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감정평가사가 회원으로 가입된 한국감정평가사협회는 올 3월 17대 양길수 회장의 취임 후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 소속 평가사의 감정평가 경력을 인정하는 내용으로 협회 규정의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부동산원 외 각 법인과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평가사가 반발하고 있다. 과거 부동산원의 감정평가 업무를 금지한 법 취지를 고려할 때 이번 규정 변경은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부동산원 소속 평가사의 퇴직 후 일자리 만들기가 목적이란 게 평가사들의 지적이다. 협회는 왜 부동산원 소속 평가사의 경력 인정을 추진하려는 것일까.
한국부동산원 사옥. /사진제공=한국부동산원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과 감정평가업계의 케케묵은 갈등이 다시 점화되는 분위기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부동산원은 설립 이후 2016년 1월 한국감정원법(현재 한국부동산원법으로 전환) 제정 이전까지 부동산 공시가격 조사와 감정평가 기반 업무를 수행했다. 민간 감정평가사 회원으로 구성된 한국감정평가사협회와 일감 경쟁을 하며 업무 영역 문제로 충돌해왔다.
이에 감정평가 기능을 제외하고 부동산 시장을 관리하는 공적 기능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현재에 이르렀다. 부동산원은 부동산 공시가격·거래가격 등 통계·조사 업무를 강화하고 감정평가 타당성 조사와 보상·담보 평가서 검토 등 감정평가 적정성 유지를 위한 업무도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
양길수 한국감정평가사협회장은 3월 취임 후 한달 만인 4월 한국부동산원과 ‘상호발전 및 상생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부동산 분야에서 전문성을 지닌 두 민·관이 문재인 정부의 공시가격 정상화 정책 등을 위해 손잡고 공정성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당시 양 회장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협력하고 국민 재산권과 부동산 소비자 보호에 앞장서겠다”며 뜻을 모았다. 손태락 한국부동산원장도 “부동산 시장에서 공공과 민간이 협력한 모범적 모델로 발전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약속이 무색하게 업계 일각에선 여전히 한국부동산원의 감정평가서 타당성 조사에 전문성이 결여됐다는 등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갈등에 불을 지핀 건 한국부동산원 소속 평가사의 경력 인정 문제다. 양 회장이 나서 한국부동산원 평가사의 경력을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소속 회원은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국부동산원-한국감정평가사협회 상호발전 및 상생협력을 위한 업무협약 체결. /사진제공=한국부동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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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평사-부동산원 이권 다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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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25일 열린 감정평가사협회 이사회에서 양 회장은 “한국부동산원 소속 평가사에게 2016년 9월1일 이후 감정평가 경력을 인정해 주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평가사는 법적 감정 업무와 관련 없는 일을 한 한국부동산원 소속 평가사가 경력을 인정받는 게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한 감정평가사는 “한국부동산원 소속 평가사가 퇴직 후 일선 업계에서 활동하려는 목적이고 협회장이 국토부 산하 공기업을 편드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부동산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화해 분위기를 조성한 지 한 달 만에 갈등이 생긴 셈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부동산원 지부는 6월7일 성명을 내고 “전임 협회장 시절 극심한 갈등 관계였던 협회가 양길수 회장 취임 후 반목과 대립을 청산하고 상호발전과 상생을 노력하고 있음에도 민·관 협력방안에 편협하고 배타적인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협회 내 일부 세력에 의해 취지가 무색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일각에서 제기된 이권 다툼이란 견해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노조 측은 “한국부동산원과 감정평가업계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형평성과 합리성을 상실한 경력 기준이 장기적으로 업계 발전을 막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질 있는 자격사라면 진입 장벽이 아닌 실력으로 시장에서 공정하고 당당하게 경쟁해야 한다”고 했다.
평가사도 이권 다툼이란 세간의 시각에는 부담을 느끼는 듯한 모습이다. 또 다른 감정평가사는 “한국부동산원이 감정평가 업무를 수행하거나 과거와 같이 유사 감정평가를 해 평가사의 업무 영역을 침해하는 상황이라면 밥그릇 싸움이 맞겠지만 현행법상 한국부동산원은 감정평가를 할 수 없고 정부예산 업무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사 산정’이란 표현으로 바꿔 감정평가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긴 하다”고 덧붙였다.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과 감정평가업계의 갈등이 다시 점화되는 분위기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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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감정평가사 민간화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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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와 감정평가업계 등에 따르면 협회 이사회가 열린 이후 협회 소속 평가사가 국토부 소관부서인 부동산평가과에 서면 질의를 보냈다. 만약 협회가 한국부동산원 소속 평가사의 경력 인정을 양보하지 않으면 국토부가 국가전문자격인 감정평가사들의 자격증을 민간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얘기가 나오자 이에 대한 확인과 항의 차원의 서면 질의였다.
협회 이사인 한 감정평가사는 “평가사 자격사 민간화를 추진하는데 이를 막으려면 한국부동산원 소속 평가사의 경력 인정을 양보해야 한다는 국토부의 의사가 협회장을 통해 전달됐다”며 “그동안 한국부동산원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온 사안인 만큼 국토부가 산하 공기업의 편을 들어 실제 추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음알음 듣긴 했지만 공식적으로 들은 것은 처음이라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협회장도 평가사여서 본인의 의견은 당연히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며 “평가사는 감정평가제도를 통해 세금을 걷는, 국가에 도움이 되는 업무를 하는 만큼 민간 자격사로의 전환은 당연히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평가사 민간화를 검토한 적 없으며 앞으로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부인했고 양 회장 역시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해명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협회와 한국부동산원이 평가사 경력 기준을 놓고 대립하는 한 불씨는 살아있다는 게 협회 소속 회원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