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나이에 건설현장 목수로 시작해 굴지의 중견 건설업체를 일궈낸 정창선(79) 중흥그룹 회장이 대우건설 인수·합병(M&A)으로 재계 20위권을 노린다. 대우건설 최대주주 KDB인베스트먼트(KDBI)는 지난 5일 대우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중흥건설을 지정했다. 선정 과정에 입찰가격 할인으로 인한 공정성 논란과 대우건설 해외사업부문 분리매각 우려 등이 제기됐지만 중흥그룹의 자금력과 구체적인 경영계획이 알려지며 이런 문제는 차츰 해소될 것이란 평가다.
문제는 앞으로 진행될 M&A가 최종 거래 성사까지 완료될 수 있는지와 그 이후다. 건설업 환경이 후퇴하는 상황에 두 기업의 결합이 시너지를 내기 어렵고 강성으로 분류되는 민주노총 산하 대우건설 노조의 저항으로 조직 장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시선이 있다. M&A를 주도한 이대현 KDBI 대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최종 계약 완료”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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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억원 깎아주며 붙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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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지난 5일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중흥그룹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매각대금, 거래의 신속성·확실성, 대우건설 성장과 안정적 경영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자회견에선 공정성을 놓고 수많은 의문이 제기됐다.
대우건설은 2000년 대우그룹 해체 후 대부분 시간 동안 KDB산업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공적 관리 대상이었다.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에 한 차례 매각됐지만 이는 대한민국 M&A 역사에서 최대 실패 사례로 꼽힐 정도로 결과가 좋지 않았다. 시공능력평가 1위(2006~2008년)에서 6위(2020년)로 떨어지며 사세가 위축됐고 인수 3년 만인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유동성 위기를 몰고 오며 재매각되는 비운을 맞았다.
2017년엔 호반건설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됐지만 해외 사업장 부실 부담이 커 최종 계약이 결렬됐다. 4년 만에 다시 매각을 진행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얻은 중흥까지 3개 기업이 모두 호남 기반 기업이란 공통점이 있다. 공교롭게 세 차례 M&A가 모두 진보정부에서 추진됐다. 업계 관계자는 “호남 기업 밀어주기라는 세간의 논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에 KDBI는 중흥이 당초 써낸 입찰가의 10%에 달하는 2000억원을 낮춰 2조1000억원에 재입찰하는 조건을 수용했다. KDBI는 당초 대우건설 지분 50.75%의 최저 입찰가로 1조8000억원을 제시했다. 본입찰에서 인수 경쟁자인 DS네트웍스-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은 1조8000억원을 썼고 중흥은 5000억원 높은 2조3000억원을 썼다.
‘승자의 저주’를 우려된 중흥 측은 가격 수정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입찰 안내서의 매수자 권리 사항으로 기재된 부분이고 받아들이는 것 역시 매도인의 선택이자 권리”라고 했다. DS네트웍스 컨소시엄이 법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이상 이 부분에서 논란이 지속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게 투자은행(IB)업계의 시각이다.
그래픽=김영찬 디자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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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 중도 포기 우려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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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다른 데 있다. 호반건설뿐 아니라 지난해 HDC그룹의 아시아나항공 M&A에서 산은은 최종 계약 완료에 실패했다. 이 대표는 이를 의식한 듯 “M&A 타이밍, 건설업 환경의 변화, 가격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계약을 끝까지 완수하겠다는 인수 의지와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며 “호반건설이 당시에 무슨 생각으로 인수에 참여했고 왜 깼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이 대표의 이 같은 우려엔 중흥이 중도에 인수를 포기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렸을 가능성이 있다. KDBI는 계약 이행보증금으로 500억원을 제시했고 계약 파기 시 이를 돌려주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업계 내부에선 중흥이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승자의 저주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분양시장 호황으로 앞으로 2~3년 동안 건설업의 성장이 기대되지만 두 회사가 결합해 주택사업의 시너지를 내기 힘들고 해외사업 등은 환경이 날로 나빠지고 있다”며 “노조 중심의 텃세가 강하고 조직 장악이 쉽지 않은 특성이 있어 합병 이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중흥의 지배구조도 문제다. 현재 중흥그룹은 중흥건설과 중흥토건을 중심으로 계열사가 37개다. 정 회장의 장남 정원주 중흥건설 부회장과 차남 정원철 시티건설 회장이 가업을 잇고 있다. 중흥건설은 정 회장의 지분율이 76.7%로 가장 높고 정원주 부회장이 10.9%를 소유했다. 정 부회장은 주요 계열사인 중흥토건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서 중흥그룹은 내부거래 비중이 27.4%로 60개 기업집단 가운데 두 번째로 높았다.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따르면 중흥그룹 자산총액은 9조2070억원으로 재계 47위다.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중흥토건 15위, 중흥건설 35위다. 대우건설 인수가 확정된다면 중흥그룹의 자산총액은 19조540억원으로 재계 서열 20위 안팎이 될 전망이다. 시공능력평가액은 단순 합산 시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에 이어 3위다. 이때 복잡하게 얽힌 지배구조를 해소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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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의 추종 불허하는 자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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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려움에도 중흥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데 긍정적인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흥건설은 대우건설과의 합병으로 그동안 취약했던 해외사업과 건축·토목·플랜트 사업부문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대우건설은 현재 수주잔액 39조원 가운데 해외 수주액이 8조원에 달한다.
베트남 신도시 건설사업을 비롯해 나이지리아·이라크·모잠비크 등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호남을 기반으로 성장한 주택사업도 서울 강남 등으로 확장할 수 있을 전망이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매출 8조1367억원과 영업이익 5583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중흥의 자금력도 내세울 만한 조건이다. 올 초 공시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흥토건과 중흥건설의 유동자산은 각각 2조3997억원과 4631억원이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각각 4962억원과 1371억원이다. 중흥그룹 관계자는 “단기금융상품을 통해 일부 자금 차입이 이뤄졌지만 앞으로 2~3년 안에 현금흐름으로 상환 가능해 사실상 외부 차입 없는 인수”라고 밝혔다.
대우건설 관계자도 “일각에선 시너지 등에 대해 우려하는 게 사실이지만 금호 때와 다르게 무리한 차입을 하거나 재무적 투자자(FI)를 끌어들이지 않은 건 긍정적인 요소”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