용을 주도한 것으로도 알려져 야당과 여성 시민단체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남 의원은 이날 "국가인권위 직권조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인권위의 권고사항 등이 충실히 이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피해호소인' 단어 사용과 관련해서는 "정치권이 피해자의 피해를 부정하는 듯한 오해와 불신을 낳게 했다"며 "저의 짧은 생각으로 피해자가 더 큰 상처를 입게 됐다"고 사과했다.

신영대 민주당 대변인도 공식 논평을 통해 "인권위의 결과를 존중하며 피해자와 서울시민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도 "조사 결과를 존중하고 무겁게 받아들인다. 통렬히 반성하고 각성의 계기로 삼겠다"라고 입장문을 냈다.

지도부에서도 오는 4·7 재보궐선거 입후보자들에 대한 성평등 교육 강화를 당부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후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중앙당 교육연수원 발대식에서 "4월7일 서울과 부산을 비롯해 상당수 지역에서 재보선이 있다"며 "입후보자에 대한 성평등 교육을 충실히 잘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