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 반도체사 직원들이 연구하고 있는 모습. /사진=로이터

◆기사 게재 순서
①공급망 주도권 전쟁에 韓기업 비상
②리쇼어링 기업, 美 1300개 vs 韓 20개… “우호적 경영환경 필요”

세계 주요 국가들이 자국 중심의 반도체·배터리 가치사슬 구축을 꾀하고 있다. 미·중 패권 다툼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공급망 단절을 경험하면서 기존 전문화·분업화 구조에서 자립 구조로 변화를 선언한 것이다. 각국은 대규모 투자와 세제 혜택을 늘리며 자국 내 주요 제조시설 확대에 나서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R&D(연구·개발) 투자로 비교우위 분야의 초격차를 유지하고 각국의 공급망 재편을 통해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너도나도 ‘반도체 자립’ 선언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50.8%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한국은 18.4%로 그 뒤를 이었고 유럽 9.2%, 일본 9.2%, 대만 6.9%, 중국 4.8% 순이다. 자국 내 반도체 제조시설 점유율에선 순위가 뒤바뀐다. 미국의 자국 내 반도체 생산 비중은 13%에 그친다. 대만은 20%로 1위이며 한국(19%), 일본(17%), 중국(16%), 유럽(9%)이 뒤를 잇는다.

반도체 공급망은 디자인(팹리스)→제조(파운드리)→후공정(조립·테스트·패키징)→소재→제조장비로 나뉜다. 미국은 자신들이 설계한 반도체의 제조를 아시아 지역에서 진행했다. 미국이 제조와 후공정, 소재 분야에서 약점을 보이는 이유다. 미국의 첨단 연산가능(로직) 칩 제조는 대만에, 성숙 공정 칩은 대만·한국·중국에 집중돼 있다. 후공정 시설도 아시아에 몰려있다. 

중국은 반도체 수요기업들이 몰린 데다 인건비가 낮아 미국 등 반도체 기업들의 진출이 줄을 잇는 곳이다. 최근 미국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 중심 공급망 구축에 속도를 낸 건 글로벌 반도체 수급 부족 사태 때문이다. 무역전쟁에서 시작된 미·중 갈등이 반도체 기술 패권 경쟁으로 번진 영향도 크다. 파운드리 시장의 80%를 점유하는 대만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밀접해 미국의 반도체 기술이 유출될 우려도 있다. 

미국은 앞으로 8년 동안 반도체 산업 육성에 57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반도체 제조 시설 건설에도 자금이 집중적으로 투입될 전망이다. 반도체 설비투자엔 최대 40%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 시 최대 3조5000억원의 연방 보조금도 지급한다. 

삼성전자는 20조원 규모의 미국 현지 파운드리 투자를 결정했는데 각 주에서 삼성에게 파격적인 세금 혜택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반도체기술센터를 통해선 차세대 반도체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2025년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15년부터 2025년까지 반도체 산업에 170조원을 쏟아붓기로 했다. 같은 기간 지방정부 보조금도 169조원을 편성했다. 각종 지원 펀드 설립을 통해서도 투자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설계와 핵심 장비 기술, 첨단 메모리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신산업실 전문연구위원은 “중국은 반도체 핵심 장비의 해외 의존도가 높고 제조분야 기술력이 낮다”며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등이 핵심 장비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미국의 견제로 들여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미세공정에 나선 자국 기업들에 최대 10년까지 법인세를 면제하고 수입 관세를 낮춰주고 있다. 성 별로도 임대료 감면과 세금 환급 등 기업 유치 인센티브를 제시하고 있다. 

EU(유럽연합)는 ‘반도체 자립’을 선포했다. 투자 규모는 67조원으로 앞으로 10년 안에 자국 내 생산비중을 기존 9%에서 20%대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EU는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하는 금액의 20~40%를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해외기업 유치·원자재 확보 경쟁 가열

전기차 배터리 수급 능력이 세계 경제 패권 경쟁에서 중요 요소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관련 공급망 확보도 치열해졌다. 중국은 신소재 발굴과 핵심 부품 국산화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 글로벌 점유율 1위 입지를 공고히 한다는 의지다. 중국 배터리사들은 해외 자원개발에 적극 나서며 원자재를 전략 물자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배터리의 주원료인 리튬과 코발트 정제·가공 시장에서 각각 60%, 72%를 차지한다. 최근엔 리튬보다 원료 가격이 훨씬 저렴한 나트륨이온 배터리 개발에도 나섰다. 현재 kWh(키로와트시)당 1050위안(약 19만원)인 전기차 배터리 가격을 2035년 500위안(약 9만원)으로 낮춰 ‘반값 배터리’ 실현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자국 배터리 탑재 차량엔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2030년까지 미국 신차 판매 절반을 친환경차로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현지 기업이 없다. 배터리 시장은 한·중·일이 일찌감치 선점했다. 전기차 배터리는 1조원 이상의 대규모 자본과 축적된 기술이 요구되는 만큼 당분간 해외 기업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에 있는 백악관에서 반도체 칩을 들고 연설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이에 따라 미국은 각종 세액공제와 보조금을 통해 해외 기업 유치에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스텔란티스와, SK온은 포드,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미국에 배터리 합작공장을 건설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미국은 2030년까지 194조원을 투입해 배터리 원료생산과 원료 정제·가공 등 분야의 공급망 구축에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EU는 배터리 산업에 8조원을 투자하면서 배터리 산업을 주도하는 한국을 견제할 것으로 보인다. 헝가리의 경우 투자액의 최대 50%를 현금으로 돌려주고 고용 인원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EU는 친환경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지만 원자재와 생산 역량 모두 떨어져 공급망 구축에 가장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들은 경쟁과 협력 전략을 병행해 공급망 재편 흐름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준 산업연구원 산업정책연구본부장은 “주요 국가가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반도체·배터리 제조 역량을 확보할 경우 국내 기업의 위상 약화는 불가피하다”며 “적극적 현지 투자 전략과 전략적 공동 R&D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고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한국이 주도할 역할을 고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경제실 부연구위원은 “상대적으로 외국인투자심사제도가 느슨한 한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M&A(인수·합병) 시도가 늘어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관련 법·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