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김진 기자 = 잔비가 내리던 6월 마지막주 토요일(25일) 정오 무렵. 서울 종로3가역 주변은 산뜻하게 차려입은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이른바 '핫 플레이스'인 익선동 한옥거리와 낙원동 일대로 향하는 행렬이다.

그들을 등지고 종로3가역 3번 출구로 나와 뒷골목을 따라 좁은 길목으로 들어서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작은 철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활짝 열린 방문들 사이로 점심식사를 하거나 낮잠을 자는 뒷모습이 눈에 띄었다. 50년 역사 돈의동 쪽방촌의 초여름 풍경이다.


후텁지근한 날이었다. 40대와 50대, 60대 거주민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들은 골목 곳곳에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삼삼오오 땀을 식히고 있었다.

주민들은 손이나 신문으로 쉼없이 부채질을 하면서도 27도까지 오른 이날 더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며칠간 쏟아진 국지성 소나기는 "비도 아니다"는 주민도 있었다.


주민들에게 두려운 것은 닷새 앞으로 다가온 7월이다. 다음달 예상되는 열대야와 장마 이야기를 꺼내자 주민들은 일제히 어깨를 들썩이며 몸서리를 쳤다.

60대 여성 A씨는 "6월은 아무것도 아니다. 7월 열대야가 오면 난리가 난다"며 "방들이 작아서 열기가 빨리 안 가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돈의동에서 수십년간 쪽방을 운영하고 있다. 쪽방 한곳당 월 임대료는 24만원이고 규모는 1평(3.3㎡)에 불과하다.

그가 운영하는 쪽방 8곳엔 창문이 없었다. 바깥 공기를 마시려면 밖으로 나오거나 1층 화장실 뒤 창고 창문으로 고개를 빼야 한다.


26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의 한 쪽방 문턱. 낮은 문턱들은 여름 장마철 비를 막기 역부족이다. © News1 김진 기자

A씨는 "우리는 창문이라도 있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여러번 강조했다.

방문을 열면 바로 골목인 1층 쪽방일수록 사정은 더 좋지 않았다. 하루종일 거센 비가 오는 장마철에는 물이 안까지 들이닥쳐 문을 열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1층 쪽방들의 문과 땅바닥 간격은 높지 않았다. 어떤 방은 비스듬히 발린 시멘트가 문턱을 대신했다. 아예 문이 없어 낡은 천을 내건 곳도 있었다.

그나마 배수시설 정비로 환경이 나아졌다는 거주민들은 "가장 무서운 건 열대야"라고 입을 모았다. A씨 옆에 앉아 손부채질을 하던 B씨는 "열대야에 문도 못 열면 견딜 수가 없다"며 "비는 좀 맞으면 된다"고 말했다.

다른 골목에서 만난 60대 C씨는 "그래도 지금은 옷을 입고 있지 않느냐"고 농담을 했다. 날이 더 더워지면 옷을 입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의미다.

돈의동에서 2㎞가량 떨어진 창신동 쪽방촌 거주민들도 7월이 두려운 건 마찬가지다. 화려한 벽화가 들어서 '벽화거리'로도 불렸던 이곳은 쪽방으로 가득 찬 여인숙들이 모인 골목의 끝자락에 자리잡았다.

26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의 한 여인숙. © News1 김진 기자

이곳에서 22년째 살고 있다는 유씨(73)는 "(그나마 지금은) 바람 불어서 시원하니 나와있는 것"이라며 "앞으로는 덥고 눅눅한 게 제일 문제"라고 말했다.

돈의동·창신동 쪽방촌 거주민들은 '무더위 쉼터' 개관만을 기다린다고 했다. 인근 쪽방상담소마다 운영되는 쉼터는 7~8월 폭염 대책 집중기간에 한해 휴일에도 문을 연다. 숨막히는 더위를 피해 마음 놓고 들어갈 수 있는 몇 안되는 장소다.

한 센터 관계자는 "7월부터 쉼터를 운영할 계획"이라며 "(집중기간에는) 온열질환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 당직을 서며 마을 순찰을 하고 건강이 좋지 않은 분들을 매일 방문하고 전화드리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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