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인가 브로커인가'…부정청탁 처벌 언론인 비리백태
판결문 12건에 민낯…유리한 기사 빌미 법인카드 받기도
누범기간에 범죄 저지르고도 반성의 기색 없는 언론인도
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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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피고인은 자기합리화로 일관하며 무거운 죄책에 대한 진지한 반성의 빛을 찾기 어렵다. 다만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해 약식명령의 형보다 중한 종류의 형을 선고할 수 없음으로 주문과 같은 벌금형을 선고한다."
지난해 8월12일 '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언론인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1단독 노유경 판사는 약식기소된 사건이 정식재판으로 넘어온 사례라 피고인의 죄질에 비해 낮은 형량을 선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판결문에 남겼다.
언론사 부사장이자 기자인 M씨는 지난 2018년 6월 전주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페인트 도색 공사를 하청받은 모업체에 아파트 1세대당 1만원씩, 980만원 가량의 수고비를 주면 회사를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해 주겠다고 접근했다. 그는 '공사 현장에 후배 기자들을 시켜 확인해 보니 페인트가 날린다'라며 업체를 위협하는 언행을 하기도 했다.
이후 2018년 9월 실제 아파트 공사 현장에 비판적인 취지로 취재를 하는 기자들이 나타났고 M씨는 해당 기자들을 만나 170만원을 주고 취재를 무마한 뒤 업체에게 수고비 지급을 요구했다. 청탁금지법에서는 돈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요구하는 것 또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법정에 서게 됐다.
지난 2016년 9월 이후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M씨의 사례처럼 언론인들이 개인, 기업, 단체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거나 요구하는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100억원대 사기로 구속 기소된 '가짜 수산업자' 김모씨(43)가 사회 전방위적으로 로비를 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씨에게 금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언론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까지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번 사건과 연루된 언론인들은 수백만원 상당의 골프채나 중고차 등을 김씨로부터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탁금지법상 언론인은 1회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거나 요구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지난 5년간 12건, 언론인 17명 청탁금지법으로 처벌 실형은 1명뿐
뉴스1은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현재까지 실제 관련법 위반으로 처벌된 사례 12건을 확인했다. 대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서비스를 통해 검색한 결과 지난 5년간 12건의 사건에서 17명의 언론인이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다. 이 중에는 일선 기자뿐 아니라 언론사 대표, 편집국장 등의 직위를 맡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처벌을 받은 대부분의 언론인들은 특정 기업이나 기관에 유리한 기사를 써주거나 불리한 기사를 쓰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금품을 받았다. 금품 대신 여행이나 연수 경비를 제공받는 사례도 발견됐다.
17명은 모두 유죄를 인정받아 처벌을 받았지만 최종적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은 1명이었고 9명은 집행유예, 7명은 벌금형에 그쳤다.
한 예로 전주시의 지역 일간지 정치부장이었던 E씨의 경우에는 치과 치료를 받은 뒤 문제가 있어 의료 분쟁을 겪고 있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이를 해결해 주겠다고 나서 해결 비용 300만원 중 선금으로 15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 이행을 선고받았다.
E씨는 의료분쟁 당사자에게 '내가 언론사 기자인데 의료사고를 신문에 내주고 형사고소를 도와줘서 해결해 주겠다. 그러려면 300만원이 필요한데. 150만원은 선금으로 나머지 150만원은 사건이 잘 해결되면 후불로 달라'라며 자신의 기자 신분을 이용해 금품을 받아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한 금액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심지어 E씨는 이 사건 이전에도 기자의 지위를 이용한 공갈 범행으로 2회에 걸쳐 집행유예로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사건을 담당한 전주지법 형사4단독 노종찬 판사는 "피고인의 행위는 공정성을 요체로 하는 언론인의 윤리를 저버리고 사회적 공기인 언론을 사적 이익을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차, 집 사는데 돈 달라…아예 법인카드 받아 쓴 경우도
경북 구미시에서 언론사 대표 겸 기자로 일을 하던 P씨의 경우 폐기물처리업자들로부터 자동차 구입비 명목으로 700만원을 수수하고 이후에도 집 구입비, 찬조금 명목으로 5000만원을 요구한 혐의로 지난해 8월 대구지법 의성지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120시간 사회봉사 이행, 700만원 추징을 선고받았다 .
