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인기를 끌면서 '학교 폭력'이 성인이 된 이후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됐다. 사진은 '더 글로리'의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제공


#1. 30대 A씨(여)는 한 방송에 나와 '더 글로리' 문동은처럼 고데기로 학교폭력을 당한 사실을 고백했다. 동급생 2명으로부터 학폭에 시달려온 A씨의 팔에는 가열된 고데기로 그을린 화상 흉터가 아직도 선명하다. A씨는 "중학교 3학년 가을에 고름이 터져 옷에 고름이 달라붙었다"고 끔찍했던 상황을 전했다.


#2. 올해 중학교 3학년인 B군은 다가오는 개학이 두렵다. 자신을 집단폭행한 가해학생 10명을 마주쳐야 하기 때문이다. 가해 학생들은 B군을 중1 때부터 감금하고 얼굴에 침을 뱉는 등 조롱했다. 최근에는 그 행위가 더 악랄해져 바지를 벗기고 폭력을 가하는 영상을 촬영해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B군을 더욱 절망에 빠뜨린 것은 가해자를 옹호하는 주변 학생들의 2차 가해다. 피해를 신고한 B군을 향해 '말이 많다'며 테이프로 입을 막거나 마스크로 얼굴을 덮는 등 추가로 폭행이 가해졌다.

학교폭력(학폭)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가 국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학폭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연일 학폭에 대한 소식이 온라인을 달구면서 일각에서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학교폭력이 드라마보다 더 심하다"고 토로한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C씨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 열풍이 불던 당시 아이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면서 폭력을 행사한 사례가 있었다"며 "일부 시교육청은 놀이가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게 지도하라는 공문을 내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드라마나 영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 모방 범죄나 비슷한 폭력이 발생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고 덧붙였다.

학폭 트라우마는 'PTSD'… 성인돼도 우울·불안 겪어

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년기에 학교폭력을 겪으면 피해 당시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뒤에도 우울감과 불안 등으로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학폭이 잔인한 이유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기 때문이다. 청소년기는 정서적으로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격동의 기간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도 불리며 거친 바람과 화난 파도처럼 변화가 심하고 불안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청소년기에 학폭을 경험하면 그 충격은 배가 된다.


전문가들은 학폭 트라우마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해당한다고 입을 모은다. 피해를 당한 후에도 우울감과 불안 등으로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사회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 대표적이다.

유제춘 한국정신사회재활 이사장은 "학창 시절 학폭 피해를 겪을 경우 일상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학폭 경험이 있는) 한 남성은 성인이 된 후에도 불안이나 우울 등 적응장애를 보이다 군대에서 자살 충동을 심하게 느꼈다고 한다"고 심각성을 설명했다.


반면 학폭에 따른 심리적 상처·고통을 인정하고 회복할 경우 '외상후 성장'이라고 부르는 정신적 성숙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트라우마 극복이 중요하다. 그는 "학폭 피해가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 동안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적절한 상담과 심리치료를 받으면 오히려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기 존중감을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유 이사장은 "청소년기에는 자신의 세계관이 부모에서 또래 친구로 옮겨가기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면 자존감이 크게 떨어진다"며 "자신의 가치는 주변인을 통해 확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상담사와의 관계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믿음을 회복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계획적인 생활습관과 진로체험, 드론·음악 배우기 등 창의적인 활동도 도움이 된다.

지능화·다변화되는 학폭… "가해자, 국·영·수처럼 1대1 지도해야"

지난 7일 10명이 넘는 초등학생이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영등포청소년경찰학교를 방문했다. /사진=정원기 기자


"학폭 예방 프로그램을 영재교육처럼 하면 어떨까."

학교전담경찰관(SPO)으로 6년 가까이 활동한 김재환 영등포경찰서 여성청소년과 팀장(경위)은 "학폭 가해자를 대상으로 경찰이 1대 1 맞춤 지도를 하면 학폭이 효과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어·영어·수학 등 주요 과목에 대한 소규모 영재교육은 이미 있지 않냐"라며 "맨투맨(Man to man)으로 경찰이 학생의 삶과 가정, 교우관계를 살피고 선도하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이 과정에서 상호 신뢰가 쌓이는 라포가 형성되고 학폭이 나쁜 행위가 아니라 범죄인 것을 깨우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학폭 가해 학생에 대한 소그룹 형식의 교육이 실제로 도움 되는 것을 데이터를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영등포청소년경찰학교가 지난해 4월부터 학폭 가해자 등을 대상으로 1대 1 또는 1대 3의 소규모 선도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특별교육(69명)과 사회봉사(35명) 명령을 받은 총 104명의 학생이 다시 영등포청소년경찰학교를 찾는 일은 없었다. 김 팀장은 "학폭 가해자 선도 프로그램의 경우 SPO와 가해학생이 1대 1로 교육을 진행하고 경찰의 관점으로 법률과 판례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져 재범률이 0%에 이른다"고 강조했다.

학폭 피해자라면… 대응 요령은?

학폭 피해를 당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SPO 도입의 중추적 역할을 한 하동진 서울경찰청 아동청소년계장(경정)은 가장 먼저 '117'로 신고하라고 밝혔다.

117은 전국에서 발생하는 학폭 등 청소년 긴급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24시간 운영된다. 신고 즉시 긴급 구조와 수사가 진행돼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또 법률 상담과 수사에 필요한 진술 녹화 등을 지원해 다변화된 학폭 대응에 유리하다. 117의 경우 전용 회선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신고 시 신분 노출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학폭은 과거 오프라인(학교 안과 밖)에서 폭력과 갈취 등이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메신저를 통해 욕하거나 지속적으로 채팅방에 초대하는 이른바 '카따'(카카오톡 왕따)가 대표적이다.

하 계장은 "아무리 학폭 관련 기관이 많아도 피해자가 도움받지 못하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스마트 워치를 통한 신변보호와 전문 심리 상담, 법률·의료 지원 등 다양한 지원책이 있지만 학생이 힘든 상황을 얘기하지 않으면 '더 글로리'처럼 끔찍한 일에 계속 노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번째로는 정신적 충격에 따른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전문가에게 상담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트라우마는 단숨에 극복되지 않는 특징이 있어 심리 상담·치료를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부과에서 레이저 10회를 받으면 피부가 단숨에 개선되는 것과 달리 10차례의 상담에도 심리적 회복은 더딜 수 있는 만큼 긴 호흡을 가지고 벌어진 마음의 틈을 줄여야 한다.

심리 지원과 함께 학폭 피해자에게 도움되는 것은 주위의 '관심'이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D씨는 10년 전 학폭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경찰에 임관했다. 당시 학폭을 담당했던 경찰이 피해 발생 이후에도 D씨가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상담을 진행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D씨는 본인처럼 학창 시절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청소년경찰학교 근무를 희망하고 있다.

SPO는 올해 실내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는 환경을 고려해 학폭 예방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하 계장은 "대면 활동이 더 적극적으로 이뤄짐에 따라 개학 시기에 맞춰 찾아가는 학폭 특별교육을 실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폭 트렌드가 사이버 쪽으로 이동하는 추세여서 새로운 범죄 대응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이버전담SPO 35명을 투입하고 SNS상 불법행위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피해자 보호에 필요한 방안을 촘촘히 구성하겠다"고 덧붙였다.