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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추기경은 마지막 순간까지 염수정 추기경과 주교님들, 사제들에게 미안하다며 겸손과 배려와 인내를 보였다.
염 추기경은 이날 강론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아버지였다면 정진석 추기경은 어머니였다"라고 말했다. "어머니와 같아 따뜻하고, 우리들을 품어주시고, 교회를 위한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정 추기경님은 엄격해 보이셨지만, 소탈하면서 겸손하셨다. 그런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프고 안타깝게 느껴진다"고 애도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에 따르면 정 추기경은 예전부터 전해온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행복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를 마지막 말로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미사는 명동대성당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다.
발명가가 꿈이었던 고인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전쟁은 고인을 과학도에서 사제의 길로 이끌었다. 정 추기경은 생전 가톨릭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피난 과정에서 죽음을 간신히 피하면서 하느님이 나에게 사명을 주셨다"고 밝힌 바 있다.
고인은 휴전 후 대학에 복학하지 않고 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해 1961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그는 마리아 고레티 성녀 시성 20주년인 1970년 국내 최연소 주교로 서품됐으며 28년간 청주교구장을 지내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등을 지냈다.
그는 노환에 따른 대동맥 출혈로 수술 소견을 받았으나 죽음을 잘 준비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연명치료를 받지 않았다. 한때 병세가 호전되기도 했으나 병원 입원 두 달여 만에 세상과 작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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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진 기자
안녕하세요. 동행미디어 시대 김유림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