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응익 씨가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앞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 형사처벌 및 책임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1.8.17/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서울=뉴스1) 김진 기자 = "왜 우리나라는 정부가 있는데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외면만 합니까.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아신다면 이렇게 방치하지는 않을 겁니다. 피해자들을 언제까지 길거리로 내보낼 것입니까."

경기 포천시에서 온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김응익씨가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앞에서 상의를 벗으며 외쳤다. 지난해 폐이식 수술로 생긴 흉곽을 가로지르는 절개선 흉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씨는 심장과 신장에 생긴 합병증으로 병상에 있어야 했지만 입원 일정을 미루고 기자회견에 나섰다.


23일에는 GS리테일의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사용하다 천식과 전신피부질환이 생긴 김종제(59)씨가 전화 연결을 통해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25일에는 옥시레킷벤키저 제품을 사용하다 2차례 폐이식 수술을 받고 합병증으로 목소리를 잃은 배구선수 출신 안은주(53)씨가 병상에서 필담 인터뷰를 진행했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피해자들이 직접 나선 이유는 오는 31일 가습기살균제 참사 공론화 10년을 앞두고도 배상과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1년 8월31일 정부가 매년 반복됐던 원인미상 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살균제라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국정감사와 청문회 등을 거쳐 피해구제특별법이 마련됐지만 배·보상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로 폐이식 수술은 받은 안은주씨.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 뉴스1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에 따르면 지난 8월20일 기준 신청자는 7535명(철회자 포함·1687명 사망)이다. 피해구제 인정 받은 피해자는 4120명(1018명 사망)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기업의 배·보상을 받은 피해자는 700여명에 그친다. 이마저도 공개 자료가 없는 추산치로, 특별법 개정 전 폐손상 1·2단계 판정자에 대해서만 배·보상이 이뤄졌다. 피해자 대다수에 해당하는 3·4단계 판정자와 법 개정 이후 피해를 인정받은 이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지난 1월 가습기살균제 제품 제조·유통사인 SK케미칼과 애경, 이마트가 1심 판결에서 무죄를 받으면서 피해자들은 법적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마저 꺾였다.

이에 일부 피해자 단체들은 공론화 10년을 맞아 더 이상 배·보상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며 협상을 준비 중이다. 이들이 꼽은 대상은 정부가 분담금을 부과했던 18개사다. 단체들은 외부 전문인력이 참여하는 조정위원회를 꾸려 관련 논의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기업들의 참여율은 저조하다. 18개 기업 중 절반에 못미치는 6개 기업(옥시·SK케미칼·이마트·애경·홈플러스·롯데마트)만 참여 의사를 밝혔다. LG생활건강·GS리테일 등은 불참 의사를 밝히거나 침묵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진행 중인 재판 결과를 기다리거나, 다른 기업들의 참여도를 보고 결정한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특히 LG생활건강은 옥시·애경에 이어 전체 가습기살균제 제품 판매량 3위 기업이다. 이곳이 불참할 경우 다른 기업들마저 더욱 논의에 소극적으로 변해 조정위 출범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나서 기업의 참여를 독려하고 중재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환경부와 국무총리실, 국회를 향한 의견서 제출도 진행 중이다. 한 피해자 유족은 통화에서 "조정위는 법적효력이 없어서 정부의 도움이 더욱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기업이 원하는 방식의 배·보상으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LG생활건강 본사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10주기 관련 LG생활건강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2021.8.24/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한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오는 31일까지 배·보상을 촉구하는 집중행동에 나선다. 29일에는 10년 간 발생한 10대 사건을 선정해 공개하고, 30일 11개 가해기업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동시다발 1인시위와 SK서린빌딩 앞 사망자 추모 촛불 1인시위를 각각 진행한다. 31일에는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사망자 유품 100여점을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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