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 반월시화공단 내 한 공장의 모습(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 뉴스1 조현기 기자

(서울=뉴스1) 김도엽 기자,조현기 기자 = "주 52시간 지키면 사장님이 좋게 보겠나?"

지난 23일 경기도 안산 반월시화공단에 있는 한 플라스틱 제조업체 노동자가 한숨을 쉬며 한 말이다. 3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이곳은 별도로 회사 내 '출퇴근 시각'을 기록하는 시스템이 없다.


출근 시각은 대체로 비슷하지만, 발주량에 따라 그때 마다 퇴근 시간이 다르다는 이곳은 주 52시간 제도 시행에 대해 "현실을 모르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영진과 노동자 모두 회사의 사활이 걸린 발주를 놓고, 52시간을 지키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다면 회사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다음달 1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 대상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한다.


앞서 2018년 3월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정부는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 연장 근로시간은 1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이후 7월부터 300인 이상 기업에 본격 도입한 뒤, 50~299인 기업의 경우 1년 계도 기간을 준 후 시행했으며, 다음달부터 5~49인 기업에도 도입한다.

중소기업들은 사면초가인 상황이다. 주 52시간제를 지키려면 직원을 추가 채용하거나 줄여야 한다. 다만 추가 채용에 따른 인건비 상승은 결국 장기적인 회사 유지에 애로를 주고, 직원들에 딸린 가족들을 생각하면 구조조정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주 52시간제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면서도 지켜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본인의 생존 뿐만 아닌 회사의 생존 문제도 걸려있는 영세한 사업장이 많아 법을 어기면서 계속 일할 수 밖에 없다는 토로도 나온다.

본인을 '자발적 노예'라며 웃으며 말한 30대 남성 노동자 A씨는 "52시간의 취지를 모르지 않지만, 원청으로부터 받은 급한 발주를 제날짜에 맞추지 못하면 매출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회사가 커서 공과 사가 구분되는 곳이면 모르겠으나 여기는 같이 먹고 살아야 할 문제로 느끼기 때문에 서로 양해하는 분위기다"라고 했다.


인근 아크릴 공장 노동자 B씨도 "주 52시간 잘 지켜지겠어요? 주위 사람들 주 52시간 제도 자체도 잘 모르고, 직원들도 대부분 느낄 건데 솔직히 (52시간제에) 맞춰서 일하면 중소기업은 일이 안된다"라며 "의미 없는 것을 시키려는 듯한 느낌이 강하고 제도 자체에 대한 인지도 덜 돼있다"라고 했다.

반도체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C씨도 "언론에서 말 많이 나오지만 대기업에서 일 떨어지면 어떻게 하겠나"라며 "회사 생존이 걸렸는데 별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없고, 그저 법 어기고 계속하는 것 밖에 답이 없다"라고 했다.

생산·제조직뿐만 아니라 사무직도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오히려 '눈치만 보고' 말을 꺼내지도 못하는 쪽은 노동직보다는 사무직이란 토로다.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D씨는 "사장이 분명 주 52시간제를 인지하고 있으나 직원들은 눈치만 보고 서로 말을 못하고 있다"며 "생산직은 주 52시간제를 들고 공장장이나 생산라인 리더가 주도하면 파업 등으로 동요 움직임이라도 보일 수 있는데, 사무직은 결국 유야무야 넘어가는 모양새다"라고 했다.

현장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E씨(26·남)는 "군대식 문화 때문에 52시간은 말해볼 생각도 못하며 출퇴근 시간도 안찍는다"라며 "노동직은 새벽 6시30분 출근해서 밤 8시 전후 주 5~6일 일하고 그 와중에 사무직에선 차장 4시 퇴근, 과장 5시 퇴근, 막내들은 야근하니 '공정 문제' 소리도 나온다"라고 했다.

경기도 안산 반월시화공단 내 공장의 모습. © 뉴스1 조현기 기자

고용노동부는 주 52시간제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현행 2주→6개월),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 확대 등 보완제도를 마련했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일부 사업체를 제외하고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는 분위기로, 주 52시간제 도입을 위해선 회사를 나갈 각오로 싸워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건설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 F씨는 "탄력근로제도 일을 쉴 때와 안 쉴 때가 분명히 구분돼야 쉽게 적용할 수 있는데, 여기는 기본 발주가 있고 추가 발주에 따라 근로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느 때 많이 일했다고 해서 다른 때 적게 일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핀테크 스타트업 G대표는 "200명 넘는 회사도 아니고 스타트업에서는 CEO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초창기 멤버인 경우가 많은데 본인들이 일군 회사를 52시간 맞춰 일하기 시작하면 성장은 언제 하나"라며 "예컨데 추후 스톡옵션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곳도 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추가 근무를 하는 직원도 있다"고 했다.

다른 핀테크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H씨는 "스타트업은 부서에 담당자가 1~2명이고 그 중 1명이 팀장인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어 서버가 터져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해야 할 때가 있으면 2명 모두 야근해도 다음날 하루 쉴 순 없는 노릇"이라며 "회사 복지가 늘어나는 것을 누가 반대하겠냐만, 초창기 회사들은 CEO와도 서로 양해하며 할 수도 있는 걸 (정부가) 너무 강제하는 측면이 있지 않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본부장은 "열처리 주물 등 뿌리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가 아무리 채용 공고를 내더라도 사람이 안 오는 문제가 있다"며 "52시간제의 취지와 근로 문화 개선의 취지를 모르진 않지만, 일률적으로 시행할 경우 산업 경쟁력과 생태계가 약화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추 본부장은 "전체 기업을 범법자로 만들 것이 아닌, 업종별로 세분화 해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며 "노사가 합의해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게끔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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