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구 평등노동자회 정책위원장 겸 노년알바노조 준비위원장이 27일 서울 종로구에서 뉴스1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4.27/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1949년생인 이창순씨는 어렸을 적 '백순'이라고 불렸다. 할머니가 '너는 백살까지 살라'고 해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어릴적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하면서 형편이 어려워지자 창순씨는 상고를 졸업하고서부터 일을 시작했다. 결혼과 임신으로 일터에서 멀어졌다가 남편의 일이 어려워지자 26년 전부터 청소노동자로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남편이 진 빚을 대신 갚고 있는 창순씨는 혹시 모르게 찾아올 질병이 두려워 매달 수입의 상당액을 보험금으로 내고 있다. 보험금만 월 68만원이다. 보험에 기대어 불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창순씨의 상황에서 '백살까지 살아라'라는 할머니의 바람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지난 29일 출범식을 마친 노년아르바이트노동조합 준비위원회가 편찬한 '70대 여성청소노동자 구술기록집'에는 창순씨와 같이 평생을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9명의 준비위 회원들의 인생이 담겼다.

대부분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이들은 10대 혹은 그 이전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고 70세가 넘은 현재도 계속 일을 하고 있다. 평생을 일했음에도 가족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이들은 계속해 일을 한다.


하지만 정년을 넘긴 나이에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20년은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70대에게 일거리는 주는 회사를 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자그마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의 사업장을 찾는다.

노조 준비위원회 출범을 앞둔 지난 27일 뉴스1과 만난 허영구 준비위원장은 노조를 설립을 기획하게 된 첫번째 이유가 이렇게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는 고령의 노동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89년 국책연구기관의 노조위원장을 맡으며 노동운동에 뛰어든 이후 허 위원장은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 민주노총 부위원장, 좌파노동자회 대표 등을 역임했다. 그는 2013년부터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운동을 시작해 '알바연대'를 조직하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청년들을 중심이된 한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이 탄생하게 됐다.

허 위원장은 불안정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작업을 하면서 대학과 병원 등에서 일을 하는 고령의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런데 이들이 정년을 마치고 퇴직을 하면 그나마 기존 직장의 노조가 제공하던 보호막을 잃게 되는 사실을 알게 됐고 고령에도 일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노인들을 위한 노조 설립을 추진해왔다.


그는 인구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일하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노인들을 고용하는 사업주들은 근로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자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 자체를 '시혜'라고 말하며 제대로 된 노동조건을 보장하지 않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또 허 위원장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고령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해 주는 조직도 그동안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빌딩이나 아파트 같은 곳에서 2~3명이 청소, 관리를 하는 노인들이 있는데 용역업체들이 잡비 수준의 임금을 준다"라며 "불리한 계약서를 들이밀어도 사인을 할 수밖에 없고 일을 관두라고 하면 언제든지 관둬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허 위원장은 노조가 처음부터 현재의 불합리함의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투쟁'적인 활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당장 강하게 사업주들을 압박하면 오히려 회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노조는 최저임금 등 기본적인 사항들이 준수될 수 있도록 '호소'하며 공감대를 얻는다는 전략을 세웠다.

더불어 허 위원장은 조합원들의 고용, 임금 등의 생존권의 문제를 뛰어넘어 노년의 생활에 관련한 문제를 다루는 '생활노조'를 구축하는 것이 노조 설립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전했다. 노조를 의지할 곳이 없는 노인들이 생활 속에서 겪는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고 교육적, 문화적 욕구도 해결할 수 있는 공동체로 만들어 이들이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허 위원장은 노인들이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결국 사회 전반적인 이득을 가져다준다고 덧붙였다. 그는 "노인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 되면 이들에게 지불되는 사회적 비용들이 줄어 들게 된다"라며 노인들이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젊은 층들 돌아갈 몫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라고 밝혔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1년~2020년)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 증가율은 연평균 4.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6%)을 훌쩍 뛰어넘어 가장 빠르게 노령화되고 있는 국가로 꼽혔다.

여기에 더 고령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 (가처분 중위 소득 50% 이하 인구, 2018년 기준) 또한 43.4%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또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 발간한 2020 자살예뱅백서에 의하면 한국의 노인 자살자 수는 인구 10만명 당 53.3명(2016년 기준)으로 역시 OECD 1위를 기록했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