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택지 입찰에선 택지가격의 10% 안팎을 보증금으로 내야 해 수백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한 업체들을 중심으로 벌떼입찰이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사진=뉴스1


새 정부가 건설 페이퍼컴퍼니들의 공공택지 '벌떼입찰'(1개 택지에 여러 업체가 입찰을 신청해 낙찰 확률을 높이는 수법)을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이를 통해 얻은 부당이익을 환수하는 등 고강도 조치에 나서면서 앞으로 중견·중소 주택업체의 수익성이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1사 1택지 방식을 도입해 그동안 지방 분양사업을 영위하던 중견·중소 주택업체들은 비상이 걸린 가운데 대형건설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공공택지 입찰에선 택지가격의 10% 안팎을 보증금으로 내야 해 수백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한 업체들을 중심으로 벌떼입찰이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땅값이 비교적 저렴한 지방의 분양사업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사주 일가가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중견·중소업체일수록 벌떼입찰로 돈을 벌기가 쉬운 구조였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 법 체계 하에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계열사를 합법적으로 동원했다는 게 업체들의 항변이기도 하지만, 불공정경쟁을 기반으로 이뤄졌고 일부는 사주 일가의 배를 불리는 데 악용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벌떼입찰 왜 불공정했나

입찰에 참여한 계열사 수만큼 입찰보증금을 몇 배로 낼 수 있는 현금 능력을 보유한 회사만이 벌떼입찰이 가능했던 것은 불공정거래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벌떼입찰 행위가 지적된 주요 건설업체들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 내역을 보면 호반건설(2526억원) 대방건설(2562억원) 중흥건설(1337억원) 우미건설(597억원) 제일건설(3570억원) 등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정하 의원(국민의힘·강원 원주갑) 조사에 따르면 호반건설은 서울미디어홀딩스, 스카이리빙, 티에스개발 등 12개 계열사를 동원해 1243건의 입찰을 시도했고 이 중 14개 필지를 낙찰받았다. 서울미디어홀딩스는 서울신문과 전자신문 등을 보유한 미디어그룹으로 건설·부동산 개발업과 관련이 없다.


하나의 컴퓨터에서 여러 계열사 명의로 접속해 입찰이 이뤄진 정황도 드러났다. 호반건설은 2018년 인천광역시 영종도 필지 분양에서 호반건설과 서울미디어홀딩스·스카이리빙·스카이건설·티에스주택·티에스리빙 등 명의로 전자입찰을 하면서 동일 아이피(IP)를 사용했다.

주택건설업계 일각에선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공택지를 입찰받아 사업을 진행한 만큼 억울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를 의식한듯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9월26일 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의 벌떼입찰을 벌였던 현장을 직접 방문해 "택지 환수나 부당이익 환수 조치에 대해 업체들이 불복하리라 예상한다"면서 "확실한 입증을 위해 경찰 등의 수사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입증이 되면 택지나 부당이익 환수는 법적으로 보장되는 것이기 때문에 행정조치를 취하든, LH 등이 소송하면 되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국토부와 LH는 이날 벌떼입찰 방지대책을 내놓고 이달부터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 내 300가구 이상 택지에 대해 1사 1필지 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2025년까지 3년간 한시 시행한다.


국토부가 최근 3년간 LH로부터 공공택지를 추첨 낙찰받은 101개사 133필지에 대해 참가 자격, 택지 관련 업무의 수행 여부 등을 점검한 결과 81개사 111개 필지에서 페이퍼컴퍼니 의심 정황을 확인했다. 이들 업체에 대해선 경찰 수사를 의뢰하고 계약 해제와 택지 환수, 분양 등에 따라 제3자 권리관계가 형성된 경우 계약자 보호를 위해 부당이득 환수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검토하기로 했다.

택지 업무 과정에서 모기업(타 계열사 포함)의 부당한 지원을 방지하기 위해 택지 낙찰 업체가 관련 업무를 직접 수행하지 않는 경우 공급계약을 해제하고 향후 3년간 공급을 제한할 방침이다. 택지 공급계약 등 관련 업무를 위임할 수 있는 대리인의 범위를 소속 직원으로 제한(2년 이상 재직자)하고 위임장과 함께 근로계약서 등 증빙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절차도 개선한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택지 환수나 부당이익 환수 조치에 대해 업체들이 불복하리라 예상한다"면서 "확실한 입증을 위해 경찰 등의 수사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뉴스1


대형 업체 '표정관리'

중견건설업체의 경영활동에 비상이 걸린 것과 반대로 대형건설업체들은 공공택지 입찰 경쟁에서 유리한 조건을 기대할 수 있게 된 상황이다. 시공능력평가 상위 대형건설업체들은 대부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그룹) 계열로 계열사나 페이퍼컴퍼니를 입찰에 참여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중견건설업계 일각에선 공공택지 공모 기준에 따라 합법적인 절차를 진행했음에도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과거 행위를 소급적용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한 중견건설업체 관계자는 "대형업체들이 아파트 브랜드 인지도를 내세워 재개발·재건축(도시정비사업)을 수주하듯 중견·중소업체는 낮은 가격의 택지를 매입해 주택사업으로 성장해온 것인데, 1사 1택지 제도를 시행하면 대형과 중견업체가 서로 경쟁해야 하는 구도"라고 우려했다.

대형건설업계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형건설업체 관계자는 "공공택지 입찰 방식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본다"면서 "그동안 경쟁률이 높아 참여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규제가 강화되는 것과 별개로 기존에 절차에 따라 진행한 사업에 대해 소급 적용해 처벌하는 건 제도의 문제를 기업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꼬집었다.

사주 일가 배불린 벌떼입찰

이 같은 주택업계의 항변에도 일부 업체는 벌떼입찰 수법을 이용해 사주 일가가 부당한 이득을 얻고 세금마저 회피한 사실이 드러나 비난을 피할 수는 없게 됐다.

A건설업체 사주는 계열사를 동원해 B사가 공공택지를 취득하게 한 후 미성년 자녀에게 B사 주식을 증여했다. B사가 시행한 아파트의 공사 용역은 A사가 저가 수주해 두 차례 분양에 성공, B사의 주식가치는 5년간 200배 올랐다. 사주 자녀는 부당이득을 챙겼다.

C사는 공공택지를 낙찰받아 사업 시행을 포기하고 해당 택지를 사주 자녀가 지배하는 D시행사로 저가에 넘겼다. D사는 C사 사주 자녀의 또 다른 시공사와 공사 도급계약을 체결, 이 과정에서 사주 자녀는 D사의 분양수익 등을 독차지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사주 일가가 수익을 올린 것은 '일감 몰아주기'와 유사하지만 증여세를 회피하는 등 탈세 혐의가 다수 포착됐다. 국세청은 지난 9월27일 벌떼입찰로 공공택지를 독점하거나 사주 자녀 회사 등에 저가 양도, 건설 용역 등을 제공해 부의 편법 대물림과 탈세 혐의가 있는 8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