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모든 소비 활동은 비용보다 안전이 우선시됐다. 동시에 장기간 억눌려왔던 소비 심리가 분출돼 평소에 쓰지 않던 고가의 물품이나 서비스에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다. 유통업계도 코로나19 이후 변화한 소비 트렌드를 겨냥해 럭셔리 상품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고객들이 샤넬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개장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1
#. 30대 직장인 A씨는 새벽부터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결혼을 약속한 예비 신부에게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 제품을 선물하기 위해서다. 오전 7시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정문에 도착했지만 이미 10여명이 줄을 서 있었다. 백화점 영업 시작 시간인 오전 10시30분까지 버티기 위해선 의자·돗자리·생수 등 준비물도 필수다. A씨는 3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매장에 입성할 수 있었고 미리 점찍어둔 제품 사진을 직원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재고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나마 재고가 있는 상품은 색상이나 크기 등이 A씨가 원하던 모델이 아니었다.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매장에 진열된 제품 중 하나를 고르는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에르메스·루이뷔통·샤넬 등 해외 명품 브랜드 제품은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공급보다 수요가 월등히 높아 연일 재고 부족에 시달리는 형국이다. 매일 입고되는 극소량의 인기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매장으로 질주하는 ‘오픈런’은 필수라는 말까지 나온다. 심지어 구매자 대신 줄을 서주는 알바까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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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플렉스에 백화점 매출 회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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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3사 백화점 합산 매출은 2019년 대비 9.8% 감소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강화되고 매장 방문 고객이 줄어들면서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하지만 명품 소비만큼은 나홀로 상승 곡선을 그렸다. 지난해 백화점 3사 명품 매출은 전년 대비 15.1% 증가했다. 지난해 4월부터 명품 매출이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7월에는 32.5%까지 치솟았다. 해외 여행길이 막힌 상황에서 명품 구매 경로가 백화점에 집중됐다는 분석이다.
최근 백신 접종 증가로 소비 심리가 살아나면서 명품 소비는 더욱 급증하고 있다. 올해 국내 3사 백화점의 명품 매출 증가율은 ▲1월 21.9% ▲2월 45.7% ▲3월 89.0% ▲4월 57.5%로 집계됐다. 명품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백화점 3사의 1분기 실적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30대인 MZ세대(1980~2000년대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Z세대’를 통칭)가 명품 소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MZ세대는 최신 트렌드와 경험을 중시하고 나를 위한 소비를 아끼지 않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자기표현에 거리낌 없는 플렉스 문화가 더해지면서 이들은 명품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전체 명품 매출의 절반 이상을 20~30대가 담당했다. 신세계백화점의 명품 매출에서 20~30대 비중은 2019년 49.3%에서 지난해 50.7%로 증가했다. 현대백화점은 ▲2018년 43.8% ▲2019년 48.6% ▲2020년 65.8%, 롯데백화점은 ▲2018년 38.2% ▲2019년 41.4% ▲2020년 44.9%로 20~30대 명품 매출 비중이 매년 상승했다.
산업연구원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1년 넘게 억눌렸던 소비 심리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며 “젊은 층은 해외여행을 못하면서 발생한 여윳돈을 명품 구매에 사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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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돈내산’·‘플렉스’ 외치는 MZ 명품족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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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업계는 급증하는 명품 수요를 잡기 위해 대대적인 할인 행사에 나서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3월에 이어 6월에도 대규모 명품 할인행사를 열었다. 해외 패션 편집숍 ‘롯데탑스’ 매장 10곳에서 50여개 해외 명품 브랜드를 최대 40% 할인 판매했다. 준비한 물량이 전부 소진됐던 첫 번째 행사의 경험을 살려 이번에는 행사 물량을 10억원 늘린 60억원 규모로 준비해 명품 브랜드 소비자의 호응을 얻었다.
‘대한민국 동행세일’에 맞춘 백화점 업계의 여름 정기세일도 소비자의 발길을 유혹한다. 주요 백화점은 6월24일부터 7월11일까지 코로나19 극복과 내수 진작을 위해 ‘대한민국 동행세일’에 참여하고 있다. 이 기간에 명품 소비가 또다시 폭발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동행세일 기간 백화점 3사 합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 증가했다. 이중 명품 매출 비중은 ▲현대백화점 51.2% ▲신세계백화점 50.5% ▲롯데백화점 47% 순으로 나타났다. 명품이 백화점 매출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국내 소비자 공략을 위해 한국 전용 매장과 상품까지 등장했다.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는 지난 5월 서울 이태원에 단독 매장을 열고 한국에서만 살 수 있는 스페셜 제품을 내놓았다. 단독매장의 명칭은 ‘구찌가옥’이다. 한국의 전통 주거 형태인 가옥을 매장 명칭으로 활용했다. 특별 제품도 매장 이름을 따서 ‘가옥 스토어 익스클루시브’라고 명명했다. 우리 고유의 문화를 현대적 감성으로 풀어낸 구찌의 실험에 MZ세대는 즉각 반응했다.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에 ‘구찌가옥’을 검색하면 MZ세대 이용자의 인증사진이 주를 이룬다.
산업연구원 한 관계자는 “최근 ‘내돈내산’(내 돈을 주고 내가 산 물건)이나 ‘플렉스’ 등으로 표현되는 거침없고 솔직한 소비문화를 지닌 MZ세대가 2025년까지 60% 이상의 명품 시장 기여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한 명품 시장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