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업체가 30가구 이상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선분양할 때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보증상품 운영·판매시장에 민간 주택건설업체가 진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기사 게재 순서
(1) "플레이어가 심판 보겠다"… 분양보증 문 두드린 주택업체 의도는?
(2) 계약자 재산권 보호 '공적 영역'… 정부 "공공성 약화 우려"
(3) 제3의 경제위기 경고음… 분양보증 개방 타이밍 적절한가


중소·중견업체 회원들로 구성된 대한주택건설협회(이하 '주건협')가 공공기관 독점인 분양보증시장에 발을 담그려 하고 있다. 분양보증은 국내 건설업체가 30가구 이상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선분양할 때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보증상품이다. 계약자로부터 분양대금을 받아 공사를 진행하는 선분양의 특성상 미분양이 발생하거나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길 경우 중도 파산과 함께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중소·중견업체일수록 리스크 관리가 더욱 힘들 뿐 아니라 최근엔 인플레이션에서 야기된 금리 인상으로 글로벌 경제위기 경고등마저 켜진 상황에서 신규분양 시장에서 분양보증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하지만 업체들이 직접 분양보증시장에 뛰어들겠다는 것은 마치 플레이어가 심판까지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무엇보다 사고 위험성을 없애야 하는 특성을 감안할 때 무리한 추진이란 지적이 상당하다.

"분양보증 독점시장 문 열라"는 주택업체들

분양보증은 국토교통부령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라 주택건설업체가 선분양사업 시 공공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반드시 발급받아야 하는 절차다. 연간 HUG의 분양보증 수입은 ▲2017년 2428억원 ▲2018년 2120억원 ▲2019년 2585억원 ▲2020년 2074억원 ▲2021년 1778억원 ▲2022년(9월 말까지) 2514억원 등이다. 이는 HUG의 연간 매출액 대비 3분의 1 규모로, 10대 건설업체의 평균 매출의 3.7% 수준이다.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는 분양보증 독점행위를 불공정거래로 규정하고 '공공기관 민영화'와 함께 2010년 HUG의 독점권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후유증으로 2015년까지 잠정 연기됐고 2015년엔 HUG의 공사 전환을 이유로 늦춰졌다. 2017년 공정위와 국토부는 분양보증시장을 개방하는데 재합의, 2020년 완료할 계획이었으나 현재까지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0년 8월 국토부의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하면서 "분양보증시장을 개방할 경우 신규 보증기관이 저위험 고수익 사업에만 집중할 것이고 부동산 침체 때는 사업을 축소하거나 중단할 우려가 있어 보증시스템 전반의 건전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도 중소·중견 주택업체들로선 이익 문제가 걸린 만큼 분양보증시장 개방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박재홍 주건협 회장(영무건설 회장)은 2019년 말 취임 당시 분양보증 업무를 수행하는 '주택사업공제조합'(가칭) 설립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주건협은 민간 조합의 분양보증 업무가 가능하도록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송언석 의원(국민의힘·경북 김천시)을 중심으로 의원 입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송 의원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을 지낸 관료 출신이다.
김은옥 디자인 기자


"보증 제한 등 보호장치 필요"

현재 HUG 보증료율은 대지비·건축비의 0.138~0.469% 수준이다. 주건협은 분양보증시장이 민간에 개방되면 업체가 부담하는 보증료 수준이 현재보다 최대 40%가량 절감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건협이 248개 주택건설업체를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230개사가 주택사업공제조합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해당 이유로는 ▲보증료 정상화(28.5%) ▲HUG 독점 체제에 따른 갑질 행위(26.5%) ▲주택사업의 빠른 추진(26.2%) 등을 꼽았다. 주택사업자의 60.5%는 민간 조합 설립 시 조합원 가입과 출자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민간주도 주택공급 확대'를 추진하면서 주건협이 이 기회를 틈타 주택사업공제조합 설립에 힘을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만큼 가능성도 커졌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분양보증시장 개방의 득보다 실이 많다는 시각이 여전하다. 주택경기에 민감한 분양보증사업의 경우 불황기엔 대규모 대위변제 리스크가 커져 공적 역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내부에서조차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분양보증시장이 경쟁 체제로 가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면서도 "다만 국민의 재산권과 직결되는 만큼 보호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단지 관련 업계의 이익 문제로만 생각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HUG뿐 아니라 일반 손해보험 상품들도 보증 한도를 자본금의 몇 배 이내로 제한하는데 만약 민간 분양보증 상품을 설계할 경우 보증 한도가 보수적으로 운영돼야 하고 재보험 등을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HUG가 수익성 낮고 리스크가 큰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사업을 운영하는 점도 지적된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사업은 민간이 기피할 수밖에 없다 보니 HUG가 손실을 감수하고도 운영을 지속하고 있다. HUG의 대위변제액은 2017년부터 2022년 8월 말까지 1조7249억원에 달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분양보증시장 개방으로 HUG 수익이 줄어들면 전세보증 교차 보전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