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정책을 수행하는 공공기관장 자리에 이전 정권 인사가 물러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란 게 중론이나, 재판부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형법상 '직원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한 만큼 현 정부에 부담일 수 있다. /사진=뉴스1




◆기사 게재 순서
(1)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장 3개월 새 3명 퇴출… "아직도 짐 안 쌌나?"
(2) 낙하산 내쫓은 자리 '다시 낙하산'으로
(3) 정책 지속성·전문성 없는 공공기관 '세금 도둑' 전락


8월부터 시작된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 기관장 사퇴가 10월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기간 짐을 싼 기관장은 김현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김진숙 한국도로공사 사장, 권형택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사장 등 3명. 본인은 물론 소속 기관에 대한 높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정책을 수행하는 공공기관장 자리에 이전 정권 인사가 물러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란 게 여전히 중론이다. 하지만 앞서 재판부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형법상 '직원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한 만큼 현 정부에도 부담일 수 있다. 무엇보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은 공공기관 감사로 추천할 수 있는 후보자 요건을 늘리는 등 규제를 강화해 새롭게 교체되는 인사의 전문성 검증은 더욱 철저히 이뤄질 전망이다.

블랙리스트 다시 시작되나

김 전 장관 등은 문재인 정부인 2017년 12월부터 2019년 1월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해 사표를 받아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을 선발하는 과정에 청와대가 내정한 인사를 임명하도록 관여한 혐의도 받았다. 재판부는 "이들의 행위가 해당 공공기관 지원자와 국민에게 불신을 야기했다"면서 검찰이 기소한 혐의 가운데 상당 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해당 사건은 그동안 암암리에 이뤄지던 정권 물갈이 인사에 대해 사법기관이 경종을 울린 것으로 올 5월 5년 만에 이뤄진 정권 교체와 맞물려 새로운 공공기관장의 전문성·지속성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통해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정부의 조치를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비유하며 "직권남용이 성립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전 위원장은 지난 7일 MBC 라디오 '표창원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대통령이 임명하고 임기가 정해진 고위공직자가 정권이 바뀌어 사퇴 압박을 받고도 물러나지 않자 감사를 해 사표를 내게 한 사안이 직권남용 유죄 판결을 받았다. 권익위도 유사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권익위 부위원장이 감사로 인해 사퇴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면서 "이런 과정이 대법원의 직권남용 판결과 매우 유사하므로 권익위의 특별감사도 직권남용이 성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감사 과정의 원칙과 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도 직권남용이 성립한다. 전 위원장은 권익위 감사가 감사위원회 의결을 받지 않고 시행된 점과, 감사로 인해 취득한 정보와 자료를 감사 목적으로 제한해 사용하지 않고 언론 등 외부기관에 공유한 점이 감사원 규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행정사무감찰은 15일 전 예고해야 하는 규정이 있음에도 권익위 감사의 경우 예고 없이 당일에 진행된 점도 지적됐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유죄 판결 이후인 올 3월에 검찰은 지난 3년간 중단했던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해 수사를 재개했다. 이어 7월에는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도 소환 조사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전 자유한국당)이 2018~2019년 환경부와 산업부에 이어 국무총리실·통일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교육부 등을 공공기관장 부당 압력으로 고발한 데 따른 조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9월 산업부 국장급 간부는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한국전력 산하 발전사 4곳의 사장을 서울 광화문 호텔로 불러 사퇴를 종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