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춘 후원회장을 맡은 문정수 전 부산시장./사진=박비주안 기자
지난 30일 김영춘 후보의 유세행렬 속에서 문정수 전 부산시장이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문정수 전 부산시장은 김영삼 민주센터의 상임이사를 지낼만큼 최측근 YS맨으로 불렸다.

문 전 시장은 “YS는 부산 발전을 위해 수영비행장과 하야리야 부대를 이전시켜 오늘의 센텀시티와 시민공원을 만들어 낸 부산의 개척자”라면서 “광안대교를 계획하고 북항재개발을 염두에 두고 가덕 신항만을 만들어 낸, 부산의 미래를 꿈꾼 사람”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부산을 사랑해 부산 정치인을 전국구 정치인으로 키우고자 애썼던 YS가 ‘셋째 아들’이라 부르며 아꼈던 사나이를 지지한다”며 “상도동 집 외에 평생 아파트 하나, 땅 한 평 구입한 적 없이 청렴했던 YS, 그의 막내비서 김영춘을 응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30일 오후 용호동 메트로시티 앞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박재호(부산 남구을) 의원의 거리 유세가 진행되고 있었다. 박 의원은 “김영춘 후보는 YS가 20대때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할 정도로 가장 총애한 친구였다”면서 “그 후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하고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평가 1등 한 해수부장관으로 부산을 대표하는 세 분의 대통령께서 가장 총애하셨던 후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알려진대로 김 후보와 YS는 민정당사 점거농성 사건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다. 1984년 11월 고려대 총학생회장 시절 민정당사 점거농성의 배후로 김 후보가 구속되고 이듬 해 치러진 12대 총선에서 신민당이 승리하면서 김 후보가 사면됐다. YS가 구속된 대학생들이 12대 총선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는 고마움을 표하면서 첫 만남을 가지게 됐다.

이후 김 후보는 캐비닛 공장 위장취업을 하며 1년 가까이 노동운동을 하다 1986년 말, 노동운동에 한계를 느껴 직선제 개헌투쟁을 해야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상도동을 찾는다. 그렇게 김 후보는 26살의 나이로 YS의 막내비서가 됐다.


1988년 YS는 김 후보에게 4월 총선 출마를 권유하지만 김 후보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이후 1990년 1월 YS가 노태우의 민정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손을 잡는 3당 합당을 선언하자 YS와 다른 길을 가게 됐다.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의 당대표가 됐지만 공화·민정계가 80%이상으로 구성된 당 안에서 대통령 후보로서 입지가 위태로워지자 YS는 김 후보를 불러 함께하자고 청한다. 그 길로 YS의 대선 외곽 조직에 합류한 김 후보는 YS의 문민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거쳐 정무비서관까지 지내게 된다.

민주당 지도부와 광역단체장 사이에 김영춘 후보와 문정수 후원회장./사진=박비주안 기자
이런 인연으로 김영춘 선거캠프에는 YS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제법 보인다. 김 후보의 후원회장이 문정수 전 부산시장인 것 또한 YS를 다시 기억하기에 무리가 없다.

김영춘 캠프에서 만난 한 부산시민은 본인이 YS팬이라 소개하며 “비록 YS가 IMF라는 국가적인 재난 상황으로 저평가 받은 바 있지만, YS는 금융실명제·하나회 척결·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등 투명한 정치를 하고자 노력했던 청렴한 정치인이었다”면서 “그래서 청렴함이 더 큰 쟁점이 된 이번 선거에 YS의 막내 비서를 응원하고자 들르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시민은 “YS가 3당 합당 이전 ‘야도 부산’을 만든 장본인이었는데 부산은 지금 ‘야도 정신’이 희미해졌다”면서 “군사정권으로부터 갖은 탄압을 다 받으면서도 ‘야도 정신’ 하나로 투명한 정치를 하고자 했던 YS였는데 요즘 정치인 중에 YS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일침하기도 했다.

YS의 막내비서이자 ‘셋째 아들’로 불렸던 김영춘이 ‘YS’ 수식어를 다시 달고 4.7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