P씨에게 700만원을 지급한 폐기물처리업자는 법정에서 'P씨의 차량이 낡고 좁아 보여 P씨에게 체형에 맞는 차량을 구입할 것을 권했는데 P씨가 자신이 봐둔 외제차가 있는데 구입비가 부족하다면서 1000만원을 요구했다'라며 P씨가 폐기물처리업체 관련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여 준다는 등의 발언을 하면서 돈을 요구했기 때문에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3회에 걸쳐 700만원을 송금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더해 P씨는 자신의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게 되자 타 사단법인에서 발행받은 기자 신분증의 유효기간이 지났음에도 이를 칼로 긁어 지우는 방식으로 변조해 검찰 수사관에게 제출했고 이 사실이 들통나 사문서변조 및 변조사문서행사 혐의로도 함께 처벌받게 됐다.
기업이 기자에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사를 써달라며 아예 법인카드를 지급한 사례도 있었다. 언론사의 지역 주재기자로 충남 당진시에서 활동하던 K씨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사를 써달라는 기업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해당 기업으로부터 법인카드를 지급받았다.
이 기업은 당진시청으로부터 바다모래채취를 위해 보유하고 있던 공유수면점용허가 연장을 불허받을 것으로 예상되자 '공유수면점용 허가가 연장되지 않으면 지역 경제가 큰 타격을 입는다. 따라서 허가 연장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써줄 것을 K씨에게 요구했다.
K씨는 기업의 요구를 받아주는 대가로 받은 법인카드를 2016년 3월부터 2018년 4월까지 403회에 걸쳐 사용했으며 그 금액도 1400만원대에 달했다.
◇"방송 나가려면 1억원 필요…기자들한테 술도 사야하고"
기자가 아님에도 방송 보도를 약속하고 돈을 받은 언론사 직원도 있었다. 방송사에서 스튜디오 카메라 관련 업무를 하는 R씨는 지인으로부터 민원을 듣고 회사 내 기자에게 이를 취재해 보도하게 하는 대가로 5차례에 걸쳐 총 6500만원의 금품을 받아 지난해 9월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R씨는 지난 2017년 7월 상가 통행권 문제로 다툼을 벌이고 있는 지인이 관련한 보도를 해 줄 것을 요청하자 처음 '방송에 내보내려면 1억원 정도가 필요하다'며 금품을 요구했고 이후 자신의 회사 기자를 통해 해당 내용이 방송에 보도되게 되자 지인으로부터 500만원씩 두차례에 걸쳐 모두 1000만원의 금품을 수령했다.
방송 후에 지인이 '내가 원하지 않는 내용으로 방송이 되었다'고 항의하자 R씨는 '다음에 제대로 된 방송을 해주겠다'며 '기자들에게 술도 사야 하고 하니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해 2017년 9월 다시 2회에 걸쳐 5000만원을 입금 받았다.
두 달 뒤인 2017년 11월 R씨는 '정권이 바뀌고 회사가 적폐 대상이 되면서 방송을 내보내기 쉽지 않다'며 다른 언론사를 알아봐 준다는 명목으로 같은 지인에게 500만원을 추가로 수수했다. 당시 R씨는 언론 보도 업무를 맡고 있지도 않았고 기자에게 취잿거리를 제공하는 차원에 불과했지만 자신이 마치 보도를 결정할 수 있는 것처럼 행사한 것이다.
한편, 언론인들이 부정청탁 사건에 대해 유무죄를 따지기 전에 언론인으로서의 윤리 의식을 되찾아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3항은 "취재 보도의 과정에서 기자의 신분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지 않으며 취재원으로부터 제공되는 사적인 특혜나 편의를 거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최근 가짜 수산업자 김모씨의 사건으로 언론인들의 비위 의혹이 제기되자 "권력을 감시하고 부정부패 고발에 앞장서야 할 언론이 정치 권력 등과 연결돼 사업가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 받은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언론인 청탁금지법 위반 사건 관련 판결문>
아래 사건 번호를 클릭하시면 위에 표로 정리한 사건의 판결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1심 판결문만 첨부하였으며 상급심 판결이 변경된 건에 대해서만 상급심 판결문을 첨부했습니다.
1. 전주지방법원 2018고단139
1-1. 전주지방법원 2018노613
2.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원 2018고합1
3. 광주지방법원 2018고단533
3-1. 광주지방법원 2018노2163
4. 전주지방법원 2018고단637
5. 전주지방법원 2018고단887
5-1. 전주지방법원 2018노1158
6. 전주지방법원 2019고단1464
7.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2018고단1295
8. 전주지방법원 남원지원 2018고단284
9.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2020고정64
10. 울산지방법원 2019고단38
11. 대구지장법원 의성지원 2020고합6
12.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20고단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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